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인학원에 있던 선화여상 앞 담벼락. 지금도 이 담벼락엔 ‘군부독재 타도하자’라고 적혀 있다.<시사인천 자료사진>
한만송
당시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은 장석우 교수와 대화채널을 유지했다. 장 교수는 당시 상황을 "선인학원을 인수·운영할 만한 능력이 있고 교육부가 믿을 만한 인물을 추천할 것을 (교육부가) 요구하고 처리방안도 세워놓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에 장학식·장석우 교수는 선인학원을 인수할 만한 인물을 찾기도 했다. 적어도 2~3년 안에 1000억 원 정도 투자할 수 있는 능력과 교육을 이해하며 바르게 육성할 의지가 있어야했다. 또한 정부쪽에 로비할 능력이나 영향력을 갖춘 인물이나 대기업이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장학식 교수는 이미 국내에도 사업 기반이 탄탄한 재일교포 사업가를 소개받았다. 교육부 쪽에서도 투자계획서 제출을 요구했다. 하지만 투자계획서 제출이 여러 이유로 늦어지면서 이런 내용이 백인엽과 학교법인 쪽에 흘러들어갔다.
결국 이 재일교포는 '가족과 의견 차이 때문'이라며 선인학원 인수·운영을 포기했다. 그러나 '협박성 권유'로 포기한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선인학원 시립화 성공사 편찬위원회 98쪽).
장학식 교수는 선인학원 인수에 긍정적 의사를 가진 다른 재일교포 사업가를 또 만났다. 그는 국내 진출뿐 아니라 동남아 등에도 진출하려한 사업가였다. 장 교수의 안내로 선인학원을 둘러보고 매우 의욕적인 투자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업가 역시 하루 밤 사이에 태도를 바꿨다. 역시 협박성 권유를 받은 것이었다.
'범선추'와 재단의 대결상황이 이쯤 되자, 백인엽을 추종하는 일부 교직원과 재단은 범선추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인천대교수협의회(아래 교협) 기능을 마비시켰으며, 교수들에게 교협 탈퇴를 종용했다. 특히 대정부 청원서 서명 작업이 본격화되자 교협 탈퇴 압력을 강화해, 1991년 9월 중순 교수 103명이 교협에서 탈퇴했다.
범선추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온 장석우 교수를 타깃으로 1991년 2학기 개강 전날 흑색선전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장 교수가 교무처장 재직 시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부정을 저질렀고,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문책이 두려워 민주교수를 빙자해 정의로운 일을 하려는 것처럼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실은 얼마 후 밝혀졌다. 경비원과 학생이 재단 쪽 대학직원이 유인물을 배포한 것을 목격해 장 교수에 알려주면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는 검찰 조사 때 이를 사실대로 증언했고, 결국 유인물을 배포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나마 사표를 제출하고 학교를 떠났다.
이밖에도 재단은 대리인을 내세워 범선추 공동의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범선추가 작성해 배부한 '선인학원 현 재단을 전면 개편·정상화하여야할 100가지 이유, 100가지 사례집'에 허위 사실로 명예를 훼손한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재단은 승진과 교수 재임용을 빌미로 범선추에서 중추적으로 활동한 인사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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