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주재소 앞에서 "대한독립만세"?

[광명기행 마지막회] 3·1 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

등록 2014.12.28 16:12수정 2014.12.2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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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신초등학교. 1919년에는 이 자리에 경찰 주재소가 있었다.
온신초등학교. 1919년에는 이 자리에 경찰 주재소가 있었다.유혜준

지난 토요일 오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온신초등학교를 찾았다. 학교가 쉬는 날이라서 그런지 학교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정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후문 역시 막아놓았다. 교정에서는 사람 그림자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닫아놓은 후문을 열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너른 운동장은 전날 밤에 내린 비가 미처 빠지지 않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디쯤 있을까? 운동장을 둘러보면서 내가 찾고자 한 것은 '3·1 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였다. 온신초등학교가 광명지역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이기 때문이다. 기념비는 학교 건물 오른쪽 한갓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념비 앞면에는 '3·1 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발상지에서 일어났던 일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지난 1995년 11월 25일.

1919년, 온신초등학교가 있는 이 자리에는 학교 대신 경찰 주재소가 있었다. 3월 28일, 광명지역 농민들은 자발적으로 몽둥이와 곤봉, 돌 등을 들고 경찰 주재소를 습격했다. 왜?

이정석은 광명지역 3·1 만세운동을 이야기하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광명지역 3·1 만세운동 발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1919년 3월 27일 밤, 당시 소하리에 살던 이정석은 노온사리에 있는 경찰 주재소 앞에서 홀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다른 곳도 아니고 주재소 앞에서 만세운동을 벌였으니, 주재소에 잡혀 들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3월 28일, 이정석이 주재소에 구금되자 아버지 이종원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맏아들이 주재소에 잡혀들어 갔는데 손 놓고 있을 아버지는 아무도 없을 터. 이종원이 도움을 받으려고 달려간 곳은 최호천의 집이었다. 당시 최호천은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 3·1 만세운동으로 시작된 시위 때문에 휴교령이 내려져 집에 돌아와 있었다.

최호천은 아들을 구해달라는 이종원의 호소를 받아들였다. 밤에 사람들을 모아서 주재소로 몰려가서 이정석을 구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던 것이다. 최호천과 함께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윤의병 역시 소식을 듣고 이정석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3월 28일 밤, 최호천은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주재소로 가서 이정석을 구하자고 제안했고, 동네 사람들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최호천을 따라 이정석을 구하기 위해 나선 이들은 백여 명에 이른다. 윤의병은 내가리대리의 동민 백여 명을 더 모았다. 시위에 가담한 사람은 200여 명으로 불어났다.

 3·1 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
3·1 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유혜준

이들은 이정석을 구하러 주재소로 가기 전에 목소리를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광명지역에서도 3·1 만세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시위대는 빈 몸이 아니었다. 최호천은 시위대에게 무장하도록 권했다.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는 것이니만큼 무장한 경찰이 이들을 향해 총을 쏠 수도 있고, 폭행을 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시위대는 몽둥이와 돌로 무장을 했고, 주재소로 향했다. 주재소에 도착한 이들은 주재소를 포위한 뒤 "이정석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시위대는 몽둥이로 주재소 게시판을 때려 부쉈고, 주재소 숙직실 벽에 구멍을 내기도 하면서 위협을 가했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일본인과 한국인 순사와 순사보 등이 있었지만 밖으로 잘못 나갔다가는 몽둥이에 맞아죽을 판이었으니 이들은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자 시위대는 둘로 나누어 한국인 순사보 집으로 향했다. 이들을 각각 이끈 사람은 최호천과 윤의병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찾고자했던 순사보 김정환과 최우창을 찾지 못하고 다시 주재소로 돌아와야 했다.

시위대가 다시 몰려들자 그제야 순사들은 주재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시위대가 구금된 이정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일본인 순사는 "이정석이 주재소에 없고 본서로 넘어갔다"며 "29일에 본서에 들어가서 이정석을 풀어주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시위대를 달랬다.

이 때 이정석의 아버지 이종원은 말만으로는 믿을 수 없으니 각서를 써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련한 순사는 "관리인데 약속을 어기겠느냐"면서 틀림없이 풀어주겠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시위대에게 해산할 것을 요구했다. 시위대는 그 약속을 믿고 다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뒤 자진해산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경찰이 순순히 독립만세 1인 시위를 벌인 이정석을 풀어줄 리가 없었다. 이정석을 풀어주는 대신 주재소를 습격한 최호천, 윤의병, 이종원을 포함해 유지호, 최정성, 김인한, 최주한 등을 만세운동 주동자로 체포했다.

잡혀 들어간 이들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최호천은 징역 4년, 윤의병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광명지역 3·1 만세운동의 발단이 된 이정석은 아버지 이종원과 함께 벌금형에 처해졌다. 최주환과 유지호는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3·1 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
3·1 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유혜준

1919년, 광명지역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쳤던 이들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주재소를 습격하면서 민족의식이 고취된 것처럼 보였지만, 시위대가 일본인 순사의 말만 믿고 자진해산했기 때문이다. 하긴 자진해산하지 않고 무력으로 이정석을 탈취했다면 시위대 주동자들은 훗날 더 큰 고초를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광명지역의 3·1 만세운동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지만, 이들이 한 일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오롯이 남겨졌다. 만세운동에 나섰던 이들은 훗날 훈장을 받으면서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1990년에 최호천·윤의병·최주환·유지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이정석에게는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된 것이다.

이정석이 단독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광명지역 농민 200여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이정석을 풀어달라고 요구하면서 습격했던 경찰 주재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1934년 4월 1일 주재소 자리에 학교가 들어섰다.

광명지역에 본격적인 근대식 학교가 들어선 것은 1927년으로 4월 1일에 서면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당시는 시흥군 서면이었던 지금의 광명시 소하동 904번지였다. 그리고 1934년 4월 1일 서면공립보통학교 부설 간이학교가 노온사리 경찰 주재소 자리에 설립되었다. 지금의 온신초등학교 자리였다.

주재소는 없어졌지만 광명지역의 3·1 만세운동 역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95년 11월 25일, 광명지역의 3·1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온신초등학교에 세워졌다. 그리고 2002년 11월 30일, '3·1 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는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1934년에 설립된 서면공립보통학교 부설 간이학교는 1947년 7월 15일, 온신국민학교로 정식 개교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14년 현재 온신초등학교는 38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현재 온신초등학교는 전교생이 75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다. 한 학년이 1개 반으로 구성돼 있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부 6개 반밖에 되지 않는다. 온신초등학교는 2011년에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광명기행 #주재소 #3·1 만세운동 #광명시 #온신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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