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반란책 표지
북돋움
삼척동자도 아는 말이지만, 돈을 쌓아둘 수록 이익이다. 금액이 클수록, 기간이 길수록 이익은 더 늘어난다. 돈이 돈을 낳는다. 돈이 남는 이는 돈을 굴려서 돈을 벌고, 돈이 필요한 이는 돈을 빌리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당연한 일 아닌가. 사람들은 이 질서를 마치 자연스러운 법칙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음식물은 오래두면 상하고 생명체는 시간이 지날 수록 시들어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돈은 그와 반대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바로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화폐는 인류의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인간의 욕심 때문에 자연법칙에 반하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렇다면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돈을 만들 수는 없을까? 오래 보관할수록 이익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입고, 돈이 돈을 낳는 기능을 거세함으로써 흐르는 물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경제는 더 활력을 띠고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이것이 새로운 화폐 질서를 꿈꾸어온 사람들이 가진 공통된 생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가치가 떨어지는 감가減價화폐, 돈에 붙은 가격표를 떼어버림으로써 이자를 낳을 수 없도록 만든 불임不妊화폐, 이기와 경쟁이 아니라 나눔과 호혜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공동체화폐가 이들이 구상해낸 모델들이다. 16, 17p 작금의 자본주의가 심각한 문제국면에 봉착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자유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체급과 실력이 다른 이들을 한 무대에서 치고받게 한 결과로 강자는 링 전체를 아우르는 막강한 권력을 얻었고 약자는 제 몸을 누일 곳도 찾지 못한 채 당장을 버티기 급급한 상황까지 내몰렸다.
한국경제가 처한 문제가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오늘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밥그릇을 빼앗아 제 몸을 불려가고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1100조 수준에 이르렀다. 독과점과 담합을 일삼는 기업엔 솜방망이 처벌만 주어지고 재벌의 도덕성은 바닥까지 떨어져 분노만 일으킨다.
상황이 이러한데 정부가 반성의 기미도 없는 재벌과 담합으로 징계받은 기업들의 사면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금잔에 담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안주는 만 사람의 기름이라.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도 떨어지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다'며 변학도를 꾸짖던 이몽룡의 싯구절이 한국의 오늘에 과연 얼마만큼 어울리는가!
지난 대선을 뜨겁게 달군 경제민주화 공약은 말 그대로 공허한 약속이 되었다. 한국사회의 경제는 국민의 것이 아닌 강자의 것으로 남았고 약자는 강자의 선의에 구걸하는 상황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동반성장위원회에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적합업종제도가 수년 째 법제화되지 못하고 노사정위원회에선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작 450원 인상한데 이어 비정규직 제도를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는 입법까지 추진해 공분을 사고 있다.
자본주의 핵심원칙인 공정한 경쟁은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대기업은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뛰어들어 빵집, 카페, 마트, 식당은 물론 포장재, 공구 등 본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분야까지 진출해 수익을 극대화한다. 계열사 일감 밀어주기와 담합, 독과점 등도 더는 새로운 뉴스가 되지 못한다. 61개 기업집단의 소속회사가 무려 1686개에 이른다는 공정위 발표(2015년 7월 1일 기준)와 대기업 사내유보금이 710조 원에 이른다는 통계, 10대 그룹 계열사 10곳 중 3곳의 매출 절반이 내부거래라는 뉴스 등은 갈수록 늘어가는 가계부채, 몰락하는 중산층, 수익성이 악화되어 가는 중소기업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부자의 창고엔 돈이 쌓이고 빈자의 계좌엔 빚만 쌓이는 오늘이다.
돈이 부자의 창고에 쌓여 풀릴 줄 모르니 경제는 갈수록 활력을 잃어간다. 돌고 돌아서 돈이라는데 은행 금고와 부자의 통장에 들어앉아 몸집을 불리고 있으니 문제가 없을 리 만무하다. 만성적인 통화량 부족으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는 건 물론이고 실물경제와 괴리된 금융시장의 거품까지 지적된다. 재화와 노동의 매개로써의 역할을 방기해 자원과 노동력이 무가치하게 방치되는 상황도 지속된다. 돈이 제 역할을 못해 시스템과 사회 전체가 병들어 가는 것이다.
대안화폐의 A to 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