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탱자 놀다'라는 말, 혹시 이런 이유 때문?

[우리 고장 문화재 탐사③]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를 찾아가다

등록 2015.09.21 10:21수정 2015.09.2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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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기리 탱자나무. 나이가 많지만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어 보기 좋았다.

사기리 탱자나무. 나이가 많지만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어 보기 좋았다. ⓒ 전갑남


지난 15일, 아내가 주섬주섬 출근 준비에 분주하다. 요즘 들어 무척 해가 짧아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니 아침 시간이 빡빡하다.


나는 현직에서 물러나 있고, 아내는 직장에 출근한다. 그래 나는 아침 시간에 여유가 있다. 대신 아내는 부랴부랴 서두른다. 집안일을 함께하는데도 출근하느라 어떨 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아내가 급히 현관문을 나선다. 그래도 잔소리는 빠뜨리지 않는다. 

"당신, 오늘은 자전거 타고 사기리 쪽으로 간다면서요? 나중에 나랑 같이 가지 그래요? 그쪽은 자전거 타기 위험한데…. 길 건널 땐 끌고 가고, 조심 또 조심 알죠! 아예 차로 가면 어때요? 이건창 생가, 사기리 탱자나무 사진 찍고, 갔다 오면 이야기 부탁해요!"

먼 길 떠나는 아이 단속하듯 잔소리에다 당부가 섞여 있다. 대꾸하지 않을 내가 아니다.

"알았다고! 늦었다면서 뭔 말이 이렇게 많으실까? 당신이나 차 조심하라고! 운전할 때는 핸드폰 받지 말고. 끝나면 바로 퇴근할 거지?"


우리는 그러고 보면 잔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다. 잔소리는 결국 안전으로 끝을 맺는다.

탐방길에 만난 최영섭 선생 기념비


나는 자전거를 타고 문화재 탐방을 떠난다. 브레이크도 점검하고, 튜브에 바람도 빵빵하게 채운다. 시원한 물병 하나 달고서 페달을 밟는다. 목적지는 인근 마을 사기리. 그곳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사기리 탱자나무를 찾아간다.

'조심조심!' 아내의 잔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애라, 돌아가자! 좀 더 타면 될 것을!' 나는 지름길인 찻길을 피해 논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마을 안길로 들어섰다. 논길과 시골 안길은 자전거 타기에 안전하다. 삭막하지 않아서 좋다. 들판은 얼마나 넉넉한가! 요즘 들녘에는 햇살과 바람에 곡식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누런 황금빛 가을 냄새도 풍긴다.

시골 마을길은 정겨움이 있는 동네 고샅길이다. 굽어진 길목마다 이야깃거리가 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가마솥에서 밥 타는 냄새가 술술 풍길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마을길 끝을 달려 어느새 찻길로 들어선다. 이제부터 피할 수 없는 찻길이다. 인도가 없는 좁은 신작로에 차가 씽씽 달린다. 자전거와 차가 함께 달린다.

a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 선생 기념비. 최영섭 선생은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출신이다.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 선생 기념비. 최영섭 선생은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출신이다. ⓒ 전갑남


사기리에 도착했다. 도로가에 까만 조그마한 비석 하나가 보인다. '여기에 무슨 까만 비석?' 자전거에서 내렸다. 이 고장 출신이자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 선생의 기념비가 있다. 선생의 생가터에 기념비를 세운 모양이다. 비석 뒷면에는 작사가 한상억 선생의 <그리운 금강산> 노랫말을 새겼다. 건평리쉼터에서 늘 보던 노래비에다 이곳에서 기념비를 보니 무척 반갑다. 우리 고장의 예술인을 기리려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탱자나무는 천연기념물

a  사기리 탱자나무 도로 안내판. 이건창생가와 인접해 있다.

사기리 탱자나무 도로 안내판. 이건창생가와 인접해 있다. ⓒ 전갑남


좀 더 달려가니 사기리 탱자나무 안내판이 보인다. 이곳 탱자나무는 이건창 생가 앞 도로에 인접해 자리 잡고 있다. 탱자나무 좌측으로 무궁화동산이 있다. 주변이 깔끔하다.

a  천연기념물 제79호인 강화사기리 탱자나무 표지석

천연기념물 제79호인 강화사기리 탱자나무 표지석 ⓒ 전갑남

천연기념물 79호인 탱자나무 표지석이 고풍스럽다. 묘의 비문처럼 나무 앞에 서 있는 게 이색적이다. 표지석에 새긴 글자 또한 정겹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글자체가 멋스럽다. 요즘 세대에서 흔히 보는 판에 박힌 컴퓨터 글꼴과는 다르게 신선한 맛이 있다.

탱자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멀리서 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세 갈래 가지가 용트림하듯 뻗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균형 잡힌 나무가 무성하다. 몸은 비록 지주목에 의지하고 있지만, 그 위용만은 늠름하다. 모진 풍상을 견디고 자기 자리에서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나무에 동서남북 표시가 있다. 나무의 방위에 따라 자라는 가지의 생육상태를 관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곳 탱자나무는 여러 차례의 수술을 거쳤다고 한다. 오랜 세월의 풍상에 서쪽 가지는 죽고, 동쪽 가지가 살아남아 지금의 모양새를 갖췄다고 한다. 현재는 수세가 매우 좋아 보여 다행이다. 밑둥치의 굵기로 볼 때 여느 탱자나무와는 달리 매우 큰 나무였던 것 같다.

나무 밑에서 하늘을 쳐다보니 가지마다 푸른 잎 사이사이로 열매가 조롱조롱 달렸다. 말 그대로 탱글탱글한 열매가 숱하다. 자손을 많이 퍼트리려는 지혜가 고맙다. 어떤 놈은 열매가 노란색 옷을 입기 시작한다. 탱자나무에도 가을이 온 것 같다. 노란 열매를 보니 시큼한 맛이 떠올라 침샘을 자극한다. 향긋한 냄새가 코끝으로 전해진다.

a  탱자나무에 숱하게 열매가 달렸다. 가을색이 느껴진다.

탱자나무에 숱하게 열매가 달렸다. 가을색이 느껴진다. ⓒ 전갑남


a  가지를 보호하기 위해 지주목을 받쳐주었다.

가지를 보호하기 위해 지주목을 받쳐주었다. ⓒ 전갑남


a  사기리 탱자나무 밑둥이다. 여러 차례 수술을 하였다. 나무 주위에 나뭇조각을 깔아놓았다.

사기리 탱자나무 밑둥이다. 여러 차례 수술을 하였다. 나무 주위에 나뭇조각을 깔아놓았다. ⓒ 전갑남


정사각형 나무 울타리 안쪽에 자디잔 나뭇조각들을 두껍게 깔아놨다. 나무 밑에 잡초가 자라는 것을 막고, 수분을 유지시켜 가뭄에도 나무가 잘 견디게 하려는 것 같다.

탱자나무, 보호받을 만하네!

강화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탱자나무는 두 그루다. 이곳 사기리 탱자나무와 갑곶돈대에 탱자나무가 바로 그것. 모두 수령이 400여 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탱자나무는 주로 남부 지방에 많이 심었다. 그리고 강화도는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의 한계선이라고 한다. 강화도 위쪽은 탱자나무가 추운 겨울을 나기가 어렵다. 이는 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강화도 탱자나무는 나이가 많다는 것 외에도 또 다른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강화도는 고려 고종이 몽고의 침입을 피해 이곳으로 천도했던 곳이다. 조선 인조는 정묘호란 때에 난을 피하기 위해 강화도를 선택했다. 이때 외적을 막기 위해 강화도에 성을 쌓고, 성 바깥쪽에는 탱자나무를 심었다고 전한다.

험상궂은 가시가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를 쳐 이른바 목성(木城)을 쌓은 것이다.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의도였다. 강화도 탱자나무는 그 당시 심었던 것들로,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화도 탱자나무는 우리 선조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유물로서의 가치를 부여받은 역사성이 있다.

사기리 탱자나무는 조선 말 문신이며 대문장가였던 이건창 선생이 살던 마을로 그분의 기개를 닮아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소중한 생각이 든다.

a  조선시대말 영재 이건창 선생의 생가(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0호). 사기리 탱자나무와 가깝게 있다.

조선시대말 영재 이건창 선생의 생가(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0호). 사기리 탱자나무와 가깝게 있다. ⓒ 전갑남


영재 이건창은 암행어사로서 추상같은 기개를 지닌 분으로 탐관오리를 벌하고, 한 시대를 선도한 대문장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탱자나무가 이건창의 시대정신을 함께 지키고 있는 것 같아 더 귀하고 보기에도 참 좋아 보인다. 400세 사기리 탱자나무의 정령이 속삭이는 듯하다.

'나는 이건창을 키웠노라, 그리고 함께 자랐노라!'

탱자나무에 대한 아련한 추억

집에 도착하자 퇴근한 아내가 나를 반긴다.

"당신, 무사히 잘 다녀왔네! 천연기념물 탱자나무 어땠어요? 이건창 생가도 다녀왔죠? 어서 사진 좀 보여주세요!"

우리는 문화재 사진을 함께 보며 탱자나무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

어릴 적 시골마을에서 울타리로 흔히 볼 수 있었던 탱자나무. 탱자나무는 꽃도 열매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봄에 핀 하얀 꽃은 잎보다 먼저 피우지만, 화려한 다른 봄꽃들에 밀려난다.

a  탱자나무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탱자나무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 전갑남


열매 또한 귤이나 유자와 사촌뻘이지만 맛은 달지 않고, 시큼해 사랑받지 못한다. 탱자나무 열매는 별로 쓸모가 없다. 그래서 '탱자탱자 놀다'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뒹굴뒹굴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탱자탱자 놀아서 쓰겠나?"라고 나무란다. 하지만 탱자도 쓸모가 있다. 껍질을 말려서 진통해열제·이뇨제 등에 유용하게 쓰인다.

험상궂은 가시는 울타리를 치기에 알맞았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유배를 보낸 죄인에게는 가혹했다.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그 말은 곧 '울안에 편안히 모셔둔다'지만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쳐서 바깥출입을 못하게 한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탱자나무는 일상에서 쓰임새도 많았다. 콧바람 소독을 한 탱자나무 가시로 손에 박힌 비접을 뽑아내면 얼마나 시원했던가? 또 고동이나 우렁이를 쏘옥 빼먹을 때도 탱자나무 가시는 요긴했다. 어른들은 길을 가다가 가시를 이쑤시개로 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탱자나무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새롭다.
덧붙이는 글 초지대교 건너 동막해수욕장 가는 길목에서 이건창 생가와 사지리 탱자나무를 함께 탐방할 수 있다.
#사기리 탱자나무 #천연기념물 #이건창생가 #탱자나무 #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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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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