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수학여행

까까머리 학생들이 반백이 되어 추억을 찾아 나섰다

등록 2015.06.17 14:15수정 2015.06.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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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4000톤급 여객선

24000톤급 여객선 ⓒ 이경모


a  세월이 지나간 흔적은 보이지만 해맑은 55세

세월이 지나간 흔적은 보이지만 해맑은 55세 ⓒ 이경모


1978년 5월. 몇일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즈음 제주도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갔었다. 그 후 37년. 지난 5월 23일. 졸업 35주년 기념, '추억의 수학여행'을 다시 제주도로 갔다. 까까머리 학생들이 반백이 되어 추억을 찾아 나선 것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동창들 12명은 제주공항에 내렸고, 광주에서 출발해 목포항에서 배를 타고 온 35명과 제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배 승선을 기다리는 친구들 얼굴에는 세월이 지나간 흔적이 뚜렷하지만 설렘이 가득했고 37년 전 그날과 똑같다.


수학여행 때 목포항에서 탔던 배는 1000톤도 채 안 된 작은 배인데다가 제주도까지 8시간 넘게 걸려 얼마나 배 멀미를 했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다시 속이 울렁거린다. 이번 제주행 배는 24000톤급이어서 멀미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선상 위에서 4시간 동안 옛 추억을 꺼내 안주 삼아 마신 술은 주위 승객들이 놀랄 정도였다.

a  차귀도(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 1리에 속하는 섬)풍경

차귀도(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 1리에 속하는 섬)풍경 ⓒ 이경모


a  차귀도 독수리바위

차귀도 독수리바위 ⓒ 이경모


a  어깨동무를 하고 발을 내밀며 한 컷

어깨동무를 하고 발을 내밀며 한 컷 ⓒ 이경모


a  건배가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모습

건배가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모습 ⓒ 이경모


오후 3시. 서울 친구들과 반갑게 만나 차귀도를 트레킹했다. 상큼한 바닷바람을 선물받은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발을 내밀며 사진도 찍고 저녁에 단체로 건배할 때 함께 부를 노래도 연습했다.

외모는 어른들이지만 하는 행동은 고등학생들이다. 보는 사람이 없어서 더 떠들고 신났다. 정말 오랜만에 많이 웃었다. 저녁 7시부터 팬션 뜰에서 시작된 돼지불고기 파티는 '추억의 수학여행' 분위기를 한껏 높였다.

a  짤짤이 재현

짤짤이 재현 ⓒ 이경모


파티 중간에 짤짤이(손안에 있는 동전의 개수 따위를 알아맞히는 놀이)게임은 단번에 37년 전 교실을 옮겨 놨다. 짤짤이는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모여 하는 도박(?)이었지만 거기에도 선수는 있었다. 그 선수는 용돈을 짤짤이로 벌었다는 설도 있었으니 말이다. 가끔 담임선생님에게 들켜 판돈 모두를 빼앗기기도 했다. 그 돈으로 반에서 쓸 걸레도 사고 쓰레기통도 샀지만 모두 피해자면서 학급에 기부자가 됐다. 그때처럼 눈빛들이 빛나지 않아 게임은 싱겁게 끝났지만 추억을 더듬어보는 재밌는 시간이었다.

어느 집단에서든, 특히 여행지에서는 이탈하려는 무리가 있는 법. 술자리가 익어갈 무렵 한 친구가 나이트클럽 갈 친구들을 조용히 모집한 것이다. 나는 최근에 여러 번 제주도에 갔지만 나이트클럽은 가지 않았다. 나이도 나이지만 클럽에서 춤추고 놀았던 기억이 아스라해 어색할 것 같아 포기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밖에서 많이 들었던 나이트클럽 스토리들 확인도 해보고 어떤 곳인가 가보고 싶었다. 14명이 의기투합해서 나이트클럽에 갔다. 황금연휴여서 그런지 나이트클럽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대에서 하는, 19금에 가까운 대부분의 쇼는 여자 손님들을 위한 쇼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자 손님보다 여자 손님이 훨씬 많아서다. 다음날 아침 메뉴는 단연코 어젯밤 나이트클럽 얘기였다. 새벽에 들어 온 친구들의 얘기는 믿든 안 믿든 영웅담이다.

a  에코랜드(제주시 조천읍 대흘리에 위치한 테마파크로 기차를 타고 숲을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숲은 각각 4개의 역으로 구성되어있다. 기차를 타고 간이역으로 내려 관람할 수 있다.)

에코랜드(제주시 조천읍 대흘리에 위치한 테마파크로 기차를 타고 숲을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숲은 각각 4개의 역으로 구성되어있다. 기차를 타고 간이역으로 내려 관람할 수 있다.) ⓒ 이경모


a  섭지코지(성산일출봉의 남서쪽에 있다. 높이 29m. 본래는 섬이었으나, 육계사주로 인해 본토와 연결된 육계도이다. 남쪽해안의 기암절벽에는 주상절리, 시스택, 단애 등이 잘 발달되어 있다.)

섭지코지(성산일출봉의 남서쪽에 있다. 높이 29m. 본래는 섬이었으나, 육계사주로 인해 본토와 연결된 육계도이다. 남쪽해안의 기암절벽에는 주상절리, 시스택, 단애 등이 잘 발달되어 있다.) ⓒ 이경모


아침식사를 하고 에코랜드와 섭지코지를 관광했다. 에코랜드 관광 중에 갑자기 한 친구가 몇몇 친구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도대체 몇 학년 때 제주도로 수학여행 왔지?"
"2학년."
"아니 1학년 때 왔어."

의견들이 반반 나뉘었다. 세월이 흘러 그럴 수 있겠지만 몇 학년 때 온지를 헷갈린 것이다. 의견이 분분하자 이 친구는 다시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몇 학년 때 간 것인지를 정확히 기억할 수 있는 친구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일까? 못하는 친구일까? 다른 학교 친구얘긴데 그 친구는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자퇴를 했어. 그 이유는 수학여행만큼 기다릴 만한 재밌는 일이 앞으로 없다는 거였대."

결론은 공부를 못했던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제주도까지 와서 그것도 37년 전 공부타령이라니 웃기는 일이지만 친구들 모두가 재밌어 한다. 그런데 쉽지가 않았다. 수학여행을 언제 왔느냐고 물어본 친구는 곧 공부를 못했다는 등식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고민은 쉽게 해결됐다. 본인이 3년간 교실 문을 닫고 왔다는, 꼴찌 친구가 이번 여행에 왔다. 사업으로 성공한 친구여서 공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친구다. 대부분 친구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종착역에서 만난 그 친구에게 물었다. 그 친구는 정확하게 2학년 때 왔다고 했다.

"나 땀나는 것 보이지? 행여나 나한테 물어 볼까 봐 진짜 긴장했다"라고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행동을 하는 친구를 보며 한바탕 웃었다.

a  용두암(제주시내 북쪽 바닷가에 있는 용두암은 높이 10m가량의 바위로 오랜 세월에 걸쳐 파도와 바람에 씻겨 빚어진 모양이 용의 머리와 닮았다 하여 용두암이라 불린다)

용두암(제주시내 북쪽 바닷가에 있는 용두암은 높이 10m가량의 바위로 오랜 세월에 걸쳐 파도와 바람에 씻겨 빚어진 모양이 용의 머리와 닮았다 하여 용두암이라 불린다) ⓒ 이경모


점심식사 후 마지막 여행지는 용두암. 지금은 제주도에 놀이 시설이 많아 제주관광 상품이 다양하지만 우리가 수학여행 왔을 때만해도 관광코스는 용두암 만장굴 외돌개 산방산 협재굴 전방폭포 등이었다.

용두암은 37년 전에 왔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그런데 용두암은 그대로 있지만 주변 환경은 너무 많이 변했다. 많은 친구들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사진 찍느라 부산하다. 1978년에 용두암에서 사진을 찍었던 친구들이 지금은 여러 명 고인이 됐다. 만날 친구보다는 앞으로 못 볼 친구들이 많아진 나이다.

그래서 그런지 용두암에서 앞다퉈 사진을 찍는 친구들이 눈에 슬프게 들어왔다. 해가 우리 나이만큼 기울어져 있을 때 우리는 헤어질 준비를 했다. 제주공항에서 서울 친구들을 배웅하고 목포행 배를 탔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37년 전 담아 놓았던 추억을 꺼내어 또 다른 추억을 보태 가슴 속에 담고 왔다.
덧붙이는 글 월간잡지 첨단정보라인 7월호에 게재합니다.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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