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펴냄 / 2014.02 / 1만 6000원)
메디치미디어
- 지난해 초 출간한 <대통령의 글쓰기>가 지난해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면서 지금도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현재까지 8만 부 가까이 팔린 것 같아요. 과분한 반응에 저도 얼떨떨합니다. (많이) 팔린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님에 대해, 아직 그분들을 못 떠나보낸 분들이 책을 통해서라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금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제가 책을 쓸 때 재미와 효율을 중심에 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썼어요. 글쓰기에 대해 배우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자는 게 효율이었구요. 두 분 대통령은 글쓰기에 대해 누구보다 전문가예요. 그래서 그분들께 제가 배운 것을 옮겨 놓아 (독자들이) 많은 걸 배우며 만족스러워 한 것 같아요."
- 노무현 대통령을 5년 모셨는데, 강 비서관이 아는 노 대통령은 어떤 분이셨나요?"한마디로 얘기하면, 남에 대한 배려가 깊은 분이었어요. 배려란 자기를 중심에 두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 또는 역사나 대의를 놓고 모든 것을 판단한 것 같아요. 자기가 중심에 있었다면 양보나 희생이 가능하지 않았겠죠.
항상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남을 배려하고, 역사를 생각하고, 대의를 좇는 부분들이 저는 배려의 리더십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결국은 (그를) 대통령의 자리까지 가게 만들었죠. 지금도 노 대통령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좋아하는 이유가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해요."
- 노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인가요?"서거하기 한 달 보름 전 즈음에 마지막으로 찾아 뵌 적이 있어요. 저 혼자 간 게 아니라 연설비서실 식구들하고 갔거든요. 저희 걱정을 오히려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벤처 기업에 가니 젊은 직원들이 많은데, 다들 노 대통령을 좋아해서 덕분에 잘 지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주 좋아하셨어요. 대통령께서 한 번도 제 이름을 불러 주신 적이 없어요. 그날 처음으로 '원국씨'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감격했어요."
- <대통령의 글쓰기>는 어떻게 출간하게 되었어요?"직접적인 계기는 두 가지예요. 먼저는 2년 전 제가 출판사 일을 하게 되면서입니다. <메디치미디어>란 출판사에서 7권 정도 책을 편집하면서, 책을 내는 게 특별한 사람만 내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 책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생각난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었습니다.
참여정부 3년 차 때 대통령께서 제게 공무원들의 글쓰기 수준이 생각보다 높지 않으니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라고 했어요. 그 이후 대통령 지시 사항이 되어서 계속 국정상황실에서 책 쓰는 걸 챙겼어요. 대통령께 8장짜리 글쓰기에 대한 보고서를 드리기도 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대통령의 글쓰기>의 밑바탕이 되었어요."
-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나요?"전혀 아니에요. 대학 다닐 때까지는 답안지 쓰는 것 말곤 글을 쓴 적이 없습니다. 막연하게 기자가 꿈이긴 했어요. 졸업하고부터 공부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직장이 대우증권이었는데 신문 보며 공부하려고 홍보실을 자원해서 거기에 주저앉게 됐죠.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 됐을 때 회장 연설문을 쓰게 됐고, 그 인연으로 국민의 정부 때 청와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 대통령과 기업 회장은 글 쓰는 게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완전히 다르죠. 대통령은 국민의 눈치를 보죠. 국민이 반대하면 대부분 못하죠. 그러나 회장은 직원들이 반대해도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그래서 대통령의 글을 쓸 때 청자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라서 다각도로 따져보고 써야 해요. 하지만 회장의 글은 회장 생각을 그대로 쓰면 돼요. 그러나 반대로 대통령의 글은 쓰다 맘에 안 들어도 공무원의 신분이기 때문에 안 잘리지만, 회장 글을 쓰다가 맘에 안 들면 바로 잘려요. 회장 글은 쓰기도 쉽고 잘리기도 쉬워요."
-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7년, 청와대에서 연설비서관으로 계셨잖아요. 연설비서관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나요?"공식 연설이나 기고문 등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는 것을 돕는 역할입니다. 청와대에는 서른 몇 명의 비서관들이 있지요. 회사로 치면 부서장 같은 자리입니다. 부서원으로는 행정관이란 직책이 있어요.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은 써준 대로 읽는 분이 아니었어요. 말이 대통령 보좌 업무이지 실제로는 대통령께 말하고 글 쓰는 법을 배웠지요. 자신들의 말과 글은 스스로 쓰고 다듬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써서 드리는 초안은 그저 초안일 뿐이었죠. 두 분 대통령께서 손을 대면 초안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김 대통령 때는 써서 올린 것을 다 고쳐서 주셨고, 노 대통령 때는 써서 올리면 불러서 구술해 주셨어요."
- 연설비서관은 자기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연설자의 가치, 철학, 말투까지 꿰뚫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연설비서관이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자기 문체로 글을 쓰니까 오히려 그 일을 못합니다. 해박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통령의 생각과 대통령이 구술해준 내용을 대통령의 어투와 문체로 글로 옮기면 되지요. 24시간 오직 대통령 생각만 하면서 살면 되지요. 간혹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내가 어느새 대통령처럼 말하는 걸 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지요.
대통령 연설비서관으로서 필요한 조건은 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철주야 책상에 앉아 글을 써야 하니까요. 또 다른 조건 하나는 대통령께 꾸중을 들었을 때 의기소침하지 않는 맷집이 있어야 한다고 할까요? 8년간 일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께는 두 번 정도 칭찬을 들었는데, 노무현 대통령께는 단 한 번도 칭찬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노무현 대통령의 글에 대한 안목과 기대 수준이 높기도 했고, 제가 거기에 부응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요.
하지만 연설비서관이란 자리의 특성 탓도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좋다고 칭찬하는 순간, 그 원고가 최종 원고가 되고, 대통령께서는 그것을 그대로 읽어야 해요. 마음에 안 들면 그럴 수 없는 노릇이지요."
-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는 것 같은데 원고 정리하면서 많이 그리웠을 것 같아요."당연하죠. 저는 어린 시절 김 대통령이 저의 우상이었어요. 저는 호남 지역이었고 저희 아버님이 김 대통령을 좋아하셨어요. 아마 그 당시 호남에 살았던 어른들 대부분이 그랬어요. 오히려 대통령 하며 인기가 떨어졌죠. 민주화 투쟁할 때만 해도 대단한 분이셨죠. 저도 그 영향을 받아서 그런 분을 모신다는 게 꿈만 같았어요.
노 대통령은 인간적이고 정이 많이 가는 분이세요. 지금도 생각해보면 말씀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대단해요. 지금도 누군가 저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면 노 대통령이라고 해요. <대통령의 글쓰기>를 두 달여 동안 썼는데, 너무 행복했고 두 분과 다시 만나서 일하는 느낌으로 책을 썼어요. 강연 가서 노 대통령 이야기를 하면 30, 40대 여성 분들도 간혹 계세요. 많이 그리워하시는 것 같아요. 근데 강남 같은 데 가면 분위기가 차갑고 달라요."
강원국과 유홍준의 차이, 누더기가 될까 비단옷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