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 수용소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안에 설치된 불법 수감시설 캠프 엑스레이는 세계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미 해군
이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 이래 다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죠. 이른바 '적 전투원'을 가둬놓은 수용소 때문이었습니다. '캠프 엑스레이(Camp-X)'로 알려진 이 구금시설에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사로잡은 탈레반과 알카에다 포로들이 수용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들이 전쟁 포로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은 국제법의 테두리 밖에서 이들을 처리하겠다는 선언까지 했습니다.
미국은 이들이 모두 고도의 훈련을 받은 위험한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선전했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물론 일부 테러리스트들도 포함돼 있었겠지만 치매를 앓는 70대 노인, 이웃과 사소한 다툼을 벌였던 목동, 심지어는 테러리스트들이 차는 시계로 알려진 카시오 시계를 차고 있다고 붙잡힌 과학 교사까지 이곳에 끌려와 있었던 겁니다. 수용소 안에서 갖가지 고문과 인권침해가 빈번히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폭로됐습니다.
지난 2006년 마이클 원터바텀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관타나모 가는 길'에는 중동출신의 영국 대학생 3명이 친구 결혼식 참석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다가 테러범으로 몰려 관타나모로 끌려간 어처구니없는 실화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짐승처럼 좁은 우리에 감금돼 수시로 폭행과 고문을 당하면서 운동도, 독서도, 대화도 금지된 채 끔찍한 세월을 보내야했던 이들 불운한 청년들의 이야기는 세계인들에 적잖은 충격을 줬습니다.
결국 거센 비판 여론 속에 미국은 캠프 엑스레이를 폐쇄하고 관타나모 기지 내 '캠프 델타(Camp-D)'로 수감자들을 옮겼지만, 역시 초법적인 인권침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2008년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는 관타나모 기지 내 수용시설이 미국의 위상을 손상한다며 이를 폐지할 것을 공약했지만, 지금까지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기준 관타나모에 수용된 테러 용의자는 모두 154명으로 대부분 예멘 출신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의 처리문제는 여전히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평화롭고 낙천적인 노래 뒤에 쿠바 민중의 눈물이...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호세 마르티와 관타나모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관타나메라의 가사는 마르티의 시에서 따온 것이 맞지만,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라는 후렴구는 마르티의 시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후렴구는 1940년대 쿠바의 유명한 유행어였습니다. 당시 유명가수 호세이토 페르난데스는 아바나 CMQ 방송에서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이 프로그램에는 여러 가수들이 출연해서 그날그날 일어난 사건·사고를 노래로 전달하고,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출연자들이 합창으로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라고 외쳤습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사람들은 관타나메라의 작곡자가 호세이토 페르난데스라고 알고 있지만, 정작 호세 마르티의 시에 곡을 붙였던 사람은 페르난데스가 아니라 1940년에서 1963년까지 쿠바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작곡가 훌리안 오르본이었습니다.
자신의 전 생애를 쿠바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마르티의 시에 관타나모가 더해진 것은 쿠바 역사 속에서 이 곳이 지닌 의미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494년 4월 30일 콜럼버스가 처음 이 곳에 발을 디딘 이래 관타나모는 쿠바를 점령한 스페인 침략자의 상륙지로, 또 열강들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의 주요 무대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쿠바 사람들은 독립의 상징인 마르티와 함께 아직도 식민지 상태로 머물러 있는 관타나모를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노래가 쿠바를 넘어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은 바로 미국 가수 덕분이었습니다. 전 세계가 핵전쟁의 공포를 절감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 직후인 1963년, 포크 운동의 기수였던 피트 시거가 평화를 염원하며 이 노래를 미국인들에게 소개했던 것이죠. 피트 시거는 컬럼비아 레코드를 통해 이 노래를 취입했지만 아쉽게도 크게 히트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1966년 10월 남성 3인조 보컬 '샌드 파이퍼스(The Sandpipers)'가 이 노래를 다시 불러 앨범차트 9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비로소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던 것이죠.
아름답고 고운 화음과 서정적인 분위기를 듬뿍 담고 있는 관타나메라는 오늘날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명곡 중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롭고 낙천적인 이 노래 뒤에는 불평등 조약으로 자국 영토를 빼앗긴 쿠바 민중들의 눈물이 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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