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연사 백사마을에서 버려진 개들을 거두어 기르던 절. 왼쪽 구석에 유기견이 보인다.
박종무
'들개'가 돼버린 유기견들, 책임지는 사람은 없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은 북한산 일대다. 은평 뉴타운 등 인근지역이 재개발되면서 버리고 간 개들이 야생화되어 등산객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9년부터 320여 마리의 유기견을 포획, 안락사했고, 지금은 인근 구청 등 지자체까지 합세해 포획 중이다. 지난 12월 19일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도 60여 마리의 개들이 남아 있지만, 아무리 포획을 해도 한 번에 여러 마리씩 새끼를 낳는 개들을 모조리 없애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개들은 '유기견'으로 간주되지만, 사실상 대를 거쳐 길에서 태어난 경우도 많고, 10일 동안 보호해도 입양될 가능성이 없어 결국에는 살처분 된다.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유기동물 포획과 보호, 안락사 비용으로 위탁업체에 지불해야 하는 10만 원(한 마리당)이 아까울 법도 하다.
문제는, 이런 일이 재개발 지역마다 어김없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는 북한산 개들처럼 '야생화'된 유기견이 '들개'로 간주되어 처분될 수 있도록 지정·고시할 것을 환경부에 건의해왔다. 그러나 환경부는 '야생생물법'의 기본 취지가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데 있기 때문에 버려진 개를 야생동물로 지정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는 이미 버려진 개들의 처분을 위한 방법일 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재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거나 예정된 지역은 2013년 말 기준으로 924개 구역, 서울에만 231 곳이다. 이 많은 지역에서 한꺼번에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의 유기동물이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 한데도, 사전에 이를 예방하는 일에는 다들 손 놓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동물보호단체에는 전국 곳곳의 철거촌에 버려진 동물들을 구조해달라는 요청이 일 년 내내 들어온다. 생명이 위급하거나 급히 치료가 필요한 동물의 경우 몇 마리씩 구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호소에 동물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수십에서 수백 마리까지 되는 동물들을 한꺼번에 구조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동물 유기'는 불법, 그러나 7년간 처벌은 4명에 불과해 동물을 '유기'하는 행위는 엄연히 동물보호법에서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적발될 경우에는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2007년 동물 유기가 불법이 된 이래로 동물 유기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고작 4명에 불과하다. 연간 10만 마리가 넘는 동물이 버려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실소가 나올 만한 얘기다. 이는 곧 '기르던 동물을 길에 버리는 일'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꼭 재개발 지역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주택에서 살다가 아파트로 입주하는 경우, 자연스럽게 '개는 데리고 갈 수 없다'고 결정한다. 동물보호단체에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으니 기르던 개를 받아달라'는 전화가 심심치 않게 온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생각조차 이런데,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에게 기르던 동물이니 책임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할지 의문이다.
문제는 주거환경개선지역 주민 대부분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이라는 점이다.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당장 살던 집을 떠나면 자기 몸 하나 누울 자리 찾기도 버거운 사람들도 많다. 어쩌면 이들에게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는 사치일 뿐이다. 원래 살던 사람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해 보다 편히 살게 하는 것보다 경제적 이득이 목적이 되어 원주민들은 내쫓기듯 떠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재개발 사업 전반의 문제가 결국에는 애꿎은 동물들까지 거리로 내모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지역일수록 정부와 주민들, 동물보호단체, 자원봉사자들이 합심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동물의 문제일 뿐 아니라 주변 지역의 안전과 공중보건과도 직결된 문제다. 힘겹게 사는 동안 정이 들었던 동물을 하는 수 없이 포기하면서 상처를 받는 주민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