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2월 부산을 찾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평의 한 신발공장을 찾아 노동자들을 만나고 함께 식사를 하던 모습.
부산광역시
지역 언론은 김 전 대통령과 부산의 인연을 새삼 강조하고 나섰다. 거제에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오며 성장했고, 9선 의원을 지내는 동안 부산에서만 7번 당선됐다. 독재에 항거하던 민주화 투쟁 시기에는 부산을 기반으로 군부 정권에 맞섰다. 1987년 6월 항쟁이 그 정점이었다.
1992년 대통령이 된 후에도 굵직굵직한 선물을 부산에 안기며 애정을 나타냈다. 김 전 대통령은 지금은 부산의 대표적 상징물이 된 광안대교를 건설하는 데 적지 않은 힘을 실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부산과 그의 고향인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본격 추진된 것도 그의 임기 중이었다.
당시 사업비만 5조 5천억 원이 든 동북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항인 부산 신항만도 그의 작품이다. 지역민들의 염원이었던 해양수산부를 일궈낸 것도 그의 업적으로 꼽힌다. 신설 부서가 타 부서에 밀리지 않게 부산 출신 유력 정치인이었던 신상우 전 의원을 초대 장관에 임명한 일화는 유명하다.
지역주의 심화 오점... "지역주의 벽 넘어야"하지만 그가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심화시켰다는 평가는 피해가기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1992년 초원복집 사건이다. 부산 지역 기관장들이 복집에 모여 김 전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한 관권선거를 기획한 이 사건은 한국 정치사의 오점으로 평가된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역주의를 조장하며 외친 "우리가 남이가"란 말은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역 신문들은 장문의 사설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의 공은 평가하면서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지역주의 정치의 종식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 <부산일보>는 23일 "(서거가) 민주화와, 영·호남 정치를 상징하는 양 김 역사의 종언이기도 하다"면서 "두 거목의 퇴장으로 우리 정치도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서는 새 패러다임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국제신문>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 현대사가 양 김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았음을 알리는 신호"라며 "뿌리 깊은 지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김 전 대통령이 추구하던 참된 민주주의의 모습일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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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정치 고향' 부산 애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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