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때' 치우는 엄마 코스프레, 힘들었어요

[다다와 함께 읽은 책13] <깔끔쟁이 빅터 아저씨>

등록 2015.06.19 10:39수정 2015.06.1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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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키우면서 지켜본 바, 엄마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듯하다. '그때그때' 치우는 엄마와 '한번에' 치우는 엄마. '한번에' 치우는 엄마 쪽에 속하는 나는 '그때그때' 치우는 엄마들이 참 대단해 보였다.

"이거 봐. 니가 혼자 먹으니까 다 흘리잖아. 아직은 안 돼. 엄마가 먹여줄게."
"싫어, 내가 혼자 먹을 거야."
"허이구. 이제 너도 컸다고... 그래 한번 혼자 먹어봐라."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기특한 마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입으로 들어가는 거보다 흘리고, 쏟고, 옷에 묻히는 게 더 많은 상황을 접하게 되면 심란해졌다. 그럴 때는 치우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그저 이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랐다.

반면 내 주위의 '그때그때' 치우는 엄마는 달랐다. 맨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통에 더러워진 아이의 손과 입 주변을 깨끗이 닦아내기 바빴다. 애들 밥 한 끼 먹이면서 물티슈, 티슈 반 통 쓰는 거 쯤이야. 온 정신이 쏙 빠지도록 아이들 식사를 돕고 나면 그제야 퉁퉁 불어터진 스파게티 면발을 꾸역꾸역 먹는 엄마들.

내 또래의 젊은 엄마들이 유난히 깔끔을 떠는 건 아니었다. 시어머니도 그랬다. 함께 밥을 먹을 때 아이가 조금이라도 흘리고 먹는 걸 그냥 보지 못했다. "그냥 두세요 어머니, 어차피 또 흘려요"라고 말해봐야 소용없었다.

주변이 이러하니 '한번에' 치우는 내가 좀 이상한 건가 싶어 '그때 그때' 치우는 엄마 코스프레도 해봤다. 물론 오래가지 못했다. 그걸 하는 나도, 아이들도 힘들었다. '아, 몰라. 그냥 난 내 스타일로 할래'.

그런 시절을 보내고 난 뒤 우연히 SBS <오! 마이 베이비>에서 라둥이 엄마 슈를 보게 됐을 때 반갑고 좋았다. (방송상 연출된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먹는 데 욕심이 많은 라둥이들이 먹기 위해 온 난리를 쳐도 '그때그때' 치우지 않고 기다려주는 슈에게서 내 모습이 비쳤기 때문이다(물론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지만). 적어도 나와 슈의 아이들은 <깔끔쟁이 빅터 아저씨>(박민희 글/그림)처럼 되지는 않겠지? 싶어 웃음도 슬쩍 났다.


늘 혼자인 빅터 아저씨, 하루 만에 달라진 삶

a  <깔끔쟁이 빅터아저씨> 박민희 글/그림

<깔끔쟁이 빅터아저씨> 박민희 글/그림 ⓒ 책속물고기


매일 하얀 옷만 입고, 양말도 다림질할 만큼 깔끔한 걸 좋아하는 빅터 아저씨는 친구도 하나 없이 늘 혼자야. 왜냐고? 그건 바로 더러운 걸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 지독한 깔끔쟁이라서 먼지 하나에도 화내고 인상을 찡그리는데, 누가 좋아하겠어. 그런 빅터 아저씨가 하루는 세탁소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가 아주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되는데... 세상에, 그날이 하필 토마토를 서로 던지면서 노는 축제일이지 뭐야.


아저씨는 토마토 범벅인 사람들을 보고 너무 놀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이렇게 더러운 걸 어떻게 참는 거지?' 아저씨는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사람들을 피해 숨었지만, 사람들은 용케 아저씨를 찾아냈어. 아저씨는 너무 화가 났어. 그래서 토마토 하나를 아무에게나 던져 버렸어.

계속 던지고 던지고 또 던졌어. 그러다 하하호호 웃음이 절로 났지. 어릴 적 하던 전쟁놀이를 하듯, 빅터 아저씨는 모르는 사람들과 편을 갈라 놀았어. 어느덧 축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빅터 아저씨는 웃음이 났어. 재밌었거든. 그다음 빅터 아저씨가 어딜 갔는지 알아? 그건 책에서 확인해봐.

아이들이 과자를 먹을 때마다 "흘리지 말고 먹어, 그렇게 먹으면 흘리잖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A가 있다. 그에게 "너무 그러지 마, 흘리면 좀 어때... 나중에 청소기 돌리면 돼" 하고 말했더니, 웃으며 말해준 이야기.

"언니, 우리 엄마는 나 과자 먹을 때 쓰레기통 받치고 먹으라고 했어, 웃기지? 그런 게 익숙하기도 하고, 애들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

사람마다 나고 자란 환경이 다른 만큼 몰랐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A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내게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이란 건 있으니까. 가령 '한번에' 치우는 것 같은. 근데 A, 우리 애들이 흘리고 먹는 건 좀 봐줄 거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깔끔쟁이 빅터 아저씨

박민희 글.그림,
책속물고기, 2015


#그림책 #다다 #깔끔쟁이 빅터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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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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