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군 소위 임관 직전의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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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를 바꿔 보겠습니다. 최근 우리 역사 속의 반헌법 행위자들에 대한 행적을 기록하고 역사적 심판을 내리자는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사업이 제안되었습니다. 그동안 역사 청산 작업의 선두에 서 오셨는데,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저도 이런 열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은 누구보다 공감합니다. 당대의 현행법으로는 처벌하지 못했지만 역사적 심판은 받게 해야 한다는 원칙과 필요성은 너무나도 강합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이 열전 사업의 대상이 대부분 현재 권력자들입니다. 사법부를 포함해서 정계, 언론계, 학계 다 영향권에 있어요. 슬기롭게 가야 합니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들 때처럼 많은 이들을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전에 김대중 선생이 민주화 운동하실 때,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혼자 100미터 가려고 하지 말고 백 명이 50미터를 함께 가야 역사가 바뀐다'고요. 혁명의 시대에는 선각자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많은 국민들, 연구자들, 법률가들이 참여해야 합니다.
특히 과거에 잘못된 일을 했지만 참회하는 사람들을 발굴해서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 사업이 누군가에게 보복하려는 차원에서 진행되는 게 아니라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역사운동의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잘 알려 나가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 또 과거사 타령이냐고 폄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한나 아렌트라는 학자가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지요. 정말 잔인하고 악한 일을 벌인 사람들도 생활 속에서는 평범한 누군가의 가장이었다고. 저를 고문하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고문하다 말고 쉴 때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음담패설하고... 평범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가 '영구화'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서정주가 변절한 게 일본 제국주의가 200년은 더 갈 줄 알고 그랬다는 거 아닙니까? 밝은 햇볕이 비출 날이 없을 줄 알고 변절한 겁니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권력에서 물러나고 교체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그 역할을 수행해 줘야 할) 지금 야당의 모습에서 많은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겁니다."
- 역사 청산만큼은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신채호 선생이 '우리 역사에는 역성혁명도 있었고, 반정도 있었고, 쿠데타도 있었는데, 혁명적인 정화(淨化)가 한 번도 없었다'고 했어요. 민족반역자, 민중학살자들을 한 번도 처벌한 혁명적인 정화가 없었다는 거예요. 이게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쓴 글인데 근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매국노도 하나 처벌 못했고, 4.19혁명, 광주항쟁 때 총질한 자, 독재자들도 제대로 처벌한 적이 없어요.
죄를 짓고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면 벌을 받는다는 역사의 준엄한 모습을 보여 줬어야 했는데, 그게 없으니까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다른 나라를 보세요. 과거 청산은 가차 없이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정권 때에도 마치 성인군자나 된 것처럼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고만 했어요. 당사자들은 전혀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사과도 안 하는데 말이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어떻게 보면 아마추어 정권이었습니다. 정권교체도 했고, 대통령은 진솔하고 역사의식도 있었는데, 정부 핵심 브레인 중에는 역사의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실패한 겁니다."
- 그래서 뒤틀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 역사를 제대로 정화하는 작업은 전문가들이나 지식인들과 함께 국민들의 참여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역사를 '감계(鑑戒)'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감(鑑)은 거울 감자를 써요. 역사라는 거울에다가 자기를 비춰보고 교훈을 얻는 것이라는 의미지요. 당대의 실정법으로 잘못된 일들을 걸러내지 못하면 역사가 걸러내고, 역사도 걸러내지 못하면 하늘이 걸러냅니다. 그래서 역사학자, 사가들의 글을 필주(筆誅)라고 그랬습니다. 사마천 같은 사람이 역사에 필주를 가했다고 합니다. 역사에 필주를 가할 수 있는 이번 열전 편찬 사업에 참여하는 학자들, 지식인들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는 것은 국민 각자의 소임입니다. 투표만 해서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청산을 못하면 도끼로 자기발등만이 아니라 후손들의 발등까지 찍는 겁니다. 반민족, 반민주, 반평화, 독재세력에 대한 역사청산은 국민들이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특히 자기가 투표를 잘못해서 역사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더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헌법의 이름을 앞세워 헌법을 유린해온 우리 역사 속의 반헌법 행위자. 지난 7월 16일, 현행법으로는 처벌하지 못한 이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자는 (가칭)반헌법 행위자 열전편찬 사업이 제안됐다. 오는 8월 12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는 열전 편찬을 위한 첫 번째 토론회가 개최된다. 역사에 필주를 가할 국민들의 참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