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이 국시? 소극장 하나도 못 지키면서...

[떠나는 자와 남는 자-프롤로그] 마지막 '타이니 앨리스 페스티벌' 연재에 앞서

등록 2015.04.09 17:24수정 2015.04.1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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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니 앨리스 타이니 앨리스에서 릴레이 토크쇼를 마친 후
타이니 앨리스타이니 앨리스에서 릴레이 토크쇼를 마친 후 이형석

도쿄 신주쿠에는 1983년에 개관한 '타이니 앨리스'라는 소극장이 있다. 소규모 실험 연극을 주로 공연하는 이 소극장의 대표는, 니시무라 히로코라는 연극평론가다. 그는 와세다대에서 연극 이론을 전공하고 오사카 소재 소노다학원 여자대학에서 1991년부터 교수(1982년부터는 조교수)를 역임했다.

일생을 연극에 헌신하신 그분이 기획하고 이끌어온 '타이니 앨리스 페스티벌'은 비록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명성이 꽤 높은 국제연극제이다.


기자는 지난 3월 중순, 한일 연극 교류 코디네이터로 30년 가까이 활동하는 마정희씨를 통해 '타이니 앨리스'로부터 특별 초청을 받았다. 뜻밖의 행운이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이 유서 깊은 소극장은 폐관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히로코 대표는 노령인 데다 후계자도 없다. 후원자인 남편 니와 후미오씨의 병환으로 인해, 혼자 끌어가는 게 더는 힘들다고 했다. 엔저의 착시 현상이 제공하는 울타리는, 대기업 외에는 배타적이었다.

'타이니 앨리스 페스티벌'이 우리나라 연극인들한테 유명한 이유는 1983년 개관 이래 매 해마다 우리나라 극단을 초청했기 때문이다. 공연을 통한 일본 관객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선지자적 안목으로 민간차원의 한·일 문화교류에 앞장선 것이다. 실제로 오태석, 이윤택, 박장렬, 박근형 등을 비롯한 선 굵은 연출가의 작품이 이곳을 통해 일본에 처음 소개됐다. 사카테 요지 등 일본 연극계 중진도 '타이니 앨리스'가 발굴한 성과다.

지난 2013년, 한일 연극 교류의 산 증인이자 대모인 니시무라 히로코는 <시니어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돈이야 당연히 안 되지만, 배우고 느낄 게 많은 한국 작품을 쉬지 않고 소개해 온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 연극계는 한층 더 깊은 침체의 위기에 빠져 있다. 기자는, 그와의 이 인터뷰가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소망의 옷을 입혀봤다. 능력이 된다면, 현지 취재를 통한 인터뷰 중심의 연재로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해 보고 싶다.

일본 연극계 대모와의 만남, 한국 연극계에 훈풍 되기를

타이니 앨리스  릴레이 토크쇼에서 대화를 나누는 김수진과 김철의
타이니 앨리스 릴레이 토크쇼에서 대화를 나누는 김수진과 김철의 이형석

연재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국내 최초의 민간 소극장인 삼일로창고극장과 대학로극장이 경영난 때문에 문을 닫는다는 우울한 소식도 한몫했다. '창조경제' '문화융성'이 국시라는 시대이다. 그런데 이처럼 역사적인 상징성을 갖는, 현대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가장 기본적인 공간도 보존을 못 하고 있다. 어떻게 고유한 우리 역사에 기반을 둔, 모든 삶의 형태소에서 우러나온 정서의 총합을 가꾸어 나간단 말인가?


이처럼 현실과 따로 노는 궤변적 문화정책에 연극계는 희생당하고 있다. 연극계 전반에 드리운 비관의 추를 조금이라도 긍정의 세계로 돌려놓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라도, 3일간의 일본 현지 취재는 단순한 개인적 체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기자는 한류를 정체성이 불분명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의심과 회의의 대상에 가깝다. 거품을 걷어내고 옥석을 추리지 않으면 우리의 시야를 왜곡한다. 한류라는 이 '문화 버블'은 앞으로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충격을 선사할 수도 있다. 중국 정부의 야심에 찬 역사찬탈 기획물인 동북공정은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균열을 넘어서는 도착적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문화가 만병통치약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문화는 정제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을 순화·정화시킨다. 인간은 기계문명에 의해 대자연과 인위적으로 분리당했다. 문화를 통해 우리는 분리되었던 우주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문화를 통해 영혼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 우리는 우주가 우리에게 은밀히 선사하는 그 가치를 붙잡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날로그일 수밖에 없는 연극은, 그 시작점에서 우리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구다.

인터뷰는 극단 골목길의 대표로서 타이니 앨리스에서 <만주전선>을 공연한 박근형 선생님과 니시무라 히로코 대표 그리고 한일 연극 가교의 실무 책임자이자 상징적 존재인 마정희씨를 축으로 극단 후암의 대표인 차현석 님과 각각 오사카와 동경에서 자이니치(在日)로 살아가며 연극운동을 하는 김철의 님과 김혜령 님을 중점적으로 진행했다.

부족하고 어설픈 점이 많지만, 어여쁘게 봐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다. 바다 건너에서 니시무라 히로코 선생님이 뿌린 씨앗이, 우리나라 대학로에서 거목으로 자라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기자의 영혼과 가슴이 선사하는 미래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인터뷰 연재 순서

1. 박근형 극단 골목길 대표. <만주전선> 공연
2. 니시무라 히로코 '타이니 앨리스' 대표
3. 차현석 극단 후암 대표. <흑백다방> 공연
4. 김철의 재일교포, 오사카 거주
5. 김혜령 재일교포, 도쿄 거주
6. 마정희 한일 연극 교류 코디네이터, 실무책임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후아이엠>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타이니 앨리스 #니시무라 히로코 #페스티벌 #연극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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