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신문> 편집회의
박병학
1월 19일은 <콩나물신문>의 '열린 편집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신문 만드는 데 관심이 있거나 내놓을 의견이 있으면 콩나물협동조합의 조합원이든 아니든, 부천에 사는 사람이든 아니든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19일 회의에는 기자인 나를 비롯해 <콩나물신문>의 편집국장과 사무국장, 콩나물협동조합의 이사장과 이사들과 조합원들, 내가 오기 전에 일하던 기자 등이 왔다. 작은 탁자들을 한데 모아 큰 탁자로 만든 뒤 의자를 가져와 둘러앉고서,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는 스스럼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가 있기 며칠 전에 내가 떠올린 기사거리들 가운데 그나마 쓸 만한 것들은 대강 이런 것들이었다.
▲ 부천 까막눈 박 기자의 방방곡곡 부천기행
부천에서 30년 넘게 산 토박이지만 나는 아직 부천 곳곳에 무엇이 있고 어떤 역사가 자리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멋모르고 <콩나물신문> 기자가 됐지만 부천의 '지역언론'에서 뛰는 기자라 불리기엔 아직 많이 모자라다.
그런 나의 모자람을 신문 독자들과 함께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부천을 잘 모른다면 아예 내가 부천 곳곳을 알아가는 과정을 대놓고 드러내보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곳 하나를 찍어 무작정 그곳에 가서는 온종일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밥집에 들어가 밥도 먹어보고, 밥집 아저씨 아줌마 손님들과 수다도 떨어보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며 사진도 찍고, 그곳에서 가장 오래 산 어르신을 찾아낼 수 있다면 가서 말씀도 듣고, 등. 그리고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을 기사로 쓰는 것이다.
▲ 부천의 소수자들 이야기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부천에도 이른바 '소수자'들이 있다. 1월 12일에 열린 '부천시민사회 신년하례회'에 이번에 새로 기자가 된 내 얼굴도 알릴 겸 찾아갔는데 부천에도 참 많은 시민단체들이 있다는 사실을 거기서 알게 되었다.
이주노동자, 여성, 장애인, 집밖 청소년 등 세상이 돌보지 않으려 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 내밀어온 단체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저 단체들과 어떻게든 손을 잡는다면 뭔가 뜻깊은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콩나물신문>에 글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진 못하더라도, 내가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기록할 만한 사람에게 다리를 놓아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 박 기자, 운전면허 따다
지지난번에 쓴 글(
자기 돈 때려박으며 깔깔 웃는 '이상한' 사람들)에서 밝혔듯 나는 얼마 전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에 등록했다. 평생 대중교통만 타고 다니며 살 줄 알았는데 얼떨결에 운전면허 사냥에 나서게 된 사연과 마침내 면허를 따게 될 때까지 겪게 될 이런저런 일들을 이야기로 풀면 재미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콩나물신문> 편집국으로 들어온 제보가 몇 개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제보들이었다. 나는 머리를 감싸쥘 수밖에 없었다. <콩나물신문>의 상근기자는 현재 나 하나뿐이다. 조합원들이 함께 기사를 쓰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바깥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들과 소식들을 바지런히 주워 모으는 일은 내가 도맡아 해야 한다. 대여섯 개씩 기사거리를 잡아 섣부르게 취재를 시작하면 다음 신문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모자라 기사를 제대로 끝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제 발로 편집회의 찾아온 고3 학생... 앞으로 자주 봅시다! 편집회의 때 내 고민을 이야기했다.
"'방방곡곡 부천기행'은 수박 겉핥기가 되지 않으려면 더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여기 들어온 지 이제 2주일밖에 안 됐는데 콩나물협동조합의 분위기나 부천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조금이라도 더 파악하고서 그 기획을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아무데나 무작정 찾아가 어슬렁거리는 것보다는 어떤 맥락을 잡고 현장을 골라 뛰어들어야 맞다고 생각했습니다.'부천의 소수자들'도 그렇습니다. 부천 지역에도 소수자 문제와 관련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있는데 일단 그쪽 분들과 얼굴도 트고 관계를 맺어가는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시간 날 때마다 한 곳 한 곳 직접 찾아뵙고 인사라도 드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거 같아요."사람들은 내 고민을 진지한 얼굴로 들어주었다. '편집국장님과 기자님이 이야기해서 정해지는 쪽으로 가시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제보가 들어온 기사거리들 이야기가 나왔다. 모두 다 중요한 것들이니 역시 다음 신문이 나올 때까지 일정을 잘 짜서 취재하되 시간이 모자라면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신문으로 넘기기로 했다. 나는 우선 시립도서관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졸지에 없어지게 된 지역아동센터 쪽을 파고들어가 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콩나물신문>에는 부천에 사는 '이름 없는' 사람들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꼭지가 있다. 이번에는 누구를 만날까 이야기해보다가 전당포 주인, 붕어빵 장수, 방앗간 주인 이렇게 셋으로 모아졌다. 붕어빵 주인은 내가 자주 찾는 노점에서 뵙는 분이어서 내가 밀었다. 아마 나는 며칠 안으로 부천역 부근을 뒤지며 전당포를 찾아 헤매게 될 것이다.
회의도 회의지만 막상 그날 편집회의에서 눈길이 모아진 쪽은 <콩나물신문>에 관심이 있어 제 발로 찾아온 어느 고등학생이었다. 올해 무려 3학년(!)으로 올라간다는 그 학생은 부천 송내동에 있는 '청소년 문화의 집'을 자주 들락거리다가 거기에 놓여 있는 <콩나물신문>을 보게 된 뒤부터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그 학생은 뒤풀이 자리까지 함께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