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1시 반부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 총회가 진행됐다. 사수는 김준환 서경지부 조직국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김동수
사수는 광운대분회 조합원이다. 어느 누구보다 노조활동에 열정적이다. 얼마 전에는 보충교섭에도 참석했다. 그럼에도 사수는 광운대분회에 맨 마지막으로 가입한 조합원이었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확신이 있어야 뭐든 하는, 신중한 성격의 '트리플 A형'이기 때문이란다. 사수는 가입하기 전까지 노조에 대한 정보를 두루 찾아봤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단체란 걸 확신하고서야 가입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저도 처음에는 불안했어요. 뭣도 모르고 누가 나 잡아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많았지요. 노조활동 하면 무조건 불법이라 하잖아요. 요즘도 이런 얘기를 자주 듣지만, 노조활동을 직접 해보니 합법적으로 내 권리를 주장하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노동자를 비로소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조합원들의 삶은 많은 것이 변했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던 임금이 인상됐고, 열악한 노동환경도 개선됐다. 그러나 광운대 안에서 청소노동자로 살기는 아직까지 노동환경 전반이 열악하기 그지없다.
사수의 자식도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둘째 딸은 '열정페이'의 당사자였다. 지금은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상당기간 의류업계에서 종사했다. 패션노조에 의해 알려졌듯이, 무단히 착취 당했다. 40여 년 전 전태일 시대의 시다처럼 일했지만, 돌아오는 건 주말 없는 노동과 차비 수준의 보수가 전부였다.
"우리 자식들에게 이 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노조활동을)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우리 청년들도 노동조합에 더 관심을 갖고, 노동법도 배우면 좋겠네요."노조는 우리의 비루한 노동현실을 바꾸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파업은 무조건 불온하다"는 담론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부당노동행위의 피해자가 된다면, 그 순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혼자 그냥 참고 견딜 것인가. 연대하여 자신의 권리를 말할 것인가.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분명한 건, 임금은 자동으로 인상되지 않고, 노동자의 권리는 자연스레 신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소노동자들이 기적을 만들고 있다쓰레기는 치워도, 치워도 또 쌓여간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시는 학생이 많아지는 만큼, 그 옆 쓰레기통의 빈 캔도 수북하다.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도 간혹 보인다. 내일 아침에도 쓰레기가 쓰레기통을 포위하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청소노동자가 없다면, 학생들이 쓰레기에 잡혀먹겠지?'학생들 사이에서 청소노동자들은 실체가 없다. '우렁각시' 같은 존재다. 그 존재는 청소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악취가 날 때야 비로소 청소노동자의 존재를 느끼기 마련이다.
총회를 끝내고, 예비노동자들이 도서관을 오가는 사이로 사수와 나는 지나갔다. 나는 사수에게 노조가 만들어지고 변한 것 중에 좋았던 점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봤다.
"많죠.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지만, 우선은 주말에 청소를 안 해도 되는 거?"맞다. 그도 그럴 것이 사수를 비롯한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은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학생들이 별로 없는 토요일에도 무조건 나와야 했다. 놀랍게도 토요일 근무는 무급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한 번이라도 하면 패가망신 당하는 세상이다. 천문학적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가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011년 당시 홍익대는 농성을 벌인 청소노동자들에게 2억8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헌법 제33조는 정말로 유효한 걸까.
"그동안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 대신, 내 가족만 보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노조 가입 이후,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드라마광이었는데, 이제는 뉴스를 더 자주 봐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확연하게 달라진 거죠."현재까지 비정규직 노조조직률은 2% 안팎이다. 이 수치가 증명하듯,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어쩌면 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딴 나라 이야기다. 사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수는 6년여간의 노예 같았던 노동자의 삶을 탈피하기 위해 '노동자 선언'을 했다. 그 이후부터 자신과 같은 고통과 슬픔에 직면한 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노동의 언어가 사라지는 세상 속에서도, 이곳 광운대만큼은 청소노동자들 사이에서 기적의 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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