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
웅진 지식하우스
내가 아이슬란드에 꽂히게 된 이유는,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에릭 와이너라는 불평꾼 미국 기자가 쓴 <행복의 지도>가 바로 그 책이다. 저자는 왜 자기는 이다지도 불행한데 다른 이들은 그렇게나 행복한지를 알아내기 위해 10곳의 나라를 방문한다. 이 나라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행복한 나라들이었는데, 그중 한 곳이 아이슬란드였다.
먼저, 아이슬란드에 대해 잠시 소개해 보자면 이렇다. 이 나라의 인구는 32만명으로, 제주도의 반 정도이다. 그런데 나라 면적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꽃청춘에서 볼 수 있듯 국토의 80% 정도는 빙하, 용암지대, 호수로 이루어져 있고, 2015년 기준 1인당 GDP는 5만 4,331$로 세계 6위이다(우리나라는 2만 8,338$로 세계 28위).
몇 년 전 아이슬란드에 관해 들었던 사람이라면 지금의 아이슬란드 1인당 GDP를 보고 깜짝 놀랄 수도 있을 것 같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의 여파로 아이슬란드는 파산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극복했냐면,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복지 투자를 늘렸기 때문이었다.
경제 위기가 발생하자 배만 불리던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이 빚더미에 나앉았다. 무려 230조 원이나. 아이슬란드 총리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 빚을 갚아주자 했고 국민들은 반대했다. 왜 은행이 잘못한 일을 국민이 책임지냐는 거였다.
다행히 대통령은 국민의 편이었고, 국민 투표를 실행해 93%의 사람들이 반대하자, 대통령은 국민의 세금으로 은행을 도와주는 대신, 그 돈으로 경제를 살리는 길을 택했다. 경제를 살리는 길이란 바로 복지 지출을 늘려 국민들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거였다.
모자란 금액은 부자 증세로 채웠다. IMF를 위시한 주변 유럽 국들은 아이슬란드의 이러한 정책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아이슬란드는 소신 있게 본인들의 생각을 밀고 나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경기가 좋아지기 시작했고, 지금의 아이슬란드가 되었다는 얘기.
실패에 관대한 아이슬란드 사람들하지만 내가 아이슬란드에서 살고 싶었던 이유는 경제가 좋아서도, 복지가 엄청나서도 아니었다. 에릭 와이너가 아이슬란드에서 찾은 행복의 이유 때문이었다. 실패에 관대하다는 점. 바로 이 점이 아이슬란드인을 행복한 사람들로 만들어 주었다.
저자가 본 아이슬란드의 첫인상은 '순진함'이었다. 아이슬란드의 순진함은 미국인들과의 비교에서 드러난다. 저자가 말하길 미국에선 인플레이션율이 2퍼센트만 넘어가도 난리가 난다고 한다. 대신, 실업률이 5~6퍼센트인 건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란다.
그런데 아이슬란드는 반대이다. 실업률이 5퍼센트 수준이 되면 온 나라가 난리가 나고, 대통령이 쫓겨날 수도 있다. 반면,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잘 견디는 그들이다. 그 이유인즉슨, 인플레이션율이 높으면 모두가 고통을 받지만, 실업률이 높으면 소수만 고통을 받기 때문이란다.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모두 함께 나눠 가져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렇게 순진해서일까. 아이슬란드인은 실패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패를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할 수 있다. 에릭 와이너가 인터뷰했던 음반 프로듀서 라누스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이것저것 새로운 일들을 하다 보니 체스 선수, 기자, 건설회사 중역, 신학자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고 했다. 라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누구보다 착하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 사람들이 실패한 건 냉혹하지 못한 성격 때문일 수도 있잖아요."그래서 아이슬란드에는 유독 예술가와 작가가 많다. 사실, 뭐든 시도할 수 있다면, 우리도 시 한번 쓰고, 노래 한번 만들고 싶지 않을까.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저, 한 번 해보는 것뿐이니까. 때문에 아이슬란드는 작가의 천국이다. "책 없이 사느니, 헐벗고 굶주리는 편이 낫다"고 하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아이슬란드에서는 정부가 작가에게 3년간의 보조금을 지급할 정도란다.
책에서는 미국에서 온 제러드라는 청년도 소개하고 있었다. 제러드는 우연히 아이슬란드에 놀러 왔다가 눌러앉은 경우인데, 처음에는 소프트웨어 회사 직원으로 일했다. 그런데 다음 해에는 마음을 바꿔 금융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러드는 말한다. "사람을 틀에 가두지 않는 문화, 아니 적어도 사람이 이 틀에서 저 틀로 자유로이 오갈 수 있게 해주는 문화"여서 너무나 행복하다고. 미국에서였다면 이렇듯 쉽게 직업을 바꾸지는 못했을 테니까.
에릭 와이너는 책을 마무리하며 아이슬란드인을 '거듭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거듭난 사람들이라... 나는 이 표현이 좋아 '거듭나다'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봤는데 그 뜻은 이랬다. '긍정적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다', 그러니까 한 나라의 국민들이 평생에 걸쳐 긍정적이고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변화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럴 수 있는 이유는, 역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국민성 때문이었다.
나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에릭 와이너가 찾은 10곳의 나라 중 유독 아이슬란드에 끌렸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다른 이의 실패도 너그러이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 새로운 시도를 마다하지 않으며 평생에 걸쳐 변화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라면 나의 실패도, 나의 부족함도 너그럽게 웃어 넘겨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이들과 함께라면 나 역시 나의 부족함과 실패를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이슬란드인의 이러한 국민성은 경제 상황이 좋고 복지가 뛰어나기에 가능했던 것 아니냐고. 하지만 역시나 그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었기에 이런 나라를 만들었다고. 순진하고 실패에 관대하고 예술을 좋아하고 책 읽기를 즐기는 아이슬란드인. 아마 이런 이들이었기에 경제 위기 때 국가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바보같은 소리하지 말고, 우리 모두 다 같이 행복하자고.
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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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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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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