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에 있는 나라는 다 덥다고? 오해였다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 47]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

등록 2014.06.01 13:46수정 2014.06.0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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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텔레페리코(Telefeliqo) 전망대의 모습 적도지만 고원 분지에 자리잡은 키토는 구름에 둘러싸인 모습일 때가 많다.

텔레페리코(Telefeliqo) 전망대의 모습 적도지만 고원 분지에 자리잡은 키토는 구름에 둘러싸인 모습일 때가 많다. ⓒ 김동주


과일의 왕은 에콰도르산 파인애플

쿠스코를 떠나 한 번 쉬어갈 요량으로 들린 페루의 수도 리마까지는 버스 22시간. 그리고 수도 리마에서 에콰도르의 국경까지 다시 23시간. 삼 일 동안 무려 45시간을 버스에서 보냈지만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버스라는 폐쇄된 공간도, 자도 자도 끝이 없는 긴 시간도 아닌, 페루 장거리 버스의 독특한 오락(?) 시스템 때문이었다. 버스가 출발한 저녁 6시부터 무지막지한 굉음으로 시작한 영화는 내리 3편, 6시간 동안 이어졌고, 밤 12시가 되어서야 버스는 조용해졌다.


아침 8시, 다시 TV가 켜지고 솜으로 귀를 막지 않으면 머리가 울릴 듯한 엄청난 볼륨의 영화는 그후로 밤 12시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페루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청각이 약하기라도 한 것인지. 바람이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무감각하게 느껴지고서야 우리는 겨우 페루-에콰도르의 국경에 도착했다.

두 다리로 걸어서 건너는 국경은 어디나 그 나름의 풍경이 있지만 이렇게나 페루-에콰도르의 국경만큼 사람 냄새를 가득 풍기는 국경이 또 있을까. 일반적으로 국경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데도 말이다.

a   페루와 에콰도르의 국경 사이에는 약 1km 정도, 무국경에 해당하는 시장길이 형성되어 있다.

페루와 에콰도르의 국경 사이에는 약 1km 정도, 무국경에 해당하는 시장길이 형성되어 있다. ⓒ 김동주


툼베스(Tumbes)라고 불리는 이 국경지대에는 페루와 에콰도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시장이 길게 늘어서 있다. 좌판대를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과일들과 덥고 습한 날씨는 바야흐로 적도가 가까워졌음을 알린다. 더운 날씨 탓인지 나이 많은 상인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보기 좋게 깎인 파인애플 한 덩어리를 집어들자 손으로 1을 가리킨다.

"원 달러"냐고 묻자 뜻밖에도 그는 "1페소(페루 화페, 약 450원)"라고 대답했다. 망고는 kg당 1 달러란다. 덥석 집어든 적도의 파인애플은 이가 녹을 만큼 달았다. 껍질과 이어진 하얀 부분까지 한 입 베어물면 물에 젖은 솜처럼 꿀물이 가득 흘러나온다. 파인애플 한 조각에 이렇게 많은 수분이 있을까 싶을 정도. 과일의 왕은, 에콰도르산 파인애플이다.

전 세계 유일하게 적도선 지나는 도시 '키토'


남미 중에서도 에콰도르는 우리에게 비교적 낯설다. 에콰도르의 표기인 'Equador'가 사실은 적도를 뜻하는 'Equator'임을 모르는 것처럼. 준과 나 역시 에콰도르에 도착할 때까지도 이런 내용에 무지했다. 남미 대륙의 북서쪽 끝에 위치한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Quito)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적도선이 도시를 지나는 특별한 도시다.

지리학적으로 적도는 지구 상의 위도가 0도인 지역을 뜻하는데 이는 곧 태양과 지구중심간에 직선을 그으면 그 직선이 닿는 위치를 뜻한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 우리는 적도 지역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정면으로 받아 덥다고 배웠다.


a   구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적도의 도시, 키토의 모습

구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적도의 도시, 키토의 모습 ⓒ 김동주


남미의 다른 나라들처럼 에콰도르를 동서로 가르는 안데스 산맥을 기준으로, 남동쪽은 아마존을 낀 열대우림지역으로 1년 내내 더운 날씨를 보인다. 하지만 안데스 산맥으로 둘러싸인 높은 분지에 위치한 키토는 적도에 위치했음에도 1년 내내 우리나라의 가을 같은 선선한 기후에 거의 항상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보인다. 남반구의 여름에 다가서는 11월에 내가 방문했을 때는 살짝 추운 날씨에 외투가 필요했을 정도로 키토는 쌀쌀했다. 아아, 우리가 교과서로 배우는 지식이란 얼마나 얄팍한가.

a 미타델문도(Mita del Mundo) 키토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적도기념관. 적도에서만 가능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다.

미타델문도(Mita del Mundo) 키토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적도기념관. 적도에서만 가능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다. ⓒ 김동주


사실 '위도0도'니 '적도'니 하는 단어는 인간이 변별력을 위해 만들어낸 단어에 불과하지만 실제 적도에서는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다. 키토 시내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적도 박물관인 미타델문도(La Mitad del Mundo)는 그런 '신기한 일'을 관측하기 위한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입장료 3달러를 내고 들어서면 이곳에 살았던 에콰도르 원주민의 풍속을 보여주는 박물관을 거쳐 적도 기념탑을 볼 수 있다. 적도 기념탑이긴 하지만 실제 위도 0도는 아니고 위도 0도는 이곳에서 약간 벗어난 어느 숲 속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미타델문도는 여전히 적도 영향권 안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실험은 여기에서 모두 가능했다.

a   적도에서만 가능한 지구의 신비 중 1순위는 역시 계란 세우기!

적도에서만 가능한 지구의 신비 중 1순위는 역시 계란 세우기! ⓒ 김동주


가장 대표적인 신비는 역시 달걀 세우기.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시작한 실험은 0.5초도 안 돼서 성공했다. 눈으로 직접 보는 지구의 신비랄까. 이뿐 아니라 실험을 위해 마련된 배수구에 물을 흘려보면 물이 회전하지 않고 그대로 흘러나가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태양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에콰도르에 살았던 옛 잉카인들이 주신으로 태양의 신을 섬긴 것은 우연일까. 태양을 마주보는, 태양과 가장 가까운 도시 키토가 주는 의미는 그래서 더욱 남다르다.

골목 곳곳이 세계 문화유산을 이루다

키토가 나에게 특별한 것은 단지 '적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긴 여행 중에 두 달을 함께 한 준과의 마지막 여행지인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는 우리가 머무른 내내 구름이 무겁고 낮게 깔려 있었다. 하루 종일 어둡고 소리 없는 늦가을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미타델문도를 다녀온 다음날, 걸으면서 둘러보는 거리에서 우리는 말이 없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멀리 멀리 보이는 언덕으로 모여든 구름 아래의 도시가 마치 애수에 잠긴 듯 아련하게 보였다. 그런 기분을 떨치기 위해 도시의 단순한 풍경을 둘러보았다. 오랜 성벽과 푸르름을 유지한 초목들, 구름 사이 사이로 태양이 자리잡은 곳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는 키토는 생각보다는 뜨거운 도시다.

a 키토 올드 타운의 다양한 모습들 세계 10대 세계문화유산 도시에 선정될 만큼 키토의 올드 타운은 식민시대의 모습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키토 올드 타운의 다양한 모습들 세계 10대 세계문화유산 도시에 선정될 만큼 키토의 올드 타운은 식민시대의 모습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 김동주


사실 키토는 스페인의 침략을 받았던 수많은 국가 중에서도, 금과 같은 귀금속이 나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식민지 시대의 옛 모습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는, 그 자체로 박물관 같은 도시다.

키토의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10대 문화유산도시로 지정될 정도로 남미에서도 특별한 올드 타운이다. 좁은 길을 따라 광장으로 들어서면, 차를 타기도 힘들어 보이는 좁은 골목마다 자리잡은 교회와 왕국, 그리고 박물관들을 볼 수 있다. 멋들어지게 지어진 대통령 궁과 남미 최초의 성당인 샌프란시스코 대성당을 비롯한 오랜 건물들은 그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사실 키토 올드 타운의 백미는 바로 바실리카 대성당이다.

a 바실리카 성당(La Bacilica) 잉카인들이 세운 태양의 신전을 허문 돌을 이용해 지어졌다고 하는 바실리카 성당. 지금은 키토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바실리카 성당(La Bacilica) 잉카인들이 세운 태양의 신전을 허문 돌을 이용해 지어졌다고 하는 바실리카 성당. 지금은 키토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 김동주


바실리카 성당은 그 웅장함과 멋스러운 모습으로도 유명하지만 꼭대기 첨탑에서 보는 특별한 풍경으로 더욱 유명하다. 2달러의 입장료를 내면 우뚝 솟은 양 첨탑을 모두 올라 갈 수 있다 길래 입장을 하긴 했다.

하지만 첨탑 위에 오르는 길은 좁고 가파른 계단을 아슬아슬하게 오르고 외나무 길에 사다리까지 기어올라야 하는, 관광치고는 제법 험난하고 스릴 넘치는 과정이었다. 그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마주친 바실리카 성당 꼭대기의 풍경은 과연 명불허전이다.

a 바실리카 성당 꼭대기의 풍경 두 개의 첨탑 정중앙 저 멀리 마리아 상이 있는 파네시죠 언덕을 볼 수 있다.

바실리카 성당 꼭대기의 풍경 두 개의 첨탑 정중앙 저 멀리 마리아 상이 있는 파네시죠 언덕을 볼 수 있다. ⓒ 김동주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두 개의 첨탑 정중앙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마리아상의 언덕, 파네시죠(La Panecillo)다. 도시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는 좁은 도로의 끝을 가로막 듯이 자리잡은 언덕 위로는 마치 무대장치처럼 구름들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저녁 어스름이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울 때, 도시 전체가 구름 아래에 완전히 잠긴 듯한 모습으로 변했다. 약간의 쓸쓸함이 느껴지긴 하지만 무겁거나 차갑지 않다. 키토의 구름은 저항할 수 없는 얼음 같은 냉혹함이 아닌, 애수가 어린 듯한 모습이다. 이 시계탑을 설계한 건축가는 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키토의 밤은 언제나 그 아련한 구름과 함께 시작한다.

a 키토의 밤 밤이면 어김없이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은 마치 키토에서 만들어 내는 것만 같다.

키토의 밤 밤이면 어김없이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은 마치 키토에서 만들어 내는 것만 같다. ⓒ 김동주


간략여행정보
세계에서 유일하게 적도선이 지나는 도시인 키토의 날씨는 우리와 아는 '적도의 날씨'와는 사뭇 다르다. 페루나 볼리비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전히 2700m 고원지대인 키토는 드높은 안데스 산맥의 영향을 받아 1년 내내 선선한 가을과 같은 기후를 보인다. 도시를 집어삼킬 듯이 휘몰아치는 구름의 모습도 여느 도시와 다른 특징 중 하나. 이를 테면, 한라산 꼭대기가 맑은 날이 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에서 에콰도르가 덜 알려진 이유는, 남미로 들어가는 항공노선의 대부분이 에콰도르의 남쪽 인접국인 페루의 수도 리마로 연결되기 때문인데, 이 경우 에콰도르 하나 때문에 긴 장거리 버스로 두 국가 사이를 왕복해야 되는 단점이 있다. 페루, 볼리비아와 더불어 남미의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지만 저가항공이 없는 남미대륙의 비싼 항공편도 에콰도르를 낯설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 그러나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잘 보존된 옛 건물들과, 계란을 못 위에 세울 수 있는 특별한 경험만으로도 키토는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다.

좀 더 자세한 키토 여행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4001401

#키토 #에콰도르 #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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