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들이 조심스레 호미질을 하며 유해를 발굴하고 이다.
심규상
지켜보던 일부 유가족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박 단장은 "발굴을 좀 더 해 봐야 알겠지만 희생자들이 묻힌 구덩이 일부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땅 속 약 1.2미터에서는 다리뼈의 일부가 보였다. 구덩이 깊이가 1.5미터 가량임을 가늠하게 했다.
발굴 둘째 날인 24일에도 20여 명이 작업에 참여한다. 한편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대책위원회'는 23일 오전 10시 대전 산내 골령골(대전시 동구 낭월동 산 13-1번지)에서 개토제를 시작으로 내달 1일까지 7일 간 일정으로 유해발굴을 시작했다(관련기사:
"골짜기에서 살해된 아버지, 얼마나 무서웠을까").
유해발굴을 벌이는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재소자를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28~30, 1400명, 2차 : 7.3~5, 1800명, 3차 : 7.6~7.17,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희생자들은 충남지구 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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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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