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바를 정(正)은 갑골문에서 보듯, 공격할 목표인 성(城)을 표시하는 네모(口)와 그곳을 향해 가는 발(止)이 합쳐진 글자다.
漢典
진시황의 이름은 영정(嬴政)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사람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는 '정자정야(政者正也)'가 떠오르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이다. 그런데 황제나 조상의 이름자를 피하는 피휘(避諱)의 관습 때문에 진시황제 시절에 정월(正月)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단월(端月), 원월(元月), 인월(寅月)이란 말이 쓰였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어에서 정월의 '정(正)' 발음은 원래 4성이 아닌, 1성이다. 영정의 '정(政, zhèng)'이 4성이기 때문에 달리 부른 것에서 유래한 걸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왕조가 바뀔 때마다 역법(曆法)도, 정월로 삼은 달도 바뀐다는 사실이다. 하나라는 1월을 정월로 했으나, 이후 은나라는 12월을, 주나라는 11월을, 진나라는 10월을 1년의 시작인 정월로 삼았다. 현재처럼 1월이 정월로 정착된 것은 한 무제 때부터라고 한다.
그러니까 천하를 정복한 황제가 천하의 시간까지 새롭게 정하는 셈인데, 그렇게 시간을 '바로잡았다'는 의미에서 정월(正月)이란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백성들에게 내가 새로 시간을 바로잡았으니, 이제부터 '나의 시간에 따르라'는 황제의 상징적 통치 기술에 실로 완벽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바를 정(正, zhēng, zhèng)은 갑골문에서 보듯, 공격할 목표인 성(城)을 표시하는 네모(口)와 그곳을 향해 가는 발(止)이 합쳐진 글자로, 원래는 똑바로, 바르게 가서 잘못을 바로잡다, 정벌하다가 본뜻이다. 여기서 파생된 '바르다'는 의미로 더 널리 쓰이자 본뜻을 보전하기 위해 칠 정(征)자를 새로 만들었다. "남을 바르게 하려면 먼저 자신을 바르게 해야 한다(正人先正己)"는 용례처럼, 고대에는 '바로잡다'는 뜻으로 주로 쓰였다.
바른 인성이 이미 중요한 경쟁력인 것처럼, '바르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을 발휘한다. <손자병법>에 "바르게 깃발을 휘날리는 적, 질서 정연하게 진을 펼친 적은 공격하지 말라(勿邀正正之旗, 勿擊堂堂之陳)"고 한다. 여기에서 '정정당당(正正堂堂)'이란 말이 유래되었다. 올바른 가치의 깃발을 내걸고, 반듯한 삶의 발자취를 펼쳐 걷는 사람에게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최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신드롬에 가까운 열풍을 몰고 온 적이 있었다. 우리사회가 그만큼 사람으로서 마땅히 받아야할 대우를 받지 못하는, 차별과 부정(不正)이 만연한, 정의(正義)롭지 못한 사회라는 반증인지도 모르겠다.
공자는 '석부정, 불좌(席不正, 不坐)'라고 반듯하지 않은 자리에는 앉지 않는다고 했다. 비뚤어진 자리에 몸을 맡기면 그 삶 또한 왜곡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황제가 정월을 새롭게 하며 천하의 시간을 바로잡듯, 자신이 몸담은 자리부터 먼저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깃발을 바르게 펴고, 당당한 걸음으로 '정정당당' 나아갈 일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