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학원에 관심 보인 재일교포, 돌변한 이유

[기획연재] 인천대 분쟁사학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 ⑫

등록 2015.06.24 18:26수정 2015.06.2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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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사학으로 비리가 끊이지 않아 학내 구성원과 갈등을 지속했던 선인학원은 1994년 시·공립화 됐다. 선인학원이 한때 거느린 학교는 14개, 그곳에 다닌 학생이 3만 6400여명, 교직원이 1만 4000여명에 달했다.

1980~90년대 인천은 '노동자의 도시'로 불렸다.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사람이 많았던 인천엔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맞벌이 부부 자녀들이 다닌 학교의 상당수가 선인학원 수중에 있었다. 이로 인해 인천 교육은 추락했다. 선인학원이 지금까지 그대로 존치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 기자 말

노태우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학생들의 항쟁은 1991년을 달궜다. 민주화운동의 열기는 대학 울타리 안에서 시작해 공장과 농촌 등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정국에서 사학의 민주화 열기도 더욱 고조됐다. 1991년 4월 선인학원 초·중·고등학교 11개에선 새로운 움직임이 일었다. 선인학원교사협의회가 1988년 결성됐다가 정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탄압 등으로 인해 해산됐다. 하지만 1991년 4월 이른바 '각서 파동'이 일면서 평교사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이 각서는 교육부가 '선인학원과 백인엽은 법적으로 무관하다'고 밝힌 후 나왔다. 백씨의 선인학원 재복귀를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1991년 5월 31일 당시 인천대 안경수 교수와 운봉공고 유무형·원학운, 운산기계공고 장재선, 선화여중 이세영, 인화여중 정창현, 인천체고 박향숙·안정애 교사가 선인학원 상황을 공유하고 공동 노력을 결의했다. 이들은 향후 인천지역의 다양한 영역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안경수 교수는 인천대 부총장을 거쳐 5대 총장에 취임했고, 원학운 선생은 전교조 인천지부장과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장을 역임했다. 이세영 교사는 계양의제21 상임회장을 맡았고 계양산 골프장 건설 반대 운동을 이끌었다.

이들은 1991년 6월 19일 지역 언론에 '선인학원 이사장 및 임원 여러분께 드리는 공개 질의'란 광고를 게시해 선인학원 안팎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들 모임에 인천전문대 장석우 교수 등도 가세하면서 선인학원 정상화 투쟁 준비를 본격화했다.

이들은 '대정부 청원운동'을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백인엽이 선인학원을 국가에 헌납한 만큼, 선인학원 정상화의 책임과 권한은 정부(=교육부)에 있으니, 정부가 나서서 선인학원 사태를 해결해달라는 취지였다.


'선인학원 산하 16개 교육기관 4만여 명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교사·직원 일동은, 삼가 교육부 장관과 정부 당국에 백인엽씨의 부당한 간섭과 횡포, 현 재단의 무능으로 빚어지고 있는 선인학원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알려드림과 동시에, 어떠한 횡포와 불의에도 굴하지 않고 정의와 양심을 지켜나갈 우리의 결의를 다지면서, 불행한 사태의 재발과 국민 교육의 더 이상의 희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충정에서 선인학원의 정상화를 위한 정부당국의 조속한 결단을 간곡히 청원하는 바입니다.'

이들이 작성한 '선인학원 정상화를 위한 대정부 청원서'의 전문이다. 이들은 1991년 7월 5일 '범 선인학원 정상화 추진위원회(이하 범선추)'를 정식 발족했다. 범선추 공동의장을 인천대 장석우·장학식 교수, 선화여중 이세영 교사가 맡았고, 학교별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또한 범선추는 '선인학원 현 재단을 전면 개편·정상화하여야할 100가지 이유, 100가지 사례집'을 발간해 선인학원 구성원과 인천지역 양심적 세력에 배부했다.


범선추는 청원서를 교육부에 제출하고 장관을 면담하려했지만, 교육부 관계자들은 '백인엽씨가 선인학원을 국가에 헌납한 것은 사실이나, 국가가 헌납을 받아들일 것은 아니다'라며 장관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 또한 감사 파견 요청에도 부정적 대답을 내놓았다.

이에 범선추는 1991년 8월 20일 대통령 앞으로 청원서를 제출했다. 아울러 국무총리실, 감사원, 대검찰청, 국회, 인천시와 각 언론사에 발송했다. 교사나 교수 10여명의 시국선언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당시 상황에서 교수와 교사 356명이 서명한 청원서를 정권은 냉대했다.

교육부는 그해 9월 12일부터 5일간 선인학원 실태를 조사했지만, 면죄부만 준 꼴이었다. 특히 교육부는 학교법인 이사진이 78억 원을 백씨에게 불법 유출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듬해 '인천시민의 모임'에서 이 사실을 폭로하고 나서야 교육부는 이 문제를 '이사진 승인 취소'의 명분으로 삼았다.

재일교포가 인수 희망한 선인학원    

 옛 선인학원에 있던 선화여상 앞 담벼락. 지금도 이 담벼락엔 ‘군부독재 타도하자’라고 적혀 있다.<시사인천 자료사진>
옛 선인학원에 있던 선화여상 앞 담벼락. 지금도 이 담벼락엔 ‘군부독재 타도하자’라고 적혀 있다.<시사인천 자료사진>한만송

당시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은 장석우 교수와 대화채널을 유지했다. 장 교수는 당시 상황을 "선인학원을 인수·운영할 만한 능력이 있고 교육부가 믿을 만한 인물을 추천할 것을 (교육부가) 요구하고 처리방안도 세워놓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에 장학식·장석우 교수는 선인학원을 인수할 만한 인물을 찾기도 했다. 적어도 2~3년 안에 1000억 원 정도 투자할 수 있는 능력과 교육을 이해하며 바르게 육성할 의지가 있어야했다. 또한 정부쪽에 로비할 능력이나 영향력을 갖춘 인물이나 대기업이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장학식 교수는 이미 국내에도 사업 기반이 탄탄한 재일교포 사업가를 소개받았다. 교육부 쪽에서도 투자계획서 제출을 요구했다. 하지만 투자계획서 제출이 여러 이유로 늦어지면서 이런 내용이 백인엽과 학교법인 쪽에 흘러들어갔다.

결국 이 재일교포는 '가족과 의견 차이 때문'이라며 선인학원 인수·운영을 포기했다. 그러나 '협박성 권유'로 포기한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선인학원 시립화 성공사 편찬위원회 98쪽).

장학식 교수는 선인학원 인수에 긍정적 의사를 가진 다른 재일교포 사업가를 또 만났다. 그는 국내 진출뿐 아니라 동남아 등에도 진출하려한 사업가였다. 장 교수의 안내로 선인학원을 둘러보고 매우 의욕적인 투자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업가 역시 하루 밤 사이에 태도를 바꿨다. 역시 협박성 권유를 받은 것이었다.

'범선추'와 재단의 대결

상황이 이쯤 되자, 백인엽을 추종하는 일부 교직원과 재단은 범선추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인천대교수협의회(아래 교협) 기능을 마비시켰으며, 교수들에게 교협 탈퇴를 종용했다. 특히 대정부 청원서 서명 작업이 본격화되자 교협 탈퇴 압력을 강화해, 1991년 9월 중순 교수 103명이 교협에서 탈퇴했다.

범선추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온 장석우 교수를 타깃으로 1991년 2학기 개강 전날 흑색선전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장 교수가 교무처장 재직 시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부정을 저질렀고,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문책이 두려워 민주교수를 빙자해 정의로운 일을 하려는 것처럼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실은 얼마 후 밝혀졌다. 경비원과 학생이 재단 쪽 대학직원이 유인물을 배포한 것을 목격해 장 교수에 알려주면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는 검찰 조사 때 이를 사실대로 증언했고, 결국 유인물을 배포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나마 사표를 제출하고 학교를 떠났다.

이밖에도 재단은 대리인을 내세워 범선추 공동의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범선추가 작성해 배부한 '선인학원 현 재단을 전면 개편·정상화하여야할 100가지 이유, 100가지 사례집'에 허위 사실로 명예를 훼손한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재단은 승진과 교수 재임용을 빌미로 범선추에서 중추적으로 활동한 인사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천대학교 #선인학원 #백인엽 #사학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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