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화폐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김성호의 독서만세 67] <돈의 반란>

등록 2015.08.10 15:57수정 2020.12.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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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반란책 표지북돋움

삼척동자도 아는 말이지만, 돈을 쌓아둘 수록 이익이다. 금액이 클수록, 기간이 길수록 이익은 더 늘어난다. 돈이 돈을 낳는다. 돈이 남는 이는 돈을 굴려서 돈을 벌고, 돈이 필요한 이는 돈을 빌리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당연한 일 아닌가. 사람들은 이 질서를 마치 자연스러운 법칙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음식물은 오래두면 상하고 생명체는 시간이 지날 수록 시들어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돈은 그와 반대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바로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화폐는 인류의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인간의 욕심 때문에 자연법칙에 반하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

그렇다면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돈을 만들 수는 없을까? 오래 보관할수록 이익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입고, 돈이 돈을 낳는 기능을 거세함으로써 흐르는 물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경제는 더 활력을 띠고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

이것이 새로운 화폐 질서를 꿈꾸어온 사람들이 가진 공통된 생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가치가 떨어지는 감가減價화폐, 돈에 붙은 가격표를 떼어버림으로써 이자를 낳을 수 없도록 만든 불임不妊화폐, 이기와 경쟁이 아니라 나눔과 호혜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공동체화폐가 이들이 구상해낸 모델들이다. 16, 17p 

작금의 자본주의가 심각한 문제국면에 봉착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자유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체급과 실력이 다른 이들을 한 무대에서 치고받게 한 결과로 강자는 링 전체를 아우르는 막강한 권력을 얻었고 약자는 제 몸을 누일 곳도 찾지 못한 채 당장을 버티기 급급한 상황까지 내몰렸다.

한국경제가 처한 문제가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오늘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밥그릇을 빼앗아 제 몸을 불려가고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1100조 수준에 이르렀다. 독과점과 담합을 일삼는 기업엔 솜방망이 처벌만 주어지고 재벌의 도덕성은 바닥까지 떨어져 분노만 일으킨다.


상황이 이러한데 정부가 반성의 기미도 없는 재벌과 담합으로 징계받은 기업들의 사면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금잔에 담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안주는 만 사람의 기름이라.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도 떨어지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다'며 변학도를 꾸짖던 이몽룡의 싯구절이 한국의 오늘에 과연 얼마만큼 어울리는가!

지난 대선을 뜨겁게 달군 경제민주화 공약은 말 그대로 공허한 약속이 되었다. 한국사회의 경제는 국민의 것이 아닌 강자의 것으로 남았고 약자는 강자의 선의에 구걸하는 상황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동반성장위원회에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적합업종제도가 수년 째 법제화되지 못하고 노사정위원회에선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작 450원 인상한데 이어 비정규직 제도를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는 입법까지 추진해 공분을 사고 있다.


자본주의 핵심원칙인 공정한 경쟁은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대기업은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뛰어들어 빵집, 카페, 마트, 식당은 물론 포장재, 공구 등 본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분야까지 진출해 수익을 극대화한다. 계열사 일감 밀어주기와 담합, 독과점 등도 더는 새로운 뉴스가 되지 못한다. 61개 기업집단의 소속회사가 무려 1686개에 이른다는 공정위 발표(2015년 7월 1일 기준)와 대기업 사내유보금이 710조 원에 이른다는 통계, 10대 그룹 계열사 10곳 중 3곳의 매출 절반이 내부거래라는 뉴스 등은 갈수록 늘어가는 가계부채, 몰락하는 중산층, 수익성이 악화되어 가는 중소기업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부자의 창고엔 돈이 쌓이고 빈자의 계좌엔 빚만 쌓이는 오늘이다.

돈이 부자의 창고에 쌓여 풀릴 줄 모르니 경제는 갈수록 활력을 잃어간다. 돌고 돌아서 돈이라는데 은행 금고와 부자의 통장에 들어앉아 몸집을 불리고 있으니 문제가 없을 리 만무하다. 만성적인 통화량 부족으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는 건 물론이고 실물경제와 괴리된 금융시장의 거품까지 지적된다. 재화와 노동의 매개로써의 역할을 방기해 자원과 노동력이 무가치하게 방치되는 상황도 지속된다. 돈이 제 역할을 못해 시스템과 사회 전체가 병들어 가는 것이다.

대안화폐의 A to Z

이타카 아워 미국 뉴욕주 북부 이타카시의 대안화폐 '이타카 아워'
이타카 아워미국 뉴욕주 북부 이타카시의 대안화폐 '이타카 아워'이타카 아워

대안화폐는 국가화폐와 대척점에 서 있는 돈이 아니다. 반대로 국가화폐가 제대로 흘러가지 못하는 영역에 돈이 흐르도록 함으로써 국가화폐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보완화폐(complementary currency)가 대안화폐의 정체성이다. 재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인 것이다. 28p

붇돋움이 지난 5월 내놓은 <돈의 반란>은 화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 같은 상황에서 공동체의 생존전략으로 등장한 대안화폐라는 게 무엇인지를 설명한 책이다. 저자인 한국사회적금융연구원장 문진수씨가 대안화폐의 의미와 역할에서부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까지를 알기 쉽게 담아냈다. 아직 한국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개념인 대안화폐에 대해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 경제와 화폐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초보자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대안화폐의 개념과 필요를 설명하고(1장) 현존하는 대안화폐의 모델을 소개하며(2부), 대안화폐의 목적, 시스템 구축, 유통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 유형별 모델설계, 프로세스, 마음가짐(각 3~8부) 등 대안화폐를 실제로 만들기 위한 지침에 이르는 내용이 폭넓게 담겼다. 이론과 실제를 모두 담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적인 부분만 효율적으로 짚고 있어 양도 방대하지 않다. 부록으로 대안화폐에 대해 갖기 쉬운 오해를 바로잡는 '대안화폐 10문 10답'을 마련해 대안화폐의 진면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책에 따르면 대안화폐는 법정화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등장한 보완화폐다.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Weimar) 공화국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나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 달러화 품귀현상이 극심했을 경우가 대표적이다. 기존 화폐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지역경제까지 타격을 받을 경우 대안화폐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된다. 책에서 사례로 들고 있는 레츠, 킴가우어, 브리스틀파운드, 낭트화폐, 커뮤니티웨이, 레스, 이타카 아워, 에코머니 등이 모두 지역기반의 대안화폐로 법정화폐와 공존하며 지역의 자원을 순환시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모델들이다.

대안화폐가 외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책은 대전의 한밭레츠, 서울 성미산 마을의 두루, 화천의 화천사랑상품권 등 한국에서 운영 중인 지역 기반의 대안화폐 모델들도 소개한다. 평생 법적화폐만 써온 탓에 대안화폐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지만 직접 사용해보고 이에 대해 알아본다면 대안화폐가 이질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인간과 공동체를 위한 착한 화폐

한밭레츠 대전 지역 대안화폐  한밭레츠
한밭레츠대전 지역 대안화폐 한밭레츠한밭레츠

무엇보다 대안화폐가 지닌 최고의 장점은 공동체를 위한 착한 화폐라는 점일 것이다. 이번 그리스 사태에서 보듯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화폐시스템은 때로 지역 경제에 극심한 문제를 일으킨다. 어느 지역의 돈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기만 하고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지역에선 돈이 돌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원과 노동을 매몰시켜 지역 경기를 얼어붙게 만든다. 대안화폐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까지는 되지 못할지라도 효과적인 대처가 될 수 있다. 화폐 유통범위를 지역단위로 제한함으로써 공동체 내의 자원 순환을 장려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안화폐가 오늘날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지역의 부가 일방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출되는 현상 등을 완화해 지역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보완적 수단에 가깝다. 하지만 화폐가 본래의 역할에서 벗어나 인간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오늘날,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화폐시스템을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 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접하고 화폐 본연의 목적과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미래를 살피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스스로 구해야 하는 세상이 아니던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안화폐 사업은 이상적 현실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상적 현실을 만드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멋지고 훌륭한 일이지만, 대안화폐를 통해 이상을 구현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의 실현은 이보다 훨씬 더 큰 꿈과 '거대한 전환'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반대로 대안화폐는 현실적인 이상을 추구한다. 대안화폐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현실이 이상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어내는 것이 고매한 이상을 외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화폐 없는 세상world without money이 아니라, 돈이 선하게 쓰이는 세상world flowing the good money을 꿈꾼다. 244,245p

다음 휴가는 대안화폐가 있는 곳으로 떠나야겠다. 멋진 경험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돈의 반란>(문진수 지음 / 북돋움 / 2015.05. / 1만5천원)

돈의 반란 - 디플레이션 시대의 공동체 생존 전략, 대안화폐

문진수 지음,
북돋움, 2015


#돈의 반란 #북돋움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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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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