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화가
이영주
그는 들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걸 쏟아낸 듯 허탈해 하고 있었다. 고통 뒤에 오는 기쁨보다는, 지나온 여정이 눈에 아른거린 듯 했다.
주변에 민가도 없는 폐쇄된 오리가공 공장 건물에서 3년 동안 그려온 작품에 그는 완성을 의미하는 화가의 '서명'을 지난 4일 넣었다.
이날 마지막 서명을 한 100호 캔버스 77개를 이어붙인 총 길이 102.4미터에 이르는 작품 <들꽃처럼 별들처럼>은 오는 11월 미국 뉴욕 UN본부에 전시된다.
그는 "미친놈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순간"이라고 했다. "20년 동안 외로웠지만, 한방에 모든 외로움과 서러움을 날렸다"고 회고했다.
화가 김근태(58)는 그런 사람이다. 명색은 '화가'이지만, 그들끼리의 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다. 거실 한 쪽에 걸어두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작품이 고가에 팔리는 잘 나가는 화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김근태의 그림에는 온통 일그러진 아이들 얼굴들만 나온다. 맞다. 그림 속 주인공들은 모두 정신지체아들이다. 지난 20년 동안 제 몸도 가누지 못해 몸이 뒤틀리고 얼굴이 일그러진 아이들만 그려왔다. 1994년부터 '들꽃처럼 별들처럼'이라는 주제로 지적 장애인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온 화가다.
꼬박 3년 걸려 100미터 대작 <들꽃처럼 별들처럼> 완성 김근태도 초기에는 아름다운 풍경 등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그가 화가로서 변화를 하게 된 배경에는 두 번의 방랑과 두 번의 운명적 만남이 있다.
대학 졸업 후 김근태는 1983년 전남목포 문태고등학교 미술교사로 발령났다. 하지만, 교육자로서 품행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술과 방탕,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주위와 어울리지 못했다. 그는 "원인 모를 정신적 혼란과 방황,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고 회상한다.
결국, 학교 교사를 5년 만에 스스로 그만두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자유로워진 그는 그림에 몰두해 국선에도 입선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시달렸다. 돈과 인맥이 있어야 더 큰 상을 받을 수 있는 상납 제의도 받은 뒤였다. 외우다시피 해 기교만 늘고 영혼 없는 그림에 대한 회의도 느껴졌다. 그는 미련 없이 프랑스로 떠났다. 영혼이 담긴 그림에 대한 갈망, 무너질 대로 무너진 자아를 찾고 치유하는 여행이었다. 그의 부인은 돈을 대출해 매달 학비와 체류비를 송금했다.
유학을 다녀 온 후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천착한다. 인물의 내면을 탐구하면서도 늘 무언가를 갈구하고 쫓고 있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끌어 오르는 '복잡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유도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대학 4학년 때 겪은 5·18광주민중항쟁 때문이었다는 것을.
당시 그는 20여 명으로 구성된 사태수습위원으로 참여했다. 무기를 나르고 총칼에 짓이겨진 시체를 책임지는 역할이었다. 잊은 줄 알았던, 아니 잊고 싶었던 당시 그 사건의 후유증이 내면에 깊게 쌓인 채 남아있었다. 산 자로서 느끼는 허무와 나약함, 책임감이 트리우마가 되어 있었다. 같은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향해 저지른 살상의 기억은 인간이란 존재에 천착하게 한 것이다.
이후 가장 소외되고 낮은 곳을 찾아 떠났다. 그가 찾은 곳은 목포 앞바다 작은 섬 고하도에 있는 목포공생재활원이었다. 지금도 그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그토록 예뻐 보이고, 냄새마저 달콤했다. 그 아이들을 만난 순간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한다.
그곳에 3년을 머물며 계속 그림을 그렸다. 150여명의 정신지체아들에게 그림을 지도하고 때론 집으로 아이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김근태를 "아빠"라고 부르며 품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의 얼굴을 그렸다. 그의 부인은 스케치북이 동났다고 하면, 사들고 찾아갔다.
주위에서는 "왜 그런 그림을 그리냐"고 핀잔을 주고, 그림 한 장 사주지 않았다. 그러나 김근태는 그림을 통해 장애인들의 환한 웃음에서 희망을, 살고자 하는 몸부림에서 존재의식을, 고통스런 얼굴에서 세상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묵묵히 그려냈다.
조금씩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자 그는 다시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떠난 곳이 인도였다. 지난 2003년에는 공동체 생활을 위해 시골 폐교로 들어간다. 일종의 피난처였다.
"그림 속 주인공 몇 명은 이미 하늘의 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