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아’로 인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 추모 분향소(순천시청) -
정기석
'복지부동'은 한국 공무원의 주특기 한국의 공무원들은 '가만히 있는 게' 주특기다. 일이 주어지면 일단 몸을 사리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은 한국 공무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나서거나 애써 새로운 일을 찾거나 벌이지 않는다. 그래봤자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괜히 나섰다가 감사에 지적만 당하는 바보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누가 정권을 잡든 변하지 않는다. 복지부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역사 속에서, 선배나 동료들의 낭패와 봉변으로부터 배웠다. 물론 이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복지부동의 정도는 더 진화했다. '복지부동 3.0'이라는 말까지 새로 등장했을 정도다. 행정자치부가 정부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추진하는 '정부 3.0'을 빗대며 조롱하는 투의 표현이다.
1970년대 무렵의 복지부동 1.0 버전은 그냥 나태와 게으름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개발도상국 시기의 공무원들은 일하는 방법도 잘 몰랐고 일 하기도 싫어했다는 것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국민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나라안팎으로 할 일이 많아지면서 소신껏 일하다 험한 꼴을 당하는 공무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저 꼴 난다"며 몸을 사리는 복지부동 2.0 버전이 발동, 공무원 사회에 대대적으로 보급되었다고 한다.
복지부동 3.0의 특징은 한마디로 무기력증으로 설명된다. 관피아 척결, 공무원연금 축소, 행정수도 이전 등으로 공무원 사회는 집단 무기력증, 우울증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민원만 미루지 뒤는 챙겨주지 않는 정치권에 대한 원망도 깊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세종시의 공직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청사를 떠날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런 '복지부동 3.0' 공무원들에게 '국민의 공복(公僕)'이란 호칭과 덕담은 이미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공무원의 특징이자 특권처럼 자리잡은 '복지부동'은 마치 법이 보장하거나 독려하고 있는 꼴이다. 공무원은 금고 이상 실형 또는 파면이 아니면 강제 면직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의 공무원은 설사 놀고 먹는다해도,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무사히 지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한 때 서울시 등에서 의욕적으로 도입했던 '공무원 3% 퇴출제'도 슬그머니 폐지되었다.
'영혼 없는 공무원'은 부정선거의 불씨한국의 공무원은 '영혼'도 없다. 공무원 스스로도 서슴없이 하는 말이다. 공무원이라는 자신의 불가피한 처지를 자조하거나 변명하는 말로 대놓고 비굴하게 고백한다. 그래야 오래,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존경받는 '공복(Civil Servant')은 오직 사전적 의미다.
한국 공무원사회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군이 바뀔 때마다 소신도 줏대도 없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눈치도 잘 보면서 줄도 잘 서야 한다. 그게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주요한 능력요건이 되었다. '영혼도 없는 공무원'이란 그런 철새같은, 또는 해바라기 같은 공무원을 싸잡아 비하하는 말이다.
심지어 '영혼이 없다'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또는 아무런 죄 의식 없이 대선 등 공직선거에 개입하는 공무원까지 다발한다. 결국 공직선거 주무부처인 행자부장관 마저 집권여당의 연찬회에서 '총선필승'을 외치는 무법천지가 되었다. 행자부는 국가의 선거지원사무를 총괄하고, 공무원 선거개입을 감독하는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선거사범을 수사하는 경찰청도 사실상 행자부 산하 기관이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도 행자부의 눈치를 볼 정도로 막강한 권력이다.
그래서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은 "본분을 망각하고 선거에 개입해 중립의무를 위반한 공무원들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려는 목적의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강 의원은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또는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도 처벌규정이 없으며 국가공무원법에 선거중립 의무위반 공직자에 대한 처벌조항 역시 미약하다"며 "앞으로 공무원이 각종 공직선거에 불법개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대선 부정선거 시비와 의혹이 사라지고 있지 않은 오늘날, 만시지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