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고구마고구마에 얽힌 애환. 함평고구마 사건
전새날
조선 시대에는 쌀농사를 할 수 없는 백성들이 수두룩했었다. 자기 논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남의 논일망정 부쳐짓는 것도 힘들었다. 한계지역에서 날씨가 안 좋아도 재배가 가능하니 고구마는 서민들의 식품이었다. 거름기 없는 황토밭에서 잘 자라다보니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체험행사로 고구마 밭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1970년대에도 고구마를 삶아서 밀가루 반죽에 버무려 칼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산간지역 사람들은 거의 주식처럼 먹었다. 칼국수로 만들어 먹었던 기억도 있다. 만약에 서울 어느 지점에 고구마 칼국수 집을 연다면 인기 짱일 것이다. 달큰하면서 부드럽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 희석식소주를 만드는 주정의 원료로 고구마가 쓰였다. 고구마를 삶아서 발효를 한 다음에 증류해서 만들었다. 고구마는 주성분이 녹말이기 때문에 당분으로 변하고 다시 알코올로 될 수 있다.
그래서 농협에서 주정회사를 끼고 대량 수배를 했었는데 부정사건이 터진 것이 그 유명한 1976년의 '함평고구마사건'이다. 가톨릭농민회 중심으로 가톨릭신부들까지 떨쳐나서서 3년여에 걸친 투쟁 끝에 보상금을 받아 내는 승리를 거뒀던 대표적인 농민운동으로 발전했었다. 박정희정권은 긴급조치 위반 혐의를 걸어 길거리에서 울부짖는 농민들을 탄압했다.
사각사각 달콤한 '눈고구마'가 생각난다지난해에 고구마를 캤는데 잔챙이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 컸었다. 삶아먹다 남겨 뒀던 고구마가 햇볕에 말라가고 있었는데 그걸 먹어 봤더니 쫄짓쫄깃 하고 달달했다. 아예 가마니 째로 가마솥에 삶아 말렸더니 더할 수 없는 겨울 새참거리가 되었다. 이때 약간의 기술이 필요한데 첫째는 삶을 때 살짝 삶아야 한다는 점이다. 푹 삶으면 흐물흐물해져서다. 두 번째 기술은 햇볕에 말리는 데 2/3쯤 말려야 한다. 그래야 쫀득쫀득하게 먹을 수 있다.
다른 어떤 농작물보다 고구마는 잘 언다. 얼었다하면 바로 썩는다. 감자는 썩어도 분말을 내서 먹을 수 있지만 고구마는 썩으면 돼지도 안 먹어서 다 버린다. 아마 0℃에서 썩는 음식은 고구마뿐일 것이다. 함평고구마사건도 따지고 보면 이런 특성 때문에 빚어졌다고 할 수 있다. 농협이 수매 돈을 딴 데로 빼돌려서는 11월 하순이 되도록 고구마를 들판에 쌓아두게 했으니 썩는 냄새가 산천을 진동했고 농민들은 속이 문드러져버렸다.
그래서 수확을 하면 바로 흙을 잘 털어내고 공기 잘 통하는 12~15℃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바람 잘 통하는 곳에 얇게 펴 널어서 10~15일을 예비저장 과정을 통해 방열 처리 한 뒤에 저장하면 더 좋다. 방열처리를 하는 것은 고구마는 자체 호흡으로 열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도 주의할 게 있다. 고구마를 캐면서 상처가 났거나 껍질이 까진 것은 골라내야한다. 이런 것들은 30℃의 약간 높은 온도에서 4-5일간 아물이처리를 하고 장기보관 체제로 들어가는 것이 썩는 걸 방지할 수 있다. 따로 저장고가 없었던 옛날에는 방 윗목으로 고구마를 손님처럼 모시고 한 겨울을 나는 일이 예사였다. 고구마 뒤주는 짚으로 엮어 만들어 공기가 잘 통했다.
원래 고구마 잎은 나물도 해 먹지만 소 먹이 여물로 최고였다. 볏짚만 끓여주다가 말린 고구마넝쿨을 작두로 썰어 한 줌 넣어주면 누워 자던 소가 벌떡 일어나 여물통으로 달려오곤 했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고구마 순을 걷어 말리는 일이 일소 키우는 농가의 겨우살이였다. 요즘은 공짜로 갖다 줘도 소 먹이로 안 준다. 배합사료 대신 그걸 먹였다가는 소의 성장 속도가 떨어져 망해먹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기억력이 좋은 분은 흰 눈이 펄펄 오는 겨울철에 문득 고구마를 떠 올릴 수 있다. 쇠죽을 끓여준 가마솥 아궁이에 고구마를 묻는 한편, 동시에 쌓인 눈 속 깊숙이에도 고구마를 묻어 둔다. 밤이 이슥하도록 아랫방에서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다보면 이놈 저놈이 코를 벌렁대며 고구마 다 탄다며 군고구마 꺼내 먹자고 하는데 아무도 눈 속에 있는 고구마는 눈치 채지 못한다.
군고구마는 고소하고 달지만 눈고구마는 사각사각하고 달콤하다. 눈 속에서 탱탱 언 고구마는 얼음과자처럼 차고 바삭거린다. 언 고구마가 더 단 이유는 왜일까? 얼었다고 당도가 높아진 것일까? 어쨌든 보통 고구마보다 훨씬 달아서 눈고구마를 만들어 먹던 겨울이 더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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