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대학강사, 곧 닥칠 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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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얼핏 바라본 저자의 삶에서 느낀 것은 '반반'이라는 감정이었다. 등록금이나 밥벌이는 같은 것은 인문계열 전공이라 얼추 비슷했다. 하지만 저자의 대학원 생활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살인적인 것이었다.
나도 조교생활을 해봤지만 저자가 겪은, '5분 대기조'와 같은 군대생활은 아니었다. 또 병원에 갈 만큼 다쳤는데도 일이 커질까 두려워하며 말 못한 적도 없었다. 대학원 생활은 나에게 버거운 것이었지만 저자처럼 자신을 내려놓아야 할 정도로 폭력적이진 않았다.
그러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 그에 비하면 나는 천국을 거닌 셈이었다. 제자의 사정을 아는 교수와 좋은 동료 덕에 편한 대학원 생활을 할 수 있었으니까. 저속하지만 이상한 안도감도 들었다.
한편 저자의 시간강사 생활을 엿보며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는 이미 시간강사의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책을 통해 본 저자는 좋은 선생이었다. 학생을 이해하려고, 학생을 위하려고 애쓰는 마음을 글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시간강사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본(本)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시간강사로 활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년 뒤 시간강사법이 원안대로 통과될 수도 있고, 내가 속한 학과가 인문계열이라 곧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반반이다. 안도감과 부러움이 교차했다. 지방시가 불러일으킨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감정이 앞으로 있을 대학원 박사 과정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리고만 것이다. 이미 지방대 시간강사인 저자가 버티지 못한 삶을 '지방대 시간강사라도 될 수 있을까'라는 불안에 휩싸인 내가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고, 남은 것은 다가올 캄캄한 미래를 어떻게든 견뎌내는 일뿐이다.
함께 버텨낼 사람만 있다면"현재진행형이 될 수 있었을 여러 인연들과 나는 점차 이별했다. 내가 기댈 곳은 몸담고 있는 대학원 사회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인문계 대학원에는 남자가 부족했고, 있다 하더라도 나와 '또래'인 이들은 거의 없었고, 더욱이 친구가 될 '동갑'은 전혀 없었다."(57쪽)지방시의 모든 내용에 공감했지만, 유독 눈길이 간 내용은 친구에 관한 것이었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대학원 사회 하나가 전부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 역시 남자가 부족하고, 또래가 거의 없고, 동갑인 남자는 물론 여자도 전혀 없다. 또래가 아니면 아무래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또 관계 없음에서 오는 외로움은 사람을 좀먹고 모든 의욕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물론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공부한 것을 토대로 서로 대화하고 비판하는 일도 중요한 공부 방법 중 하나다. 또 같은 길을 함께 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큰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이는 저자가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서 버텨내고 있었다'는 허벌이란 친구가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만큼 동지적 인간관계는 중요하다.
얼마 전 페이스북을 뒤적거리다 지방시의 저자가 대학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접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공감해줄 것이라 믿었던 동료의 타박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열악한 환경은 견딜 수 있어도 인간적 실망은 버티기 힘든 법이다. 동료에게마저 버림받은 집단에서 아무렇지 않게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대학은 한 명의 뛰어난 연구자와 좋은 선생을 함께 잃었다.
앞으로도 대학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편승해 끊임없이 줄이고 자르고 통폐합할 것이다. 또 대학에 적을 둔 사람들은 각자도생을 위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렇듯 엄혹한 대학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은 함께 버텨낼 사람을 찾는 것 외에는 없어 보인다.
두 사람이 체온을 나눌 때 눈보라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와 허벌의 관계처럼, 내게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친구가 있다. 이 글을 빌어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 지음,
은행나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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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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