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희생된 민간들이 묻혀 있는 데전 산내 골령골 매장지가 또 훼손됐다.. 방치돼 있던 밭을 고르면서 일부 유해가 드러났다.
심규상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가 묻혀 있는 대전 산내 골령골이 또다시 훼손됐다. 훼손된 곳은 가장 많은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2 매장지다.
올 상반기에는 최소 수십 구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근 5 매장지에 있는 유해가 토지소유주에 의해 송두리째 훼손된 바 있다.
15일 오전 10시. 산내 골령골(대전시 동구 낭월동) 11번지 일대는 예전의 땅이 아니었다. 약 2000여 평 면적의 땅은 지목상 밭이지만 최소 20여 년 이상 농사를 짓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잡풀과 잡목이 우거져 있었다.
수십 년 전 도로포장 공사로 유해가 유실된 이후에는 비교적 유해 훼손이 적은 편이었다. 일부 주변 주민들이 농지로 활용했지만 심각한 유해훼손은 없었다.
하지만 이날 현장은 이전과 크게 달랐다. 중장비를 이용해 땅 고르기 작업을 한 직후였다. 잡풀로 덮여 있던 땅은 짙은 황갈색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이곳엔 직선으로 가로 약 150m(세로 2~3m) 크기의 구덩이에 희생자들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밭 중간지점에도 40m 크기의 구덩이가 있다는 증언도 나와 있다.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아래 산내유족회)에서는 2 학살지에만 최소 1000여 명 가까운 유해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급히 유해매장 추정지를 돌아보았다. 염려했던 대로 일부 유해가 드러나 있었다. 잠깐 둘러보며 추려낸 유해만 10 여점에 이르렀다. 흰 단면으로 보아 작업 도중 쪼개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2곳에서도 유골 가루가 드러나 있었다. 그나마 바닥을 깊게 파지 않아 유해 훼손 범위와 정도가 심한 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땅 소유주인 모 저축은행 관계자는 "약 한 달 전쯤 다른 사람과 땅 매도계약을 체결했다"며 "계약자가 땅 고르기 작업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곳이 유해매장지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저축은행 측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한아무개씨는 "주민자치센터와 상의 후 농사를 짓기 위해 땅 고르기 작업을 했다"며 "이곳이 유해매장지라는 얘기를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이 유해매장지인 줄 알았으면 땅을 살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유해가 묻혀 있으면 농사를 짓기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