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부인 조금씩 걸을 척(?)에 소리부인 어긋날 간(艮)이 결합된 형태인데, 주로 사납다, 거칠다는 뜻이었다.
漢典
사마천의 <사기>에는 12편의 본기(本紀)가 있는데 항우(項羽)는 일곱 번째로, 여덟 번째인 한고조 유방보다도 먼저 등장한다. 반면 반고의 <한서>에는 항우가 본기에 아예 빠져 있고, 열전에 농민 반란군인 진승과 함께 그것도 항우가 아닌 항적(項籍)으로 소개되고 있다.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향해 진격할 때 항우는 송의(宋義) 수하에 있었다. 송의는 "사납기가 호랑이 같고, 제멋대로이기가 양 같고, 탐욕스럽기가 늑대 같아 고집을 부리며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모두 목을 벨 것이다(猛如虎, 很如羊, 貪如狼, 彊不使者, 皆斬之)"라고 명하며 함양 진격을 미루는데, 항우를 염두에 둔 말이 아닌가 싶다. 양이 순한 줄만 알았는데 제멋대로인 구석도 있나 보다. 결국 항우는 송의의 목을 베고 서둘러 함양으로 진격하지만, 유방보다 한발 늦어 대세를 그르친다.
여기서 유래한 중국 사자성어가 양흔랑탐(羊很狼貪)인데, 흉악하고 탐욕스럽다는 의미다. <사기>의 기록에서 보듯 흔(很, hěn)은 말이나 행동이 비꼬여서 거칠다는 의미로 주로 쓰였다. 의미부인 조금씩 걸을 척(彳)에 소리부인 어긋날 간(艮)이 결합된 형태인데, 주로 사납다, 거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원나라 문헌에서부터는 흔(很)의 쓰임이 달라진다. 원래의 의미에서 멀어져 부사로 '매우, 몹시'의 뜻으로 더 많이 쓰이는 시작한 것이다. 조선시대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의 중국어 교본이었던 <노걸대(老乞大)>와 <박통사(朴通事)>에 흔(很)이 모두 부사적 쓰임인 걸로 보아 명나라 때 이미 부사로 더 많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언어는 사회구성원간의 약속으로 임의로 변하지 않는 속성인 사회성을 지님과 동시에, 시대에 따라 그 소리와 의미가 변하는 역사성을 지닌다. 중국인들이 습관적으로 형용사 앞에 붙이는 흔(很)이 언어의 역사성을 잘 보여주는 예인 셈이다.
"당신 정말 예쁘시군요(你很漂亮)!"라는 말에서 흔(很)을 원래 의미대로 해석하면 "당신 정말 사납게 예쁘시군요!"가 되는데, '사납다'는 흔(很)의 원래 의미에 '정말, 매우'의 뜻이 약간은 묻어 있는 느낌도 없지 않다.
시대에 따라 같은 인물이라도 다른 평가를 받는 것처럼 언어의 의미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기>에서 비교적 높게 평가받은 항우가 <한서>에서 저평가되었다가 다시 당나라 중반부터 <사기>를 중시하는 경향에 따라 다시 '아름다운 패자'로 문학, 예술에서 사랑받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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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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