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방학, 아이와 함께 출근했어요

[초보 학부모 이야기] 초등학교 방학에 이은 유치원 방학, 맞벌이 부모의 선택

등록 2015.01.06 20:25수정 2015.01.06 20:2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초등학교 1학년 첫째아이 겨울방학이라고 해서 학교에서 보내준 알림장을 보았다. 알림장 맨 앞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겨울방학'이란 단어를 보니, '국민학교' 시절 겨울방학 풍경이 떠올랐다. 여름방학보다는 좀 길고 개학 후엔 또 일주일간의 봄방학이 있어서 겨울방학은 그야말로 놀이 천국이었다.


a 우리 아파트에서 본 눈 쌓인 풍경 울산은 지리적으로도 그렇지만, 눈이 거의 오지 않는다. 어쩌다 몇센티라도 오면 교통대란이 일어난다. 버스도 택시도 모두 멈춰선다. 제설작업이 되지 않는데다 눈길에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에서 본 눈 쌓인 풍경 울산은 지리적으로도 그렇지만, 눈이 거의 오지 않는다. 어쩌다 몇센티라도 오면 교통대란이 일어난다. 버스도 택시도 모두 멈춰선다. 제설작업이 되지 않는데다 눈길에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 김승한

겨울방학 때도 날씨는 춥지만 여름방학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대나무를 잘라 문풍지를 덧대어 만든 방패연, 꼬빡연을 참 많이 만들어 놀았다. 연과 얼레 사이의 줄을 50미터 가량 띄워놓은 다음, 얼레를 집 앞 논바닥에 박아 놓아 하루 종일 혼자 날고 있는 연을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었다.

개울가에 얼음이 얼면 썰매 타기 하느라 우리 동네는 물론 옆 동네 아이들까지 몰려와 북적였다. 비료포대에 눈이랑 짚단을 넣고 산등성이나 밭고랑에서 눈썰매 타는 재미는 기가 막혔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제법 빠른 스피드감은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었다. 동네 형들 따라 얼음에 동그란 구멍을 내고 피라미며 붕어 등을 잡던 기억도 있다.

그 추위에 방한복이나 모자, 귀마개, 장갑 등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 얼굴과 손등은 언제나 빨갛게 얼어 있었다. 게다가 제대로 씻지 않아 손등엔 때가 하얗게 밀리며 가루가 날리기도 했다. 그 와중에 양쪽 콧구멍으로 흐르는 콧물은 정확히 11자 모양의 형태를 언제나 유지했다.

초등학교 겨울방학 시작, 급식은...

추억에 잠긴 나와는 반대로 애 엄마는 벌써 방학이 가져다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엄마는 엄마다. 나 어릴 적에도 엄마는 아이들의 방학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으셨다. 말썽만 피우고 돌아다니니 말이다.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아홉시까지 학교 보내서 방학 수업 받고, 돌봄 교실에 있다가 태권도장에 가면 되는 거지?"
"응, 어차피 방학이든 아니든 별반 차이는 없어."

"점심 급식은 하나?"
"아니, 밥만 해준다네, 반찬은 싸오래."


"뭐야? 무슨 급식이 그래?"
"방학 때는 원래 급식이 없잖아, 선생님도 안 나오고. 밥만 해 주는 것도 어딘데."

"그래? 조리실에서 해 주는 거 아냐?"
"아니, 급식 자체가 없대. 근데 돌봄 선생님이 그냥 밥은 해 주신다고 그러시네. 그래서 우리는 반찬만 보내면 돼."

지난 기사에서 방학 급식 때 밥만 주고 반찬은 각자 준비해야 한다는 통지서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을 했었는데, 막상 아내에게 속사정을 들으니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다.

첫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무료급식이 아니다. 5~6만 원 정도의 급식비를 내야 점심을 먹을 수 있다. 그러니 방학엔 아예 급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몰랐던 것이다. 대신 소액의 급식비만 내면 돌봄 선생님이 밥은 알아서 해 주신다니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방학 첫날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는 엄마에게 자랑을 했단다.

"엄마, 친구들이 엄마는 요리사래요. 내 반찬만 먹어요. 엄마 반찬이 너무 맛있대요."
"그래? 다른 친구들은 반찬 뭐 싸왔는데?"
"그냥, 김치랑 그런 거예요."

이번 방학엔 아내가 반찬에 좀 신경을 써줬나 보다. 지난 여름방학 때는 한 아이가 3단 찬합에 반찬을 싸와 제 반찬이 외면을 당해 슬펐단다. 그래서 애 엄마가 이번엔 좀 신경을 썼다는데, 아이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아내도 기분이 좋은가 보다.

"△△아, 지난 번에 반찬 많이 싸오던 걔는 반찬 뭐 싸왔어?"
"그냥 별로였어요."

하긴 우리 학창시절 점심시간은 뷔페 아닌 뷔페였다. 각자 반찬만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밥그릇을 들고 책상 통로를 지나다니며 맘에 드는 반찬을 집어 먹었다. 심지어는 옆 반까지 가서 반찬을 약탈(?)해 오는 애도 있었다. 거기서 내가 싸온 반찬이 인기가 없으면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맞다. 첫째도 아마 그런 기분이었나 보다. 그런데 문제는 첫째가 아니었다.

유치원 방학, 둘째를 데리고 출근하다

a 둘째 아이와 회사에 출근했다 아이가 키가 작은 관계로 자동문의 센서가 반응을 하지 않는다. 사무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려면 문을 두드리던지 소리를 질러야 한다. '아들! 빨랑 키 좀 크자'

둘째 아이와 회사에 출근했다 아이가 키가 작은 관계로 자동문의 센서가 반응을 하지 않는다. 사무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려면 문을 두드리던지 소리를 질러야 한다. '아들! 빨랑 키 좀 크자' ⓒ 김승한

유치원도 방학을 했다. 2주간의 방학 동안 첫째 주는 선생님들이 번갈아가며 출근해서 일부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둔 아이들을 돌봐 주었다. 그런데 둘째 주는 오롯이 쉰단다.

아내와 나는 둘째 아이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방법이 없다. 친정은 대전이고, 시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게다가 울산에 이사 온 지 2년째이긴 한데 아이를 맡길 만한 이웃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내가 둘째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것이었다. 지난 여름방학에도 일주일간 둘째와 출근을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 방법밖엔 없다.

다행히 회사가 본사가 아닌 지점인 관계로 다른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무실 옆에 있는 조그만 방에 아이를 머물게 할 수 있었다. 장난감과 책을 가져왔다.

그 방에는 TV도 있어서 그나마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방학인데 둘째 아이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내 출근시간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 일하는 동안 조용히 있어야 해. 화장실은 여기에 있고 뛰어다니면 안 돼.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아빠한테 얘기하구, 알았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업무 중에 가끔씩 방문을 열어보며 아이가 뭐하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TV에 빠져 있기도 하고, 책도 읽다가 낮잠도 잔다. 우리에겐 이게 최선이긴 하다만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이 무얼까 고민하게 된다. 방학인데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아빠 회사 한구석에 콕 박혀 혼자 있어야 하다니…….

퇴근하는데 둘째가 한마디 한다.

"아빠! 내일은 형아랑 같이 오고 싶어요. 그러면 안 돼요?"
"…………. 그래 알았어. 내일은 형아도 같이 오자."

얼마나 심심했으면 그런 말을 할까? 어차피 첫째도 방학이니 둘째 아이 유치원이 다음 주에 개학할 때까지는 함께 있어줘도 괜찮을 것이다. 어쩌면 첫째 아이도 둘째랑 함께 있는 걸 더 좋아할지 모른다. 방학에도 학교에 가서 수업 받고 돌봄 교실에서도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책과 씨름해야 하니 말이다.

집안 형편상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지라 이 방법 외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 씁쓸하다. 부모때문에 아이들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 말이다.

'우리 아들! 아빠가 미안하다. 일주일만 참아줄래?'
#유치원 방학 #방학 급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