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어머님이 이상해요"...혼이 쏙 빠지다

[공모-잔치, 어디까지 해봤나요] 딸 결혼식 이야기

등록 2014.10.28 10:34수정 2014.10.2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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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 어머님이 이상해요"
"신부 어머님이 이상해요"정수권

'흑흑….'


운전대를 잡은 아내가 운전대에 얼굴을 묻었다.

"아니, 울기는… 왜?"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심정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러시아워, 평소에도 복잡한 부산 해운대 요트경기장 앞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혔다. 꼼짝하지 않는 차 안에서 아내가 운다. 딸 결혼식 날 아침이었다.

딸 결혼식 하루 전, 행사는 많고...

기러기  함과 함께 온 한쌍
기러기 함과 함께 온 한쌍정수권

30여년 전 내가 결혼식을 할 때에는 어른들이 정해준 예식장에서 결혼을 하다 보니 예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에 대한 보상 심리일까? 딸에게는 일생에 한 번 뿐인 결혼을 꼭 하고 싶은 곳에서 하도록 했다.


봄에 상견례를 해 가을에 결혼식 날을 잡았다. 시간 여유가 많아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과 예비사위는 주말이면 부산에서 예식장을 알아보고 결혼준비를 했다.

"아빠, 예식장을 정했어요. 최근에 문을 연 무척 좋은 곳으로 하객들이 드실 음식도 최고예요. 아빠도 미리 한 번 가보세요."
"오냐, 그러마."



집에서 가까워 아무 때나 가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신랑신부도 아닌 혼주가 굳이 미리 가볼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랬는지 방문은 차일피일 미워졌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다음 날이면 결혼식인 상황.

결혼식 하루 전, 시골에서 형님내외분과 동생들 그리고 여러 친척 분들이 집에 오셨다. 결혼식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의 명소 이기대 둘레길을 산책하고, 엄청나게 커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는 부산의 한 백화점에서 식사와 사우나를 하고 바로 옆 예식장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가을은 각종 행사가 많다. 그중에도 10월에는 특히 많다. 아침부터 동문체육대회 참석을 시작으로 해운대에서 열린 중학교 동창회에 들렀다가 밤늦게 귀가했다. 그때까지도 다들 잠을 자지 않고 옛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 아침에는 모두들 늦잠을 잤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아침 해장국으로 유명한 광안리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와 결혼식 채비를 했다.

"어서 준비해서 빨리 가요." 

아내가 아들과 함께 식장에 입을 한복과 준비물을 차에 실으면서 나에게도 재촉했다. 그때까지도 느긋하게 못 다한 얘기를 나누다 마지못해 새로 산 양복을 들고 일어섰다. 딸이 미리 예약해둔 미용실에서 머리를 매만지기로 하였는데 매사에 느긋한 나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백화점 주차장에 차를 댄 후 아내와 시간이 없으니 정확히 10분 후에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각 사우나실로 들어갔다. 받아든 열쇠로 옷장 문을 막 여는데 전화가 왔다. 안동에 사시는 고모였다. 몸이 불편한 고모는 오지 못하고 대신 고종내외가 참석한다고 했다.

그동안의 안부와 함께 참석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축하로 대신하다보니 통화가 길어졌다. 겨우 전화를 끊고 목욕탕으로 들어가 대충 씻고 나왔는데도 벌써 입구에서 아내가 쏘아 보고 있었다.

차에서 기다려도 안 와서 다시 왔단다. 나를 본 아내는 다시 주차장으로 가고 나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신으면서 시간을 보려는데, 아차~ 휴대폰! 다시 옷장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발장 열쇠를 돌렸다.

바빠 죽겠는데, 일은 계속 꼬이는데...

그런데 열쇠가 뽑히지 않는다.

'이상하다. 이게 왜 안 되지?'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아무리 용을 써도 뽑히지 않았다. 뭐야? 시간은 자꾸 가는데….

"무슨 일입니까?" 
"열쇠가 안 뽑혀서…."
"기다리세요!"

정장근무복에 무전기를 든 여직원이 사무적인 어투로 말하면서 다시 사라졌다. 뭐지? 그렇게 엉거주춤 서있는데 잠시 후 드디어 문이 열렸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다시 탈의실 옷장 쪽으로 가려던 나를 직원 한 사람이 불러 세우며 동행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키를 뽑아서 남의 옷장을 열 수도 있어 그러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직원이 와서 탈의실까지 동행하여 옷장을 확인 후 휴대폰을 갖고 나오니 이번에는 우이쒸~ 이건 또 머꼬? 이런 경우 나가는 문이 따로 있단다.

열도 나고 성난 아내 얼굴이 어른거려 더욱 허둥대며 겨우 나가는 문을 찾았다. 아이고, 그런데 주차장에서 차를 찾을 수가 없다. 내릴 때 너무 바빠서 주차 위치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넓은 주차장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보니 저쪽에 아내가 서있다. 갑자기 등이 서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 머리를 매만지러 예약해놓은 헤어숍으로 가야한다. 아내가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한 뒤 출발했다. 둘 다 말이 없다. 차는 네비의 안내를 따라 사거리를 지나 해운대 백사장 쪽으로 가는데 아무래도 조금 이상했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아내는 자꾸만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다가 그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해운대 동백섬이 보이고 차는 크루즈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했다. 전화로 위치를 확인하니, 아이고 맙소사~ 이곳은 이름이 같은 해운대 지점이었다. 당황한 아내나 나나 사전답사를 하지 않음을 자책하며 차를 다시 돌렸다. 요트경기장 쪽으로 오다 차가 막히자 아내가 그만 울고 만 것이다.

예식장 코앞에 둔 박머시기를 두고 얼마나 헤매고 돌아 돌아서 왔는지 아내는 기진맥진이었다. 입구에 아내를 내려주고 주차장 입구를 찾다가 건물 구조가 복잡해 다른 건물 주차장에 차를 주자했다. 그리고 미용실에 들어서니 또 다른 손님들 속에서 아내는 이미 머리를 하고 있었다.

급했던지 아가씨 두 명이 붙어서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직원이 나를 보더니 아내가 탈진했다며 이럴 경우 십중팔구는 생리를 한다며 여성 생리대를 사오라고 했다. 아까 나와 위치를 묻는 전화통화를 한 그는 다급했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내 평생 말로만 들었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그걸 사오라고? 내가 그걸 어떻게 사오냐고. 나는 못하고 대신 좀 사다주라고 했더니 지금 손님이 너무 많아 갈 수가 없다면서 나중에 큰일(?) 난다며 자꾸만 재촉을 한다. 이런 젠장~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 직원은 상가 내에 상점이 있다고 했다.

(엥~소리로) "저어, 여자 생리대 있습니까."
"사이즈가 얼만데요"
"……?"


아무거나 빨리 달라고 하자 그래도 알아야 한다며 끝내 찾아 주지 않는 아줌마가 저쪽에 가서 골라 오란다. 가서 보니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아 그냥 나와 버렸다.

"혼주님이 너무 젊으시네요."
"여기 오면 다 그렇게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부모님을 보니 신부님도 예쁘겠군요."


다행히 나는 남자 머리라 빨리 끝났다. 탈의실에서 가져간 와이셔츠와 양복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또 한 번 아이고~ 이번엔 허리끈이 없다. 이런! 언젠가 처남이 해외 출장길에 지갑과 함께 세트로 사다준 걸 결혼식에 매려고 안방 화장대 서랍에 고이 모셔(?) 둔 걸 깜빡했다. 할 수 없이 아들에게 전화해서 집에 가서 가져 오라고 했다. 식장에 도착한 아들은 되레 왜 아직 안 오느냐고 물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 도착, 내 손에 들린 것은...

나의 딸 어린 시절 해운대 백사장에서
나의 딸어린 시절 해운대 백사장에서 정수권

그런데 다시 아내의 머리를 하던 아가씨가 아무래도 아내가 너무 기운이 없다며 나에게 또 약국에 가서 영양제 알약과 마실 것을 사다 주라고 했다. 이번에도 길 건너편 대형마트에 약국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새 구두에 허리띠도 매지 않은 양복을 입고 약을 사러 갔다. 방금 한 어색한 머리는 바람에 다 날리고…. 그렇게 겨우 당도한 마트는 정기휴일! 으~ 정말 꼬인다 꼬여.

혹시나 약국은 따로 문이 있나 하여 그 커다란 마트 건물을 한 바퀴 돌아봤다. 터덜~터덜~ 새 구두는 발이 아프다. 이곳은 부산 벡스코 주변이라 대형건물들이 즐비해 차를 타지 않고는 이동이 힘들기도 하거니와 약국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두리번 거리다보니 저 멀리 24시간 영업을 하는 편의점이 보였다. 혹시나 하면서 영양제가 있냐고 물었더니 학생 같은 소녀가 자기도 어제 저녁부터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로 근무를 해서 잘 모른다고 했다.

둘이서 진열대를 뒤지며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찾았지만 마땅한 게 보이지 않았다. 대신 드링크류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이 약효가 더 있을 듯하여 컨디션이란 걸 한 병 사들고 손에 꼭 쥐고 돌아왔다. 그러나 아내는 그것은 술 마신 사람의 술 깨는 약이라며 끝내 마시지 않았다.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려보낸 터라 주차장에서 차를 미리 빼서 미용실 정문 옆 큰길 사거리에 비상 깜빡이를 켜고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 후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 어떤 여자가 후다닥 뛰어 나오고 있었다.

'저 여자도 우리처럼 엄청 바쁜가 보다.'

그런데 그 여자가 냅다 내 차로 뛰어 와서 문을 열려고 하는 게 아닌가.

'누군데, 완전 정신이 나갔나 보네' 하고 있는데, 아내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일이. 기진맥진한 얼굴과 울었던 눈의 화장을 어찌나 진하게 했던지 그만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맨 얼굴도 고운(?) 아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찌 어찌하여 경우 예식장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아내는 한복을 들고 먼저 내렸다. 나는 실어둔 짐을 챙겨 엘리베이터 앞에 섰으나 몇 층으로 올라갈지 몰라 한참을 머뭇거렸다. 겨우 찾은 식장에는 그새 하객들로 가득하고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의 손에는 컨디션 한 병이 들려 있었다.
#결혼식 #혼주 #결혼식장 #사전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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