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 GOP에서 동료 병사들을 살해한 뒤 무장탈영한 임모 병장 체포작전 이틀째였던 지난 23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명파리와 마달리 사이 도로에서 작전에 참가한 22사단 장병들이 부대가 매복하고 있던 앞산에서 총성이 들리자 급히 뛰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22사단 GOP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고로 인해 다섯 장병이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 또 일곱 명의 장병이 부상을 당했다. 임아무개 병장의 자살 시도와 생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임아무개 병장을 포함해 세 명이 추가로 총상을 입었다.
현재까지 임 병장의 명확한 범행동기나 심경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사건이 발생한 22사단은 30여 년 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고, 재작년에는 이른바 '노크귀순'으로 논란이 됐었던 부대라는 점, 임 병장은 '관심사병'이었다는 점 등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물론 임 병장은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고, 그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은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게 만든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사건은 비단 22사단이나 임 병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굵직한 사건만 떠올려보더라도 2005년 연천에서도 내무반 수류탄 투척 및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고, 2008년 철원에서도 GP 내무반 수류탄 투척 사건이 있었다. 언론에 알려진 주요 사건들 중 2000년 대 이후만 보더라도 2005년, 2006년, 2008년, 2011년, 그리고 2014년에 각각 사고가 있었다.
총기 난사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지 않더라도 그보다 얕은 수준의 크고작은 사고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2005~2012년 사이 복무 중 자살·총기·폭행 등으로 발생한 사망자 수만 648명에 이른다. 국방부가 발표하는 공식 통계만 보더라도 그렇다. 통계에 잡히지 않거나, 사망에 이르지는 않은 비공식 사건·사고들까지 합한다면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이다.
끊이지 않는 사고, 근본 원인은 '강제징집제도'이러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의 주류적인 시각은 언제나 '개인'에게 화살을 돌렸다. 문제를 일으킨 해당 병사 그리고 평소 원인을 제공한 선임병들이나 해당 부대의 복무 환경을 탓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왔다.
그러니 해당 병사를 전출시키거나 관련자 징계·부대환경 개선 등의 미시적인 대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개인이나 해당 부대의 문제라면, 그가 전역하면 문제는 해결되고 다른 부대에서는 비슷한 일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부대를 막론하고, 전국의 군 부대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구조의 문제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조직 구성원의 대부분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는 군 생활을 시작한 20대 극초반의 어린 청년들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장기간 합숙하며 엄격한 통제 생활을 지속하는 데에서 오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 등을 끊임없이 견뎌내야 한다. 군대 문화도 (선진 강대국 군대에 비해) 비교적 수직적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 갈등 요인들이 잠복해 있다. 효과적으로 관리되지 못하면 언제라도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될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의 병사가 전역하더라도, 문제를 양산하는 구조는 여전히 남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희생자였던 한 병사의 아버지는 지난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아…, 참 착잡하더라고요. 그 사람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일 수 있겠다, (중략)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그런 열악한 환경이면 웬만한 강한 사람이 아니면 정말 견디기 어려운 그런 조건 속에서, 그 사람이 거기에 적응할 수 있게끔 교육과 다른 것 또 적절한 치료 이런 것들이 됐어야 되는데…. 과연 임 병장이 그런 것들을 제대로 받았는지…. 임 병장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기에는 너무 안타까움이 있다."개인적 차원에서의 접근과 동시에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개선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여기에만 그쳐서도 안 된다.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짚고 해법을 마련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러한 사고는 끊임없이 되풀이 될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근대적인 '강제징집제도'에 있다(단순히 '징병제'라고 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식 강제징집제는 징병제 중에서도 매우 특수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서구의 역사에서는 경제성장과 문화의 발전에 따라 시민의식과 인권 감수성이 진화하면서,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들은 사라져갔다. 그중 가장 심한 '강제징집제'는 직업군 모병제로 전환되거나 대체복무를 폭넓게 허용함으로써 철폐됐다. 요즘은 기술 발전과 현대전의 양상 변화에 따라 모병제 전환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국방의 의무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신성한" 의무이니 토 달지 말고 충성하기를 요구한다. 얼마나 평등했던지, (전) 국무총리 후보자, 장관 후보자는 군복무중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어찌된 일인지 고위층이나 재벌가 자손 등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의 군면제 비율이 훨씬 더 높다. 천안함에서 희생된 46인의 장병은 모두 서민의 자식들이었다고 한다. 의사·교수 같은 중산층의 자녀조차 없었다. 모두 기피하는 근무를 '돈 없고 백 없는' 장병들로 채운 것이다.
물론 그들의 격려에 힘입어 청춘을 바쳐도 보상 따위는 없다. 혜택이 고작 0.1%에게도 안 돌아간다는 비판이 있는 군가산점 카드나 만지작거리는 게 전부다. 심지어 복무 중 사망해도 순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그들의 '주술'과 달리 군 복무는 이미 평등한 제도가 아니다. 사회복무요원,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등 여러 가지 불평등한 복무 형태가 존재한다. 운동선수는 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면제되기도 한다. 신체등급 판정기준은 강화되는 쪽으로만 바뀌어온 탓에, 현역 대상이 아니었던 사람이 현역으로 바뀌는 일도 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하지만, 실제로 여성에게는 (국방세·대체복무·사회복무 등) 그 어떤 형태의 국방의무도 부과하지 않는다.
공론장의 실종과 분단 프레임하지만 한국에서 강제징집제에 관한 담론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분단의 현실' 한 마디로 일축된다. '분단' 프레임에 갇혀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다. 모병제는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평가 절하되고, 대체복무제는 '안보불감증'이나 '병역기피심리'로 매도당하기 일쑤다. 이러니 생산적인 토론이 될 리가 없고, 제대로 된 여론 형성 과정도 생략된다. 이 영역에서는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조차 없는 것이다. 마침내, 다양한 견해와 갈등의 존재가 정상인 민주 사회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획일화된 견해로 통일되었다.
'분단'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언어는 '휴전'이다. 언어의 표면을 제거하고 나면, '적국과 대치 중'이라는 의미만 남는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이 있다. '적대국 대치 여부'가 과연 해당 국가의 '병역제도 형태'를 규정짓는 절대적 요건인가 하는 점이다.
세계 최강인 미국은 곳곳에서 전쟁을 주도하거나 참여해왔지만, 그들은 1970년대 월남전 패배 직후 모병제로 전환하고 줄곧 패권을 지켰다. 반면 핀란드처럼 평화롭지만 징병제를 택하는 나라가 있을 수도 있다. 대만은 중국과 '양안 대치'중이던 2002년부터 모병제를 추진하여 2015년까지 전환하기로 했다. 각국은 오히려 국방력 '강화'를 위해 모병제 전환을 추진하는 추세다.
물론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적으로 전쟁과 테러, 시가전이 벌어지는 나라에서는 모병제와 징병제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 모병제여도 전시에는 징집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병제는 가난하거나 인구가 적은 국가는 시도하기 어려운 선진국형 제도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오류가 있다.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약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명제는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에는 이 명제가 맞았다. 일제의 수탈과 전쟁을 겪었기에 나라가 가난했고 기술도 미약했기에, 병력의 양적 규모가 곧 군사력이었다.
하지만 이제 첨단 기술의 발전과 현대전 양상의 변화에 따라 모병제가 더 강한 군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3년 130만 이라크(징병제) 대군은 18만 미군에 17일 만에 완패했다. 2011년 나토군은 리비아에 (육군 없이) 폭격만으로 4일 만에 제공권을 장악했다. 현대전의 템포는 갈수록 빨라지고, 질이 담보되지 않은 병력의 양적 규모는 의미가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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