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유치원 들어가기 대작전!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49] 산들이는 유치원에 갈 수 있을까

등록 2015.12.09 10:02수정 2015.12.0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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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가 내리고 12월이 되자 유치원 추첨을 앞둔 유아를 둔 가정엔 전운이 감돈다. 유치원 추첨이 무슨 대수라고 '전운'까지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겪어보지 않은 집은 절대 모른다. 유치원 입학 전쟁은 2년 전 처음 겪었다. 집에서 세 아이를 키우다 첫째 까꿍이의 여섯 살을 앞두고 처음으로 유치원에 보낼 계획을 세웠다. 당시 공동육아어린이집 설립을 위한 부모협동조합을 추진하던 때라 주위의 유치원 추첨 전쟁에선 조금 빗겨 있었다. 그러나 공동육아어린이집 개원이 여러 사정으로 불투명한 상황이라 차선책으로 집근처 병설유치원에 원서를 접수했었다.


1985년 2월 졸업 후 처음 가본 유치원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단지 안의 유치원이라 다른 곳보다 접수가 월등히 적게 된 해라고 했지만 접수증을 손에 꼭 쥐고 빼곡하게 앉아있는 보호자들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막내 업고 애 둘 양손에 잡고 추첨을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는데 운 좋게도 까꿍이는 다자녀 우선순위 혜택을 받아 추첨도 없이 자동 합격이 되었다.

이제 곧 여섯살 친구를 만나러 유치원에 가고 싶어요

이제 곧 여섯살 친구를 만나러 유치원에 가고 싶어요 ⓒ 정가람


또 다시 돌아온 12월

그 후 2년이 흐르고, 둘째 산들이의 여섯 살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 사이 공동육아어린이집 추진은 완전히 무산되었고, 까꿍이의 병설유치원 2년을 지켜보니 만족스러워 산들이도 병설유치원에 보내고 싶어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강동구에는 8개의 병설유치원이 있는데 재건축으로 까꿍이가 다니던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 그마저도 하나 줄어 7개가 되었다. 2년 사이 재원생 동생 우선입학혜택도 사라지고, 다자녀우선 선발 정원 계산도 바뀌어 경쟁률이 더 높아져버렸다.

지난 여름부터 산들이 유치원 걱정이 시작되었다. 병설유치원에 못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근처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었다. 순번은 모두 까마득했다. 11월에 접어들자 2년 전 한군데에만 접수했던 때와 달리 병설유치원을 필두로 근처 사립유치원도 알아보았다. 집 바로 앞에 놀이학교가 새로 문을 열어 문의해 보기도 했다.

이름이 다르듯 제각각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병설유치원, 국공립어린이집, 사립유치원, 놀이학교, 영어유치원까지 다양한 기관들이 12월을 맞아 입학설명회를 열었다. 엄마들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 자신의 육아관과 아이 성향에 따라 폭을 좁혀 정보수집에 집중했다. 지역 인터넷카페에 올라오는 유치원 후기들을 며칠 읽다보니 머리가 지끈 거렸다.


유치원 앞에 늘어선 줄 입학추첨을 하러 온 보호자들

유치원 앞에 늘어선 줄 입학추첨을 하러 온 보호자들 ⓒ 이희동


누구를 위한 유치원

취학 전 아이들은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는 생각으로 세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사립유치원들이 내세우는 특기수업이나 놀이학교의 강점인 다양한 놀이프로그램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너무 높은 원비가 부담이 되었다. 적게는 2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이 넘었다.


계절별로 원복과 체육복을 따로 구입해야하고(몇 십 만원 하는 원복도 있다고 한다, 본 적은 없지만), 가방과 식판, 곳에 따라서는 낮잠 이불 값까지 내야하고, 입학금 몇 십 만 원을 먼저 내야 접수가 되는 사설기관도 있었다. 아무리 유치원 교육이 의무교육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립기관들은 천차만별이었다.

반면 병설유치원과 국공립어린이집은 거의 무상에 가까운 교육이 가능하다. 2년동안 까꿍이를 병설유치원에 보내면서 추가로 낸 금액은 현장학습 입장료, 매월 추가되는 급식비(만원 이하),  졸업앨범비 정도가 전부이다. 연 10만 원도 안되는 금액이다. 사립유치원에 비해 다양한 수업이 없어 불만인 엄마들도 있지만 나와 까꿍이에겐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던 2년이었다. 

정보의 홍수 속에 집에서 차로 20분 안에 갈 수 있는 병설유치원 네 곳에 원서를 접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접수시간도, 추첨일도 모두 같다. 대리인 추첨도 가능하다기에 일단 쓰고 보기로 했다. 만 4세 과정은 만 3세에서 올라오는 재원생이 많아 신입전형모집 수가 아주 적었다. 만 3세반이 없는 한 병설만이 교육과정반 14명, 방과 후 과정반 5명을 모집하고, 한 유치원은 교육과정반 한명만 모집했다. 엄마들이 선호하는 몇몇 사립유치원은 만 4세 과정에 아예 정원이 없기도 했다.

네 아이의 입학의 당락이 접수증 부디 이 접수증의 번호의 공이 뽑히길!

네 아이의 입학의 당락이 접수증 부디 이 접수증의 번호의 공이 뽑히길! ⓒ 정가람


원서 접수 대작전

이런 상황을 겪고 보니 왜 아직 어린데도 불구하고 만3세, 일반적으로 다섯 살인 아이들을 유치원에 일찍 보내는지 알게 되었다. 막내 복댕이가 2월생이라 병설유치원 만 3세 과정에 조기입학이 가능하다기에 고민 끝에 다섯 살까지 집에서 키우겠다는 가치관을 접고 복댕이도 원서를 내기로 했다. 한번이라도 더 추첨의 기회를 얻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산들이와 복댕이 두 명의 원서 일곱 장을 들고 (한곳은 만3세 과정반이 없었다) 오전 내내 접수를 하러 돌아다녔다. 그날 밤 남편과 접수증을 늘어놓고 누가 어디에 가 추첨을 할지 작전을 짰다. 남편과 나, 동네 엄마들 두 명이 네 군데로 흩어져 추첨하기로 했다. 대리추첨자를 구하지 못했던 다른 엄마의 접수증도 부탁 받다보니 난 총 네 장의 접수증을 들고 가게 되었다. 경쟁률이 치열한 추첨현장 분위기 때문에 유아동반이 불가능한 곳도 있어 아이들 맡길 곳까지 급하게 찾아야 했다.

종종거리며 추첨할 강당에 도착해보니 2년 전과 차원이 달랐다. 강동구의 유일한 단설인 병설유치원엔 경찰까지 와 있었다. 특수아동, 유공자자녀, 차상위계층 등 0순위, 1순위를 지나 다자녀, 다문화 등의 2순위, 일반순위로 나뉘어져 추첨이 진행되었다. 2순위까지 경쟁률은 높은 곳은 15:1, 낮은 곳은 7:1정도였고, 일반순위는 40:1까지인 곳도 있었다.

병설유치원 추첨을 기다리는 사람들 오직 한마음! 그런데 옆사람들이 떨어져야 내 아이가 된다.

병설유치원 추첨을 기다리는 사람들 오직 한마음! 그런데 옆사람들이 떨어져야 내 아이가 된다. ⓒ 이희동


경찰 입회 아래 추첨 시작

네 명의 아이들 접수증과 공을 들고 앉아있는 내내 너무나 떨렸다. '심장이 터질 듯하다'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대학입시 때도 이렇게 떨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양가의 조부모님께 기도까지 부탁드리고 초조하게 추첨을 기다렸다. 결과는 단 한곳, 동네 엄마가 대신 갔던 곳에서 산들이만 합격공이 뽑히고 나머지는 모두 탈락이었다. 네 개의 공을 갖고 있던 난 모두 탈락했다.

작전을 수행하듯 네 곳의 사람들과 결과를 나눈 후 추첨일은 마무리 되었다. 퇴근한 남편과 다시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추첨된 곳이 집에서 제일 먼 곳이었다. 차로 가면 20분이면 되지만, 한 번에 가는 대중교통 노선이 없는 곳이다. 까꿍이 유치원은 남편 회사 근처라 남편이 버스로 혹은 자전거로 함께 출근하며 등원을 시키고 하원은 내가 날씨 좋을 때는 20분 정도 걸어 가거나, 버스 혹은 차로 갔다. 그러나 산들이가 합격한 유치원은 까꿍이 유치원보다 약 두 배 멀어졌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거나, 버스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고 5분 정도 걸어야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고등학교도 아닌 유치원을 이렇게 복잡하게 가야한다니 고민이 되었다. 어릴 적 유치원때부터 한 시간가량 걸어서 다녔던 길에서 본 풍경들이 지금까지 따뜻하게 남아 많은 위로가 되고 있어 우리 아이들도 길 위에서 많은 것을 느꼈으면 했는데 유치원부터 차로 다녀야 한다니. 학교 가는 길,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쌓는 소중한 추억을 급하고 답답한 차 안에 갇히게 하고 싶진 않은데……. 아, 대안이 없다.

다둥이 엄마의 바쁜 걱정들

삼엄한 추첨현장 경찰까지 왔다

삼엄한 추첨현장 경찰까지 왔다 ⓒ 이희동


까꿍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산들이도 병설유치원에 입학하면 아침이 얼마나 바빠질까? 3월 한 달은 1학년도, 병설유치원도 적응기간이라 단축수업을 할텐데, 그러다 하원 시간이 겹치면 어떻게 하나, 다둥이 엄마의 걱정은 벌써 봄으로 달려간다. 병설만큼은 아니지만 사립유치원도 만만치 않은 경쟁률을 뚫고 추첨의 행운이 있어야 가능한 입학. 나의 불편함과 수고로움만 감수하면 먼 곳의 병설도 좋은 해답이다. 고민 끝에 합격증을 받은 병설에 입학서류를 내기로 결정했다.

입학서류에 붙일 산들이 증명사진을 찍다 보니 괜히 화가 났다. '0~5살 보육 및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실현'이라는 현 대통령의 공약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기억은 할까? 누리과정 예산마저도 정부와 교육청 간의 싸움으로 던져놓고 내년에도 보육대란이 예상된다며 뉴스는 답없는 걱정을 늘어놓고 있다.

아무리 유치원이 의무교육이 아닌 선택교육이라 하지만 도시에서 유치원 보내기는 답답하기만 하다. 취학 전 아이들의 보육, 교육기관인 어린이집, 유치원은 단순한 보육과 교육의 문제로만 접근하지 않길 바란다. 맞벌이 부부들에게 유아들을 위한 양육기관은 또 하나의 가정이고, 전업주부들에게도 엄마의 한 부분을 대신하는 곳이다. 예산이 부족하다고 삭감하고 없앨 수 있는 그런 분야가 아니다.

합격 불합격 없이 모두 다 함께 누리고 싶어요 누리과정!

합격 불합격 없이 모두 다 함께 누리고 싶어요 누리과정! ⓒ 정가람


유치원(혹은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태어나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라기 위해 꼭 필요한 터전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엄마들, 가족들을 위해서도. 아이들이 유치원에 굳이 가지 않아도, 엄마들끼리 약속을 정하지 않아도 아이가 현관문만 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웃집 아이와 친구가 되어 마음껏 골목을 누빌 수 있다면, 급할 때 내 아이를 맘 편히 맡길 수 있는 옆집 엄마와 담 너머로 저녁 반찬을 나누며 살 수 있다면 유치원 대신 마을이라는 터전을 우리 아이들이 내딛는 첫 사회로 만족하며 키울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무너진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는 현 시점에선 아이들의 유치원이 엄마들끼리 연대해 만들어 나가는 마을의 처음이 되고 있고, 아이들에게도 처음 사귄 친구가 있는 곳이 되고 있다. 아이 하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한 가정, 결국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아이들의 처음마저 친구가 떨어져야 내가 붙는 경쟁의 늪으로 내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까꿍이도 산들이도 수많은 불합격을 만들고 유치원에 가게 되어 마음이 편치가 않다. 2년 후 복댕이만은 이런 과정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과연 달라질까?

교육전문가도 아닌데 생각이 점점 커져 심각해지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집근처 구립어린이집이란다. 다자녀와 맞벌이 우선순위를 받아도 대기번호가 20번대여서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곳인데, 내년 3월 산들이 등원이 가능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아, 다시 머리가 복잡해진다. 설상가상 남편과 나의 의견이 다르다. 산들이는 집에서 먼 병설유치원과 집에서 가까운 구립 어린이집 중 어디로 가게 될까?

○ 편집ㅣ이준호 기자

#육아일기 #누리과정 #공립유치원 추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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