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먹고 들어온 비서관, 노무현 대통령 반응이...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29-①]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

등록 2015.05.14 10:19수정 2015.05.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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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 강원국

최근 글쓰기 열풍으로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지난해 상반기에 발간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대통령의 글쓰기>를 '2014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바 있다. 출간한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지난 2000년 국민의 정부 중반부터 2007년 참여정부 말기까지 청와대에서 연설비서관으로 재직한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의 책이다. 7년 동안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면서 느낀 점과 글쓰기에 대한 방법을 저술했다. 물론 두 전직 대통령과의 에피소드도 담겨 있다.

지난 6일 서울시 동작구 사당역 근처에서 강원국 편집주간을 만나 책 이야기와 함께 글쓰기에 대한 자신만의 비법, 그리고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억 등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강 편집주간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연설비서관 하다 보니 노무현 대통령처럼 말한다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펴냄 / 2014.02 / 1만 6000원)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펴냄 / 2014.02 / 1만 6000원) 메디치미디어
- 지난해 초 출간한 <대통령의 글쓰기>가 지난해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면서 지금도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현재까지 8만 부 가까이 팔린 것 같아요. 과분한 반응에 저도 얼떨떨합니다. (많이) 팔린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님에 대해, 아직 그분들을 못 떠나보낸 분들이 책을 통해서라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금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제가 책을 쓸 때 재미와 효율을 중심에 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썼어요. 글쓰기에 대해 배우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자는 게 효율이었구요. 두 분 대통령은 글쓰기에 대해 누구보다 전문가예요. 그래서 그분들께 제가 배운 것을 옮겨 놓아 (독자들이) 많은 걸 배우며 만족스러워 한 것 같아요."

- 노무현 대통령을 5년 모셨는데, 강 비서관이 아는 노 대통령은 어떤 분이셨나요?
"한마디로 얘기하면, 남에 대한 배려가 깊은 분이었어요. 배려란 자기를 중심에 두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 또는 역사나 대의를 놓고 모든 것을 판단한 것 같아요. 자기가 중심에 있었다면 양보나 희생이 가능하지 않았겠죠.


항상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남을 배려하고, 역사를 생각하고, 대의를 좇는 부분들이 저는 배려의 리더십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결국은 (그를) 대통령의 자리까지 가게 만들었죠. 지금도 노 대통령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좋아하는 이유가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해요."

- 노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인가요?
"서거하기 한 달 보름 전 즈음에 마지막으로 찾아 뵌 적이 있어요. 저 혼자 간 게 아니라 연설비서실 식구들하고 갔거든요. 저희 걱정을 오히려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벤처 기업에 가니 젊은 직원들이 많은데, 다들 노 대통령을 좋아해서 덕분에 잘 지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주 좋아하셨어요. 대통령께서 한 번도 제 이름을 불러 주신 적이 없어요. 그날 처음으로 '원국씨'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감격했어요."


- <대통령의 글쓰기>는 어떻게 출간하게 되었어요?
"직접적인 계기는 두 가지예요. 먼저는 2년 전 제가 출판사 일을 하게 되면서입니다. <메디치미디어>란 출판사에서 7권 정도 책을 편집하면서, 책을 내는 게 특별한 사람만 내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 책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생각난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었습니다.

참여정부 3년 차 때 대통령께서 제게 공무원들의 글쓰기 수준이 생각보다 높지 않으니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라고 했어요. 그 이후 대통령 지시 사항이 되어서 계속 국정상황실에서 책 쓰는 걸 챙겼어요. 대통령께 8장짜리 글쓰기에 대한 보고서를 드리기도 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대통령의 글쓰기>의 밑바탕이 되었어요."

-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나요?
"전혀 아니에요. 대학 다닐 때까지는 답안지 쓰는 것 말곤 글을 쓴 적이 없습니다. 막연하게 기자가 꿈이긴 했어요. 졸업하고부터 공부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직장이 대우증권이었는데 신문 보며 공부하려고 홍보실을 자원해서 거기에 주저앉게 됐죠.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 됐을 때 회장 연설문을 쓰게 됐고, 그 인연으로 국민의 정부 때 청와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 대통령과 기업 회장은 글 쓰는 게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르죠. 대통령은 국민의 눈치를 보죠. 국민이 반대하면 대부분 못하죠. 그러나 회장은 직원들이 반대해도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그래서 대통령의 글을 쓸 때 청자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라서 다각도로 따져보고 써야 해요. 하지만 회장의 글은 회장 생각을 그대로 쓰면 돼요. 그러나 반대로 대통령의 글은 쓰다 맘에 안 들어도 공무원의 신분이기 때문에 안 잘리지만, 회장 글을 쓰다가 맘에 안 들면 바로 잘려요. 회장 글은 쓰기도 쉽고 잘리기도 쉬워요."

-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7년, 청와대에서 연설비서관으로 계셨잖아요. 연설비서관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나요?
"공식 연설이나 기고문 등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는 것을 돕는 역할입니다. 청와대에는 서른 몇 명의 비서관들이 있지요. 회사로 치면 부서장 같은 자리입니다. 부서원으로는 행정관이란 직책이 있어요.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은 써준 대로 읽는 분이 아니었어요. 말이 대통령 보좌 업무이지 실제로는 대통령께 말하고 글 쓰는 법을 배웠지요. 자신들의 말과 글은 스스로 쓰고 다듬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써서 드리는 초안은 그저 초안일 뿐이었죠. 두 분 대통령께서 손을 대면 초안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김 대통령 때는 써서 올린 것을 다 고쳐서 주셨고, 노 대통령 때는 써서 올리면 불러서 구술해 주셨어요."

- 연설비서관은 자기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연설자의 가치, 철학, 말투까지 꿰뚫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연설비서관이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자기 문체로 글을 쓰니까 오히려 그 일을 못합니다. 해박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통령의 생각과 대통령이 구술해준 내용을 대통령의 어투와 문체로 글로 옮기면 되지요. 24시간 오직 대통령 생각만 하면서 살면 되지요. 간혹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내가 어느새 대통령처럼 말하는 걸 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지요.

대통령 연설비서관으로서 필요한 조건은 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철주야 책상에 앉아 글을 써야 하니까요. 또 다른 조건 하나는 대통령께 꾸중을 들었을 때 의기소침하지 않는 맷집이 있어야 한다고 할까요? 8년간 일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께는 두 번 정도 칭찬을 들었는데, 노무현 대통령께는 단 한 번도 칭찬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노무현 대통령의 글에 대한 안목과 기대 수준이 높기도 했고, 제가 거기에 부응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요.

하지만 연설비서관이란 자리의 특성 탓도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좋다고 칭찬하는 순간, 그 원고가 최종 원고가 되고, 대통령께서는 그것을 그대로 읽어야 해요. 마음에 안 들면 그럴 수 없는 노릇이지요."

-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는 것 같은데 원고 정리하면서 많이 그리웠을 것 같아요.
"당연하죠. 저는 어린 시절 김 대통령이 저의 우상이었어요. 저는 호남 지역이었고 저희 아버님이 김 대통령을 좋아하셨어요. 아마 그 당시 호남에 살았던 어른들 대부분이 그랬어요. 오히려 대통령 하며 인기가 떨어졌죠. 민주화 투쟁할 때만 해도 대단한 분이셨죠. 저도 그 영향을 받아서 그런 분을 모신다는 게 꿈만 같았어요.

노 대통령은 인간적이고 정이 많이 가는 분이세요. 지금도 생각해보면 말씀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대단해요. 지금도 누군가 저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면 노 대통령이라고 해요. <대통령의 글쓰기>를 두 달여 동안 썼는데, 너무 행복했고 두 분과 다시 만나서 일하는 느낌으로 책을 썼어요. 강연 가서 노 대통령 이야기를 하면 30, 40대 여성 분들도 간혹 계세요. 많이 그리워하시는 것 같아요. 근데 강남 같은 데 가면 분위기가 차갑고 달라요."

강원국과 유홍준의 차이, 누더기가 될까 비단옷이 될까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강원국

- 기억에 남는 일을 소개해 주세요.
"노 대통령을 '배려의 리더십'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한 번은 지방에서 친구가 올라와서 낮술을 마셨는데 오후 2~3시쯤 갑자기 대통령께서 찾으셔서 가니 술 냄새가 나는 거죠. 부속실에서 술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도 들어가서 뵈었죠. 대통령께서 독일 일간지에 보낼 기고문 때문에 저를 부르셨는데, 몇 말씀 나누시더니 제 술 냄새를 맡으셨나 봐요.

그런데 술 마셨느냐고 안 물으시고 오늘은 피곤해서 못하니 다음에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만약 저에게 술을 마셨느냐고 (직접) 물으셨다면 난감했을 텐데, 그런 얘기를 안 하시고 본인이 피곤하다며 다음으로 미루셨죠. 정말 배려가 깊으신 분이란 걸 느꼈어요. 다른 분들 같으면 화냈겠죠.

그리고 제가 청와대 있을 때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었는데 대통령 앞에서는 긴장돼서 배가 아팠어요. 얘기 듣다가 화장실 가겠다고 안 해도 제 표정만 보시고 빨리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소탈하셨어요."

- 영업 기밀에 속하겠지만, 강 전 비서관만의 글쓰기 비법 소개 부탁해도 될까요?
"저는 세 가지를 해야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는 평소 자신에게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은 뭐냐고 질문을 많이 해보는 거예요. 하루에 그런 질문을 한 가지씩만 해도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쓸 수 있어요. 결국 글쓰기는 생각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평소 생각을 많이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두 번째, 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자료를 잘 요약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자료란 내 머릿속에 든 기억, 책에 나온 것, 온라인에서 검색한 내용 등 모든 것이죠. 이런 자료를 빠른 시간 안에 잘 요약하는 게 글을 잘 쓸 수 있는 길이지요.

그러려면 평소 요약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약을 잘한다는 것은 자기가 그 자료에서 가져와야 할 항목을 알고 있는 거예요.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어떤 글이든지 기사는 기사대로 육하원칙에 해당하는 것을 자료를 가져오잖아요. 마찬가지로 모든 글에는 가져와야 할 항목들이 있거든요. 그걸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요약을 빨리하고 글을 잘 쓰는 거죠.

세 번째는 글을 반복해서 고치는 겁니다. 처음부터 잘 쓴 글은 없고 잘 고친 글만 있어요. 모든 글 잘 쓰는 사람들은 많이 고쳐 쓴 사람들이에요. 써놓고 계속 고쳐야죠. 이 세 가지가 글 잘 쓰는 비결이죠."

- 많이 고쳐야 글을 잘 쓴다고 하셨는데 자칫하면 누더기 글이 될 수도 있어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같은 경우가 '1필을 유지하라, 많이 고치면 누더기 글이 된다'고 하는데 맞는 얘기죠. 자기가 든 생각을 한 번에 쓰는 게 좋은데 전 그런 역량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누더기라고 하지만, 제 생각에 '글은 정답이 없지만 오답은 있다'예요. 그렇게 써서는 '안 되는' 오답을 줄여가는 거죠. 이게 글을 잘 쓰는 방법인데 그럼 무엇이 오답인지는 알고 있어야죠. 오답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시 보는 것은 누더기가 아니라 글을 좋게 만드는 과정이 아닌가 해요. 많이 고치면 삼베옷이 비단옷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요즘 글쓰기 열풍이 불어서 서점가에서 글쓰기 관련 책이 인기인데 어떻게 보세요?
"(글쓰기와 더불어) 인문학도 열풍인데, 인문학의 근원이 글쓰기죠. 왜냐면 결국 인문이라는 건 사람을 중심에 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중에서도 자기를 중심에 두는 것이 인문학이 지향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자기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하는데, 글쓰기가 가장 거기에 근접해 있는 거죠. 글쓰기야말로 자기 생각을 쓰는 것이고 세상을 향해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자기가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이이죠.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앞으로 더욱 활발해져야 하고 자기 목소리를 글을 통해 내야죠. 그게 민주 사회고 사회가 발전하는 거죠."

- 글쓰기 열풍 원인은 뭐라고 보세요?
"SNS 영향이 제일 크죠.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생겼잖아요. 거기는 글로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글 쓸 일이 많아진 거죠."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펴냄 / 2014.02 / 1만 6000원)

이 기사는 이영광 사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노무현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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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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