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꿈꾼 이가 머무른 곳... 죽령에 가다

[김경진의 죽령답사기 ②]

등록 2015.01.08 12:02수정 2015.02.0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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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당동리 동수목  당동리  방칠성 이장님이 동수목인 느릅나무 밑에서 이곳의 유래를 설명해주고 있다.

당동리 동수목 당동리 방칠성 이장님이 동수목인 느릅나무 밑에서 이곳의 유래를 설명해주고 있다. ⓒ 김경진


나는 이곳 대강초등학교 정문에서 방칠성(56년생) 당동리 이장님도 만났다. 당동리는 장림리에서 이어진 마을이고, 방 이장 역시 이곳 토박이다.

그는 이 마을에 대해 "현재 이 마을에는 138가구에 400명이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온양방씨와 용강팽씨의 집성촌이기도 했어요. 저의 집안은 온양방씨 탄서공파로 12대째 이곳에 살고 있지요. 가선대부(嘉善大夫)였던 12대 할아버지의 시제를 지금까지 지내고 있어요.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이죠. 지금도 저의 일가 5가구가 이곳에 살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전쟁으로 폐허가 거듭되었던 마을에도 전통 가문의 맥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또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소백산자락길' 3구간과 4구간이 우리 마을을 지납니다. 3구간은 죽령옛길을 지나고, 4구간은 노루고개와 노동동굴을 지나 고드너머재, 온달산성, 베틀재를 넘어 영월군의 김삿갓묘까지 이어집니다. 이 때문에 요즈음 들어 탐방객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답니다"라고 전했다.

a 충현각 자리 방칠성 이장님이 충현각의 자리를 지목한다.

충현각 자리 방칠성 이장님이 충현각의 자리를 지목한다. ⓒ 김경진


당동리 폐광 사택 언덕에 서서

나는 이곳에서 황옹과 작별하고 방칠성 이장을 따라 마을 뒤쪽 서낭당 터로 올랐다. 엄청난 크기의 동수목인 느릅나무 가 버티고 서 있었다. 수령 3백 년이 넘은 보호수였다. 방 이장은 "이곳이 바로 마을 서낭당 터지요. 여기에 서낭당이 있었던 곳이라 해서 마을 이름을 '당골' 또는 '당동리'라고 부릅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이면 동제를 지냈는데,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철거됐어요. 또 이곳에는 6·25 한국 전쟁 전몰 군경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충현각도 있었지만, 이 역시도 새마을 사업으로 철거됐어요"라고 말했다. 새마을사업 결점의 단면을 보여준 사례였다.

우리는 서낭당을 내려와 폐광사택이 있는 언덕으로 올랐다. 폐광 사택은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총 8가구의 사택 중 5가구는 허름한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나머지 3가구는 말끔하게 수리되어 사람이 살고 있다. 특히 맨 꼭대기 집은 유명한 시인이 낙향해 살고 있다고 한다. 그가 바로 2013년 한국문학예술진흥회가 주최하는 제16회 한국문학예술상 대상 수상자인 신기선(1932년생) 시인이라고 했다. 매스컴을 통해 익히 들은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왜 수 천년의 민족 역사와 문화가 흘러온 죽령고갯길을 지척에서 바라보며 살고 있을까? 왜 낙향했을까? 불쑥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에 집 문을 두드렸으나 대답이 없었다. 그는 출타 중이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그는 오래 전 이런 시를 발표했었다.


a 당동리 폐과사택  당동리 폐광사택 8가구, 맨 위의 빨간 지붕이 신기선 시인의 집이다.

당동리 폐과사택 당동리 폐광사택 8가구, 맨 위의 빨간 지붕이 신기선 시인의 집이다. ⓒ 김경진


<어릴 때 조국>

신기선


우리 친구들이 자랄 때 / 같이 놀던 그 어린 친구들이 자랄 때 / 우리 커서 총(銃)을 겨누고 / 서로 죽이자고 약속(約束)하지 않았다.

그 어릴 때 같이 놀던 / 그 친구들은 자라서 / 남쪽에 나온 우리들을 향해 / 방아쇠를 당기고 / 우리들은 그들을 향해 / 방아쇠를 당겼다. / 그 어릴 때는 / 이런 약속(約束)을 하지 않았다.

목이 마르다. / 여름 태양에 깔깔해진 / 마른 갈숲처럼 / 목은 고향(故鄕)에 목이 마르다.

오늘은 일요일(日曜日) / 숙제장을 든 어린 아들이 묻는 말이 / 「이북에는 나쁜 사람만 산다지요.」/ 나는 고개를 돌리고 머언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 같이 놀던 / 그 친구도 /「이남에는 나쁜 사람만 산다」고 / 되풀이 가르치고 있겠지.

우리 친구들이 자랄 때 / 어릴 때 같이 놀던 / 그 친구들이 자랄 때 / 우리나라를 우리 커서 / 찢고 째고 / 나쁜 사람만 사는 나라라고 / 서로 이렇게 약속(約束)하지 않았다.

내 고향(故鄕) / 청진(淸津)은 청진(淸津)이고 / 내가 사는 / 서울은 서울이지.

- '창조(創造)'(1972.1월호)

폐광사택 맨 앞에는 정원을 잘 가꿔놓은 집이 있다. 우리는 이 집 앞 작은 언덕에 올랐다. 당동리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마을 앞으로는 고속도로가 높이 지나고 있었고, 단양IC의 길은 원을 그리며 다양한 현대식 주택이 들어선 협곡마을 위를 어지럽게 돌아나가고 있었다.

그 옛날, 이 역마을의 모습은 어땠을까?

a  당동리 또아리 굴 전경 당동리에서 바라본 대강터널(또아리굴) 전경. 이 계곡 사이로 ‘소백산자락길’ 4구간이 지난다.

당동리 또아리 굴 전경 당동리에서 바라본 대강터널(또아리굴) 전경. 이 계곡 사이로 ‘소백산자락길’ 4구간이 지난다. ⓒ 김경진


아마도 역사와 마방과 주점들이 늘어서 있고, 감나무와 밤나무, 초가집과 기와집, 돌담이 나지막이 조화를 이룬 마을이었으리라. 그리고 수많은 길손들이 말을 타거나 봇짐을 지고 이곳을 지났을 것이다. 그랬던 이 마을이 최근 수 십 년 사이에 이렇게 바뀐 것이다.

나는 이 잔인한 문명의 현장 앞에서 그만 말을 잊고 만다. 나는 이곳 폐광사택 앞 언덕에 서서, 한때 이 고장에 머물렀던 역사적인 인물,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 떠올렸다. 동학의 경전을 간행하여 교리를 확립하고 교단의 조직을 크게 확대한 인물이다.

그는 한 동안 이곳 죽령천의 갈래인 남조천의 한 계곡마을(대강면 남천리 샘골)에 사는 여규덕(몽양 여운형의 큰할아버지)의 집에 은신하면서 동학의 경전 '용담유사'를 간행하여 전국에 퍼뜨렸다. '용담유사'는 최제우가 지은 포교 가사집으로 1881년 6월 최시형이 이곳에서 맨 처음 간행한 것이다.

당시 대원군 치하의 조정은 동학을 서학(천주교)과 마찬가지로 반체제 집단으로 보고 최시형의 행방을 좇았다. 이에 최시형은 줄곧 도망자로 지내야 했다. 조정은 그를 붙잡아 1대 교주 최제우와 마찬가지로 참형에 처하려 했었다. 전국 유림 또한 유교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그를 없애려고 틈틈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궁지에 몰리면서 그의 의지는 더욱 강해졌고, 숨어서도 교세를 확장해나갔다. 그는 하늘님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한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며 후천개벽론을 설파했고, 이에 수많은 민초들이 그가 유토피아를 열어줄 등불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그는 부패한 조선왕조에 항거해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드디어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사인여천' 사상을 펼친다. 이는 곧 인간평등사상이었다. 이 사상은 후일 인내천 사상으로 발전한다,

이 인간평등사상은 전봉준으로 하여금 동학혁명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동학혁명은 조선 후기, 외세를 몰아내고 부패한 관리를 몰아내는 농민운동이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초유의 농민 자치기구인 집강소가 설치된다. 당시 집강소에서 시행했던 사민평등(모든 백성의 평등)을 지향한 폐정 개혁운동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실질적인 단초가 된다.

그는 1894년 전봉준이 동학혁명을 일으키자 교주로서 그도 북쪽 각지의 지역 교구장들에게 총궐기를 명령해 10여 만 명의 병력을 동원한다. 그러나 관군・일본군의 연합군과 싸워 참패하고 만다. 그가 정신적인 지주로 고군분투했던 동학혁명이 실패로 끝난 그해 7월 그는 처형된다. 

나는 오늘 폐광촌 언덕에서 서서,
이곳에 머물렀던 한 의인의 환영을 본다.
그는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꿨다.
조선의 백성들을 일깨우고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그는 이 땅의 민족이
자유와 평등을 얻고
주체적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의연하게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나는 오늘 민족의 별 하나를 본다.
한 영혼의 목소리를 듣는다.
#죽령 #당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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