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천둥 공포비가 오기 시작하면 가을은 천장이 낮은 곳을 찾아 몸을 숨긴다
박혜림
- 혹시 동물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 : "전 늘 노력해요. 기억하고 있는 노력으로는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강아지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본 적이 있어요. 최소한 그 친구의 강아지는 좋아하려고 수시로 생각했지요. 또 동생이 새끼 강아지를 몰래 집에 데려왔던 날 왠지 돌봐주고 싶은 마음에 잘해보려고 하기도 했었고요. 특히 요즘은 더 고민이에요. 제 아이가 저처럼 강아지를 무서워할까봐. 이거 정말 불편하거든요."
-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지구상의 다양한 동물입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요?고 : "동물을 싫어하는 도시인은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새, 특히 비둘기를 잘 피해 다녀야 합니다. 비둘기가 먹이를 먹느라 내 앞길을 가로막을 때가 가장 난감한데요. 동행인이 있으면 그 사람 뒤에 숨어서, 혼자일 때는 다른 길로 우회해서 지나갑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 길로 갈 때도 있고, 옆 골목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강아지가 지나가면 귀엽다 싶지만 막상 그 애가 내 발을 킁킁대려고 하면 재빨리 피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어요. 그들더러 밖에 나다니지 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내 쪽에서 일정거리를 유지하는 수밖에요."
- 그럼에도... 어쩌다 한 번은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때도 있지 않을까요? 고 : "대부분의 동물은 보기만 할 때는 귀여워요. 자기 배 위에 조개를 올려놓고 돌멩이로 깨서 먹는 수달은 얼마나 귀여운가요!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비행하는 매의 모습에서는 경외감마저 듭니다. 코끼리 무리가 이동하다가 죽은 코끼리를 발견하자 묻어주는 모습을 TV에서 본 기억이 있어요. 그런 장면에서는 목이 메이기도 해요. 생존을 위해 딱 필요한 만큼만 자연으로부터 가져가고 자연과 융합해 살아가는 동물이, 욕심 때문에 자연과 지구를 망치는 인간보다 훨씬 낫다고 늘 생각합니다. 하지만 설치류와 조류, 파충류는 단 한 번도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요."
- 특히 이럴 땐 정말 싫다, 이런 상황은 못참겠다 하는 경우는 언제인가요?주 : "엘리베이터처럼 밀폐된 공간에 목줄을 하지 않은 개와 함께 있는 경우 정말 힘듭니다. 공간이 좁아 어디 피할 곳도 없는데 보호자가 안지도 않고 그대로 풀어 놓으면 눈물이 날 정도로 무섭습니다."
고 : "저는 경우에 따라서는 심한 정도의 결벽증이 있는데요.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는 건 참기 힘들어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발을 닦이지도 않은 채 식탁이나 의자에 올려놓는 행위, 화가 납니다. 깨끗하지 않은 상태로는 반려동물이든 보호자든 제 식기와 음식을 건드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전 아마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겁니다."
아 : "활동적이고 뛰어다니는 강아지요. 언제 가까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어요. 특히 공원 같은 곳에서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보면 미칠 것 같아요. 심장이 막 뛰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제일 어려운 건 저는 숨이 넘어가는데 "에이, 괜찮아요" 하면서 무심하거나 심지어 만져보라고 할 때죠. 강아지에게도, 그 보호자에게도 미안한 일이지만 나도 좀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는 사랑과 함께 책임도 동반"- 자제분이나 어린 조카들에게 자신의 공포의 대상에 대해서 교육하실 일이 생기면 어떻게 진행하시나요?고 : "어릴 때 시골에서 산 경험이 있어요. 우연히 남자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아서 기다란 꼬챙이에 끼워 나열해 놓은 장면을 목격했어요. 그건 그야 말로 학살이었습니다.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라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해요. 내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혹시 싫어하는 대상이라도 그것의 생명을 거둘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죠. 생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존중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주어진 생명을 온전히 마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회가 있다면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네요."
- 좋아서 죽고 못사는 수많은 동물애호가들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방법이 있으신가요?고 : 우리 모두는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나는 좋아할 수 없고, 좋아하고 싶지도 않지만 다른 사람은 좋아할 수 있죠.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굳이 이해하려고 애쓸 이유조차 없다고 생각해요. 마음껏 사랑하세요.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할 필요 없습니다. 눈치 보지도 마세요. 내가 특정 동물을 싫어할 자유가 있듯 동물애호가들은 동물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갈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 혹시 과거에 비해 마음이 조금은 유해졌다 싶으시다면 어떤 연유일까요? 아님 그 반대(점점 더 싫어!)일까요?주 :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는 사랑과 함께 책임도 동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애정을 갖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주변 사람의 취향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그 점은 점점 싫어지네요."
고 : "제 경우, 싫은 동물은 점점 더 싫어지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박물관에서 박제된 악어 가죽을 만지기도 했어요. 학교 뒷산에서 도마뱀을 발견하면 신기하고 즐겁기도 했죠. 그때는 비둘기를 질색하지도 않았어요. 생각해보면 흙과 멀어진 뒤로 싫은 동물에 대한 감정이 나날이 악화된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깨끗하고 쾌적한 것, 세련된 것이 좋은 한편, 흙 속에 섞여 있을 병균, 오물들이 싫고 염려됩니다. 내 안에서 커져가는 결벽증이 흙(자연)과 친한 동물들을 밀어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