일제강점기 달성군청은 어디 있었을까

달성군 개청 100주년을 맞아

등록 2014.03.24 11:37수정 2014.03.29 14:44
3
원고료로 응원
2014년 3월 1일은 대구광역시 달성군이 개청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달성군은 개청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해 왔다. 매월 발간되는 달성군 소식지 <달성 꽃피다> 3월호에는, 달성군청 청사가 언제 대명동에서 동성로로 옮겼는지를 찾지 못해 물음표로 처리해 두었다.

달성군 청사의 변화

수성면 대명동 청사를 시작으로 동성로와 대명동을 거쳐 현재 논공읍 청사로 이어지고 있다. 동성로 청사에는 대구백화점이, 대명동 청사 부지에는 병원 건물이 들어서 세월의 흐름을 알려 주고 있다.

1.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청사(現 중구 남산동 신남네거리 인근, 1914년~?)
2. 동성로 청사(現 대구백화점 자리, ?~1969)
3. 남구 대명동 청사(1969년~2005년)
4. 현재 청사(2005년~2014년 현재)

국가 기록원의 조선총독부기록물, 한국언론진흥재단 사이트를 찾아들어가 '고신문검색'의 검색서비스바로가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등의 사이트에 달성군, 혹은 달성군청을 검색해 보면 달성군청의 이전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국가 기록원의 조선총독부기록물에서 달성군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달성군 위치의 건' 자료 파일 3쪽이 나온다. 이 자료에 의하면 달성군 신설과 함께 군청 후보지로 지금의 대구 동구 동촌 지역인 해동면(해동촌면)과 달성군 화원읍 지역인 화현내면이 검토되기도 하였으나 적당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얻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사이트를 찾아들어가 '고신문검색'을 누른 뒤 '검색서비스 바로가기'를 누르면 '고신문 검색서비스' 밑에 '제목+본문'이 보인다. 그 옆에 '달성군청'을 타이핑하고 '검색'을 누르면 관련 기록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每日申報)>에서 찾을 수 있다. 달성군청과 관련하여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서는 다음의 세 기사가 주목된다.


a 대구부 기업 전습소 달성군청 공아로 충용 매일신보 1914년 02월 24일

대구부 기업 전습소 달성군청 공아로 충용 매일신보 1914년 02월 24일


대구부내 臨時恩賜 授産 大邱府 機業 傳習所는 금회 부군 폐합한 결과 달성군청 공아로 충용되고 동 전습소는 서문내 은사관을 당분간 차입하야 불일간 이전한다더라.(每日申報 1914년 02월 24일)

대구부 임시 은사 수산 기업 전습소는 거월 27일 서문내 은사관으로 이전하고 동소는 달성군청으로 충용하야 불일내 집무차로 수리 중이라더라.(매일신보 1914년 03월 04일)


경북 신설군 달성군수 이범익씨는 전 김천군수로서 3일 부임차로 대구부에 내도하야 불일내 등청 규무한다더라.(매일신보 1914년 03월 05일)

이들 기사로 보아 달성군은 부군 통폐합으로 '신설'되었으며, 군청사는 이전의 대구 임시 은사 수산기업 전습소를 임시로 사용하였다. 많은 지역들이 통폐합이었음에 비하여 달성군은 대구부의 도심 이외 지역과 현풍군을 합하여 신설된 군에 해당하는 셈이다.

대구부 기업 전습소는 어디일까? 이와 관련하여 '實業傳習所 機業工場'이 눈에 들어온다. <대구시사 2>(1973) 238쪽에 의하면, 실업전습소 기업공장은 1908년 3월에 창립되었으며, 자본금 3400원에 한국인 종업원 22명, 일본인 5명으로 1910년 말 명치정(계산동)에 있다고 되어 있다. 대구부 기업 전습소와 실업전습소 기업공장이 동일한 장소에 있었다고 보면, 달성군청의 임시 청사는 처음 계산동에 위치하였을 것이다.

군청신축(달성) 동군 신축 군청 위치는 동군 수성면 대명동으로 정하고 신축공사는 총독부 국기 기사수에 전히 결료되얐는데 금에 기내용을 聞한즉 청사 67평 5흉, 부속낭하 급 변소 5평, 숙직 급 소사실 10평, 물치간 8평 외 변소 3평, 게시장, 정호, 문 각 1개소, 철조책백 23칸여로 정하얏는데 불원기공한다더라.(매일신보 1914년 5월 31일)

請負入札(道廳) 거 6일 오전 8시에 경북도청에서 달성군청사 공사 청부입찰을 행하였는데 입찰자 8명 중에 6,400원으로 대구부 동성정 中山與太郞씨에게 낙찰이 되얏다더라.(매일신보 1914년 6월 12일)

a 경상북도 달성군의 부 위치의 난 ‘대구’를 ‘수성면 대명동’으로 개함. 총독부관보 제667호 대정3년 10월 22일

경상북도 달성군의 부 위치의 난 ‘대구’를 ‘수성면 대명동’으로 개함. 총독부관보 제667호 대정3년 10월 22일


조선총독부령 제156호
대정2년 부령 제111호 중 개정
대정3년 10월 22일
慶尙北道 達城郡의 部 位置의 欄 '大邱'를 '壽城面 大明洞'으로 改함.
부칙 본령은 대정3년 10월 25일부터 시행함.(총독부관보 제667호 대정3년 10월 22일)

위의 자료를 보면 달성군청사는 7, 8개월 뒤인 1914년 10월 25일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현 중구 남산동 신남 네거리 인근에 신축된 청사로 이전하여 지금의 중구 남산동에서 5년 정도 군 행정을 맡아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신남 네거리 쪽에는 군청만댕이(군청말래이)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남산동 시절은 얼마가지 못한다.

달성군청 이전

a 달성군청 이전 매일신보 1919년 7월 9일

달성군청 이전 매일신보 1919년 7월 9일


현 달성군청사는 제반불편에 의하야 해 군민 급 대구부민이 거개 대구시내로 이전하기를 희망하는 바임으로 당국에서도 기 실정에 鑑하야 이전을 허가하는 바 대구시내 동성정 구시장에 이축할 설비 중이고 당분간은 대구 헌병대 본부 강당을 차수하야 내10일부터 동소에서 일반 사무를 취급한다더라.(매일신보 1919년 7월 9일)

위에서 보듯이 달성군민들과 대구부민들은 군청이 여러모로 불편하다며 대구시내 이전을 희망하였다. 이에 달성군청은 다시 대구시내로 들어오게 된다. 청사 이전지는 '동성정 구시장'으로 정하였으나, 일단은 1919년 7월 10일부터 대구 헌병대 본부 강당, 경상감영 공원 앞 옛 병무청 자리에서 업무를 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대구에서 일어난 3·1 운동은 처음 다른 도시보다 늦은 3월 8일 서문시장을 출발하여 대구경찰서에서 종로를 거쳐 동성로 달성군청, 지금의 대구백화점에서 헌병과 군인들에게 진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신문 기사를 보면 당시 달성군청은 신남 네거리 인근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그곳에는 동성정 구시장, 곧 동문 시장이 있었다.

조선 후기 남문밖에 있던 신시(新市)는 신해년(<대구부사>(1943)의 신해년을 <대구시사 2>(1973) 275쪽에는 1911년으로 보고 있으나 1851년으로 생각됨)에 동문밖(현 대구백화점 근처)으로 이전하여 동문시장으로 불렸으며, 면적은 서문시장의 약 반인 2499평에 불과하였다. 1917년 8월 일부를 덕산동으로 옮겼고, 1919년 7월 나머지도 모두 옮겨 3476평이 되었는데 방향과 관계없이 동문 시장으로 불렸다. 1919년 7월 동성정 구시장이 달성군청 청사 이전 후보지가 되면서 동성로에 있던 시장의 나머지도 덕산정(덕산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면 달성군 청사는 언제쯤 동성로로 이전하였을까?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자료가 주목된다.

a 경상북도 달성군의 부 위치의 난 ‘수성면 대명동’을 ‘대구’로 개함. 총독부관보 제2166호 대정8년 10월 30일

경상북도 달성군의 부 위치의 난 ‘수성면 대명동’을 ‘대구’로 개함. 총독부관보 제2166호 대정8년 10월 30일


조선총독부령 제172호
대정2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중 좌와 여히 개정하야 대정 8년 10월 30일부터 此를 施行함.
대정 8년 10월 30일
慶尙北道 達城郡의 部 位置의 欄 '壽城面 大明洞'을 '大邱'로 改함.(총독부관보 제2166호 대정8년 10월 30일)

1919년 10월 30일 달성군 청사는 포정동의 대구 헌병대 본부 강당에서 동성로로 이전하였다. 달성군 청사의 이전 시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14년 03월 01일 대구 중구 계산동(명치정) 임시 청사, 대구 기업 전습소 자리
1914년 10월 25일 대구 중구 남산동(수성면 대명동) 신남 네거리 인근
1919년 07월 10일 대구 중구 포정동(상정), 헌병대 본부 강당 임시 청사
1919년 10월 30일 대구 중구 동성로(동성정), 동성정 구시장(옛 동문 시장)
1969년 08월 29일 대구 남구 대명동 1583번지
2005년 05월 25일 대구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 1313번지
(대구 달성군 논공읍 달성군청로 33번지)
#달성군청 #대구삼일 운동 #100주년 #부군 통폐합 #1914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