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임동확 지음 / 실천문학사 펴냄 / 2005.11 / 7000원)
실천문학사
임동확 시인이 쓴 시집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를 읽습니다. 시를 읽는 동안 봄꽃과 봄풀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아이들과 함께 새로 맞이한 봄을 그리고, 올해에 새롭게 맞이한 봄은 지난해와 어떻게 다른가를 그립니다. 올해에 새로 누리는 봄은 앞으로 찾아올 수많은 봄하고 어떻게 다를까 하고 가만히 그립니다.
내 그림은 먼저 마음에 그립니다. 마음에 그린 그림은 어느새 눈을 거쳐 머릿속으로 스미고, 머릿속으로 스민 그림은 가슴을 지나 온몸으로 퍼집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얼굴을 비빕니다. 물 묻은 손으로 얼굴을 비빕니다. 찬물이 찬기운을 짜르르 퍼뜨리면서 상큼하고 시원한 기운을 함께 퍼뜨립니다. 그야말로 봄내요 봄기운입니다.
설거지를 마쳤어도 쑥내는 손에서 안 가십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아이들을 재우는 잠자리에서도 쑥내는 안 가시지요. 이불깃을 여미는 손에도 쑥내가 퍼지고, 아이들이 덮은 이불에도 쑥내가 흐릅니다.
미루고 미루다가연세대 구내 안경점에서 돋보기를 맞추고잠시 기다리는 동안여직 다 읽지 못한 세상과 책,그리고 부르다 만 노래와여전히 미로일 뿐인 사랑의 길을 생각한다- '노안' 중에서사람한테는 몇 가지 몸이 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 몸은 눈으로 보는 몸만 있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때때로 우리 아이들을 마음으로 쓰다듬을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제 어버이를 마음으로 어루만져 주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두 손을 가슴에 포개면서 잠이 들 때에 조용히 꿈을 꿉니다. 이 아이들과 누리는 삶을 꿈꾸고, 내가 이 아이들한테서 받는 사랑을 꿈꿉니다. 함께 짓는 삶을 꿈꾸고, 함께 가꾸면서 온누리로 퍼뜨리는 이야기를 꿈꿉니다.
어느새 커튼 자락에 숨어 있는 청개구리 한 마리파리채로 등 떠밀어 서둘러 밖으로 내보낸다- '파리채와 더불어' 중에서꽃님은 어디에서나 꽃님입니다. 별님은 언제나 별님입니다. 오줌 그릇을 비우러 뒤꼍을 다녀오면서 별빛을 바라봅니다. 바야흐로 저녁에도 포근하게 스미는 바람결을 천천히 느낍니다. 우리 집 나무한테 인사를 하고, 이튿날에도 다 함께 즐겁게 놀자는 마음을 남기면서 마루로 올라섭니다.
저도 모르게 왼손이 편하고 좋아왼손으로 밥 먹고 글씨를 쓰다가오른손은 늘 바르고 옳으니오른손만 사용하라며 어릴 때부터엄마한테 사랑의 회초리 맞고 자란내 귀여운 왼손잡이 애인은 이제왼손 오른손을 능숙하게 사용하는양손잡이가 되어 있지요- '내 애인은 왼손잡이' 중에서내 님은 언제나 내 님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숨쉬는 하느님은 늘 내 하느님입니다. 아이들 마음속에도 하느님이 있고, 곁님 마음속에도 하느님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하느님을 품습니다.
이 하느님은 봄이 되면 꽃이 피어나는 바람을 타고 꽃님으로 거듭납니다. 이 하느님은 여름이 되면 하얀 꽃이 지고 빨간 열매를 매다는 딸기처럼 새님이 됩니다. 이 하느님은 가을이 되면 논자락을 누렇게 덮으면서 물결치는 샛노란 나락처럼 고운 들님이 됩니다. 이 하느님은 겨울이 되면 더욱 새파란 하늘빛처럼 싱그럽게 춤추다가 고요히 잠드는 꿈님이 되어요.
시 한 줄에 담는 이야기는 꽃님이면서 새님이요 들님이면서 꿈님입니다. 시 한 줄로 나누는 이야기는 삶이면서 사랑이고 노래입니다. 시집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는 우리한테 어떤 삶과 사랑과 노래를 들려주려 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먼먼 옛날에도 이곳에 있었을 텐데, 어떤 넋을 품은 숨결로 서로 이웃이 되어 삶을 지었을까요. 쑥내가 물씬 풍기는 손으로 시집을 잘 읽고 조용히 덮습니다.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임동확 지음,
실천문학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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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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