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남소연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일정한 나이에 이른 평범한 성인은 누구나 공평하게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갖는다. 부자든 빈자든, 똑똑하든 멍청하든, 배움이 많든 적든 아무 상관이 없다. 가장 못난 사람이라도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어야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민주주의가 왕정이나 귀족정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동료 과학자 중 한 명은 이런 이유로, 복잡한 칩이나 전자회로를 거치게 되는 전자개표기 사용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첨단기기와는 거리가 먼 시골의 촌부까지도 한 눈에 알 수 있는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다. 민주주의도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발을 맞춰 나가야겠지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데에는 나도 크게 동감한다.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의 박영선 원내대표가 새누리당과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안 내용을 보면서 나는 이 상황을 과연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까,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평범한 상식의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수사권보다 진상조사위 더 중요 유가족에 설명하지 않은 건 전략")에서 진상조사위가 수사권을 확보하는 것보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유가족 추천위원수를 한 명 더 늘리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7·30 재보선 이후 수사권과 위원회 구성요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무엇보다 나는 수사권과 구성요건이 왜 양자택일의 문제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재보선 이후 정치지형이 변한 탓이라면, 그 전에 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까? 전후반 무승부 뒤 야권이 연장전 페널티킥을 얻은 것과도 같다던 7·30 재보선에서는 어쩌다 '브라질 스코어'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얻은 것일까? 왜 그 책임을 세월호 가족들이 져야 하는 것일까?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물론 전문가 여론조차 수사권 및 기소권 확보를 선호하는데 왜 박 대표에게는 이것이 선택의 문제였을까? 얼마나 더 우호적인 여론과 조건이 만들어졌어야 했을까?
박 대표의 비밀협상은 그 자체가 심각한 문제박 대표는 수사권을 얻어 봐야 위원회에서 수적으로 밀리면 수사권을 발동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조사위가 관련 자료를 100%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과연 수사권 없이도 세월호 관련 자료를 100% 확보할 수 있을까? 박 대표는 수사권 확보야말로 명백한 진상규명의 가장 유력한 수단임을 잊은 듯하다.
박 대표의 논리는 비유적으로 말해, 운전면허를 따 봐야 돈이 없어 차를 못 사면 어차피 운전을 할 수가 없으니 면허를 따는 대신 일단 차를 살 돈부터 모으자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면허가 없으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갈 수가 없다. 물론 돈도 넉넉해야 원하는 차를 살 수 있다. 그러니까 그 둘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모두가 충족되어야 하는 필요조건이다.
박 대표는 특검추천권을 포기하더라도 상설특검법 안에서 중립적인 특검을 충분히 내세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박 대표의 바람일 뿐이다. 박 대표는 특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여야 4인이 합의를 하면 나머지 3인(법무차관, 법원행정차장, 대한변협 추천 몫)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걸로 기대하겠지만, 애초에 여야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은 수사 및 기소권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별검사에게만 주어지는 셈이다. 세월호 특검이 꼭 밝혀야 할 내용 중에는 국정원과 세월호의 관계, 세월호의 정확한 항적과 해경 교신내용, 해경이나 해군 등의 인명구조가 늦어진 지휘체계상의 원인 등 박근혜 정권의 권력핵심을 수사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과연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이 국정원과 청와대 등 세월호 관련 권력 핵심부의 문제점을 제대로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박 대표는 특별법 협상에 나서면서 처음부터 수사권보다는 위원회 구성요건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그 내용을 유족들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것은 협상내용이 미리 공개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박 대표의 비밀협상은 그 자체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설령 박 대표의 협상내용이 옳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건의 일차적 당사자인 세월호 가족들이 배제된 협상안은 가족들의 협상안이 아니라 박 대표 개인의 협상안일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의뢰인과 상의도 없이 검사와 합의해 놓고 어쩔 수 없었다며 의뢰인에게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박 대표의 협상전략이 얼마나 절묘하고 기발한 것인지 알 재간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유족과의 사전협의도 하지 못할 만큼 복잡하고 까다로운 정치역관계가 작용되는 협상전략이라면 처음부터 잘못된 전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을 통상적인 국회에서의 여야협의로 인식한 듯하다. 하나를 내 주고 다른 하나를 얻는 그런 방식 말이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에 관한한, 뭔가를 내주고 뭔가를 얻겠다는 애초의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초등생 이해 못하는 협상전략, 그것은 '당리당략'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