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으면 이런 것들이 보입니다

[포토에세이] 애들아, 이곳에 있어줘서 고맙다

등록 2014.06.20 15:50수정 2014.06.2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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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박새 도시개발을 할 때 공원을 새로 조성하지 않고, 이전부터 있었던 야산을 남겨두어 조성을 한 도심의 공원이라 나름 생태환경이 양호한 편이다. 박새가 분주하게 날며, 먹이를 구하고 있다.

박새 도시개발을 할 때 공원을 새로 조성하지 않고, 이전부터 있었던 야산을 남겨두어 조성을 한 도심의 공원이라 나름 생태환경이 양호한 편이다. 박새가 분주하게 날며, 먹이를 구하고 있다. ⓒ 김민수


집 근처에는 작은 공원이 몇 개 있다.


특징이라면 개발할때 이전의 야산들을 보존하면서 조성한 공원이라는 점이다. 물론, 옛날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렸을 적에 보았음직한 나무들도 제법 있고, 모양새도 어느 정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옛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a 박새 도심 공원 한 켠에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가 있다. 공원을 통틀어 자연적으로 고인 물은 이곳밖에 없어서 이런저런 새들이 다녀가며 목을 축인다. 공원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박새와 직박구리다.

박새 도심 공원 한 켠에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가 있다. 공원을 통틀어 자연적으로 고인 물은 이곳밖에 없어서 이런저런 새들이 다녀가며 목을 축인다. 공원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박새와 직박구리다. ⓒ 김민수


아마도 저기쯤이 아니었을까 싶다.

민물새우와 미꾸리, 붕어 등이 그득했던 저수지가 있었전 자리는 사라졌지만, 작은 웅덩이가 남아있다. 요즘 꽤나 가물었으니 저 정도의 수량을 유지한다는 것은 제법 습지라는 뜻이겠다.

임경업 장군이 장롱에서 투구를 꺼내어 썻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투구봉'은 개발되면서, 주변의 낮은 지대를 메꾸는데 사용되었다. 높지 않은 산이었지만, 10여 분 뛰어올라가면 한강은 물로 남산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곳이었는데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전설만 남기도 흔적도 없지만 이름은 남아있어서 5호선 '개롱(장롱을 열었다)역'이 있고, 먹자골목인 '장군거리'가 있다. 여기서 장군은 '임경업 장군'이다.


a 살구 떨어진 살구를 보고서야 살구나무의 존재를 알았다. 단맛에 길들여진 까닭에 살구의 맛을 잘 느끼질 못한다. 어린 시절, 살구는 참으로 맛난 주전부리였다.

살구 떨어진 살구를 보고서야 살구나무의 존재를 알았다. 단맛에 길들여진 까닭에 살구의 맛을 잘 느끼질 못한다. 어린 시절, 살구는 참으로 맛난 주전부리였다. ⓒ 김민수


옛 모습은 거반 사라졌다.
그러나 조성된 공원에는 내 어릴적 보았음직한 상수리나무 같은 것들도 남아있다. 어쩌면, 그 나무이길 바라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곳을 오랜만에 걸었다.
박새, 직박구리, 참새, 까치, 딱새......살구, 버찌, 줄사철, 개암열매가 나를 반겨준다. 늘 그곳에 있었을 터인데, 새삼스럽게 오늘 그들이 보인 것이다.


a 직박구리 직박구리가 벚나무 가지에 앉았다. 사람을 별로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벚나무 가지마다 새까많게 익은 버찌가 직박구리 눈만하다.

직박구리 직박구리가 벚나무 가지에 앉았다. 사람을 별로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벚나무 가지마다 새까많게 익은 버찌가 직박구리 눈만하다. ⓒ 김민수


천천히 걸으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내 삶이 분주한 삶에서 천천히 살아가는 삶으로 바뀌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살 필요가 있었을까?
그 삶이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직장에 얽매여서 시계추마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그냥저냥 살았던 것은 아닌가 싶다.

천천히 살았어도 큰 문제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며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었을 터인데 너무 조바심을 내고 살아온 것 같다는 반성을 한다.

a 버찌 탐스럽게 익어가는 버찌, 잘 익은 버찌를 따먹으면 조금 쓴맛도 나지만 제법 맛나다. 어릴적 이맘때면 잘 익은 버찌나 오디 등을 따먹었다.

버찌 탐스럽게 익어가는 버찌, 잘 익은 버찌를 따먹으면 조금 쓴맛도 나지만 제법 맛나다. 어릴적 이맘때면 잘 익은 버찌나 오디 등을 따먹었다. ⓒ 김민수


a 줄사철 줄사철이 소나무 한그루를 감싸안고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한창 때는 지났지만, 줄사철 꽃에도 많은 곤충들이 모여든다.

줄사철 줄사철이 소나무 한그루를 감싸안고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한창 때는 지났지만, 줄사철 꽃에도 많은 곤충들이 모여든다. ⓒ 김민수


a 개암 개암열매가 익어간다. 여름 끝자락에 소낙비가 온 뒤 버섯을 따러간 길에 따먹곤 했다. 도토리나 밤보다 빨리 익어 고소한 주전부리가 되곤 했던 개암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다.

개암 개암열매가 익어간다. 여름 끝자락에 소낙비가 온 뒤 버섯을 따러간 길에 따먹곤 했다. 도토리나 밤보다 빨리 익어 고소한 주전부리가 되곤 했던 개암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다. ⓒ 김민수


늘 곁에 있었지만, 특히 개암열매는 너무도 오랜만에 본다.
개암열매는 무척이나 고소하다. 은행알 정도 크기의 열매의 딱딱한 껍질을 깨면 입 안 가득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주로, 늦여름 소낙비 내린 후에 버섯을 따러 간 길에 따먹곤 했다.

도토리나 밤보다는 조금 이르게 열매가 익었다.
도토리는 쓰고 떫어서 그냥 먹지 못하지만, 밤이 익기 전에 자연에서 만나는 견과류로서는 최상이었던 것이다.

혹시, 운이 좋다면 올해 늦여름에는 잘 익은 개암열매의 고소한 맛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a 직박구리 아직 새끼라서 그런지 경계를 하면서도 여간해서 자리를 뜨지 않는다. 새들이 떠난 숲은 얼마나 황량할까? 많은 종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산책길에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직박구리 아직 새끼라서 그런지 경계를 하면서도 여간해서 자리를 뜨지 않는다. 새들이 떠난 숲은 얼마나 황량할까? 많은 종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산책길에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 김민수


천천히 걷는데 머리 위 나뭇가지에서 직박구리가 요란스럽게 울어댄다.
조류사진은 600mm 망원렌즈로 찍는 것이 일반적인데, 너무 가까이 있어 100mm로 담아도 꽉 차려고 한다.

새들이 이렇게 가까이 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직박구리는 요란한 새지만, 근교의 숲이나 도시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새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이 도시는, 숲은 얼마나 황량했을까?

뭔가는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늘 그자리에 있었다. 단지, 내가 분주하게 살아가면서 그들에게 눈길 줄 생각조차, 시간조차 없었을 뿐이다.

기왕이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는 걸음걸이로 숨차지 않게 살아가자. 뛰어간들, 돌아보니 천천히 간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박새 #직박구리 #개암열매 #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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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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