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아 없어진 희생자 유해
심규상
유해는 지표면을 기준으로 땅속 약 40cm 지점, 약 70cm 지점, 1.5m 지점에서 각각 확인되고 있다. 한 구덩이 안에 유해가 층층이 묻혀 있음을 거듭 설명해주고 있다. 발굴 대상지 구덩이는 가로 2.5m, 세로 약 7m 정도다.
유해가 켜켜이 매장돼 있어 발굴 작업은 매우 더딘 편이다. 지난해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과정에 참여한 한 영남대 학생은 "진주에 비해 유해 발굴 작업이 훨씬 힘들다"며 "돌이 많고 파내야 할 흙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도 희생자 유가족 10여 명이 발굴 과정을 계속 지켜보았다.
발굴 3일째인 24일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늘어 약 30여 명이 발굴작업을 벌인다. 특히 이날 오후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7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한국전쟁유족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4·9통일평화재단, 포럼진실과정의,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대책위원회'(대전지역 19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3일 부터 대전 산내 골령골(대전시 동구 낭월동 산 13-1번지)에서 오는 3월 1일까지 7일 간 일정으로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재소자를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월 28~30일 1400명, 2차 : 7월 3~5일 1800명, 3차 : 7월 6~17일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희생자들은 충남지구 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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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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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에 층층이 쌓아"... 살해 증언과 일치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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