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낳으면 대놓고 '따돌림'
<미생> 선 차장, 현실에도 많다

워킹맘을 살려야 기업도 산다... 유연근무제·심리치료 등 적극 추진해야

등록 2014.12.04 16:16수정 2014.12.0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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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생> 속 한 장면.
<미생> 속 한 장면.tvn

"세상이 아무리 좋아졌다해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아. 워킹맘은 늘 죄인이지. 회사에서도 어른들께도 아이들에게도."

드라마 <미생> 속 워킹맘 선 차장의 말이다. 현실에도 일과 육아의 기로에 놓인 선차장은 무수히 많다. 서울에서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일하는 박아무개(36)씨는 첫째 아이를 가지면서 어쩔 수 없이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임신을 하고도 새벽5시까지 일하기 일쑤였고 조산 위험까지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박씨는 "주위에서 출산휴가가 끝나고 돌아오면 대놓고 따돌림 당하는 경우를 봤다"면서 "친언니도 워킹맘이었지만 주변 동료들의 압박이 심해 결국 일을 그만뒀다"고 털어놓았다.

박씨는 4살이 된 첫째는 어린이집에 2살 둘째는 친정엄마에게 맡긴다. 우는 첫째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때마다 눈물이 핑 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우는 아이가 눈에 밟혀서다. 친정엄마에게도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는 워킹맘에게 필요한 건 다른 여자의 희생이라고 말한다.

"여자가 일을 하려면 또 다른 여자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애 봐줄 친정이나 시댁부모가 안 계시면 워킹맘은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이에요."

"한국 사회에선 워킹맘은 철인 아니면 불가능"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워킹맘들이 결국 육아를 위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 지난달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를 바탕으로 집계한 경력단절여성(이하 경단녀) 통계를 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15∼54세 기혼 여성 중 결혼, 임신·출산, 육아, 초등학생 자녀교육 등 가족 돌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경단녀는 213만9000명이었다.


이는 전체 기혼 여성 956만1000명 중 22.4%에 해당하는 규모로 5명 중 1명꼴이다.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기혼 비취업여성 389만4000명의 절반 이상 인원이 과거 직장에 다니다가 경단녀가 된 셈이다.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결혼(41.6%)이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육아(31.7%)와 임신·출산(22.1%), 초등학생 자녀교육(4.7%) 등이 이었다.

전남 광주의 한 대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워킹맘 김아무개(37)씨는 태어난 지 120일이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터로 나가야 했다. 법적으로 출산휴가는 90일이 보장되지만 10일 정도 덜 쓰고 서둘러 복귀했다. 김씨는 "1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신분인데 휴가를 다 쓰고 돌아오기에는 눈치가 보였다"며 "육아휴직 1년을 쓰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고 말했다.


남편과는 주말부부인 김씨는 집안일과 육아로 심신이 지쳤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친정·시댁 부모님들이 몸이 편찮으셔서 아이를 돌봐줄 형편이 못 된다"며 "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주는 경우는 정말 복 받은 케이스"이라고 웃어보였다.

아이 둘을 계획했던 김씨는 현재는 둘째를 가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정부에서 경력단절녀니 저출산대책이니 큰 소리만 치고 이제는 보육료를 줄인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화가 치민다"며 "이 나라에서 애를 키우며 일한다는 거는 철인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고 꼬집었다.

이어 "주변에서 직장 내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아줘서 불편없이 육아와 일을 병행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며 "만약 내가 일하는 직장 내에 아이를 맡아주는 보육시설이 있다면 꿈만 같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수한 워킹맘 놓치지 않기 위해 사내 어린이집 만들어

 2010년 7월에 설립된 서비스에이스는 임신하면 퇴사하는 직원들을 붙잡기 위해 1년 만에 사내 어린이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2010년 7월에 설립된 서비스에이스는 임신하면 퇴사하는 직원들을 붙잡기 위해 1년 만에 사내 어린이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서비스에이스

현재 직장내 어린이집을 설치한 기업은 극소수다. 2013 보건복지부 보육통계에 따르면 전체 어린이집 4만3770개 중 직장어린이집은 619개소로 전체의 1.41%에 불과하다. 보육아동 수는 34479명으로 전체 2.32%수준이다.

물론 많은 이윤을 내야하고 생산 효율을 위해 씨름하는 기업들에게 워킹맘을 위한 경영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조건 속에서도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보육 정책, 유연근무제 등을 실천해온 기업들도 있다.

고객상담 업무를 하는 '서비스에이스'(SK텔레콤 고객서비스 자회사)는 구로구에 있는 본사 내에 '하람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2010년 7월에 설립된 이 회사는 임신하면 퇴사하는 직원들을 붙잡기 위해 1년 만에 사내 어린이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전수영 HR팀 매니저는 "조직원들의 80%이상이 여성인데 임신을 하면 퇴사로 이어지니까 우수구성원들을 잃지 않기 위해 어린이집을 만들었다"며 "사내에 어린이집이 있으면 아이가 아플 때 같이 있을 수 있어 워킹맘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육아휴직 뒤에 복직을 하면 아이와 갑자기 떨어져야 하는데 아이와의 시간을 더 주기 위해 4시간~6시간의 시간선택근무를 하도록 배려한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의 전체 직원은 4300명 정도로 본사에는 10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본사 직원이 아니더라도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다. 이 어린이집은 49명 정원으로 평균 2.5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또한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방과 수유실도 마련했다.

'로레알코리아'도 워킹맘들을 위한 기업 문화를 인정받고 있다. 로레알코리아는 정규직 직원 1430여명 중 여성이 88%(2013년 기준)에 이른다.

16년간 로레알코리아에서 근무한 김아무개(42)씨는 "13살짜리 딸아이가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는 점을 발견하고 회사에서 지원하는 '행복찾기 프로그램'을 이용해 치료했다"며 "아이의 건강을 놓칠 수 있는 바쁜 워킹맘들에게는 너무나 유용한 제도"라고 말했다.

로레알코리아는 직원과 직원 가족들을 위해 종합상담지원 프로그램인 '행복찾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있다. 이 프로그램은 직원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각종 스트레스와 개인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 회사가 그 고민을 함께 나누고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문 상담 및 교육 프로그램이다.

송지영 로레알코리아 홍보실 과장은 "특히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직원들이 자녀들의 심리, 성격 검사와 상담까지 받을 수 있어 직원들의 반응이 좋다"면서 "프라이버시를 위해 직원들의 상담내용과 프로필은 철저하게 비밀 보장되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팀에서 회사로는 전혀 보고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정규직도 육아 휴직 눈치 보지 않도록 기업 문화 필요"

항공사 여객 서비스 위탁수행 및 운항관리 지원 업무를 하는 기업 '에어코리아'는 임신을 한 직원에게 임부복 유니폼이 따로 마련된다. 임신을 한 직원에게는 연장근무, 오후근무 등을 배제시키는 등 임산부에게 배려하는 기업 문화가 자리잡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임산부들의 근무 시간을 2시간 이내로 단축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물론 급여는 같다.

워킹맘들을 위해 2011년부터 시간선택제 근무도 운영되고 있다. 임신한 직원이 업무 시간과 업무 시작 종료 등 근무형태를 정하는 것으로 임금과 복리후생 등에서 전일제 근무자와 차이를 두지 않고 있다. 

이 회사는 법정 출산 휴가 90일과 육아휴직 1년을 보장한다. 그러나 워킹맘들이 이 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유는 두가지다. 공백으로 인한 업무 차질, 그리고 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에어코리아는 육아 휴직 시 빈자리는 기존의 직원들로 대체된다. 업무 특성상 빈자리를 대체 할 수 있는 기존 인력이 많기때문에 휴직을 낼 때 눈치 보는 일이 없다. 육아 휴직을 내는 사람 대신 새로운 인력을 뽑기 보다 그 직원이 일터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지원해주는 문화인 것. 또한 육아 휴직을 한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회사에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웹메일 게시판'을 운영한다. 회사 정보뿐 아니라 육아정보, 육아용품 교환 등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직원들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김태현 성신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워킹맘이 늘고 있는 동시에 경력단절현상과 저출산도 동시에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기업에서도 육아휴직 제도 등을 갖췄지만 제대로 안 지켜지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여성들이 기업에서 평등하게 일하고 눈치보지 않고 양육을 할 수 있는 문화, 그리고 가정에서도 남자와 양육, 가사분담을 나누는 문화가 자리잡지 않으면 워킹맘들은 계속 고통받을 것"이라며 "특히 정부에서 여성들을 위한 규직이나 시간선택제 근무를 확충하겠다고 하는데, 우선 비정규직들도 육아와 휴직에서 눈치보지 않도록 하고, 정규직과 같은 복지 혜택을 주는 등 질적 개선에 신경써야 한다"고 밝혔다.
#워킹맘 #미생 #로레알코리아 #서비스에이스 #에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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