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수박 가게의 신선한 충격

호주 시골 사는 이야기

등록 2016.01.25 16:31수정 2016.01.2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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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캠프장에서 남의 텐트를 차지한 캥거루 가족

캠프장에서 남의 텐트를 차지한 캥거루 가족 ⓒ 이강진


호주 기후는 한국과 반대다. 한국에서는 한파에 추워하고 있으나 호주는 한여름이다.


지난 이틀 동안 무척 더웠다. 그러나 오늘은 더 덥다고 한다. 시드니는 40도 가까이 오르고 우리 동네도 30도 중반 이상의 더위가 될 것이라는 일기예보다. 바다로 나갈 생각을 한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타리(Taree)라는 동네에 아는 사람이 있다. 한국에 살지만 잠시 아들 집에 와서 지내고 있는 주부다. 우연히 알게 되었으나 자주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내와는 친구가 되어 말도 트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우리에게는 생생한 한국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이웃이기도 하다. 전화를 걸어 바닷가를 가자고 하니 흔쾌히 응한다.

집 근처 해변에서 지낼 생각을 바꾸어 한 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야영장이 있고 모래사장과 바위가 어우러진 멋진 곳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삼각 김밥을 만들고 우리는 음료수와 과일을 준비하고 길을 나선다.

아침이지만 자동차 온도계는 이미 30도를 훌쩍 넘기고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넓은 초원에 있는 소들도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아직 휴가철이 끝나지 않은 고속도로에는 캐러밴을 끌고 가는 차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목적지로 들어가는 길을 놓쳐 조금 더 올라가 로리톤(Laurieton)이라는 동네에 들어선다. 두라간 국립공원(Dooragan National Park)이 있는 곳이다. 산책로도 있고 바다와 항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관광지라 몇 번 들렀던 곳이다. 주말이면 정상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는 것도 볼 수 있다.


로리톤 동네 끝자락에 중고품 가게가 있다. 이곳도 올 때마다 들러 낯익은 곳이다. 친구를 위해 잠시 들른다. 중고품을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주차해 있고 가게 입구까지 중고품으로 가득하다. 가게에 들어서니 온갖 종류의 물건이 어수선하게 진열되어 있다. 버려도 집어가지 않을 것 같은 물건부터 값나가는 물건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친구는 이것저것 보다가 자그마한 돌로 만든 장식품 하나를 가지고 나온다.

a  호주 시골 치고는 꽤 붐비는 해변 캠던 헤드(Camden Head)

호주 시골 치고는 꽤 붐비는 해변 캠던 헤드(Camden Head) ⓒ 이강진


로리톤까지 온 김에 예전에 가보았던 캠던 헤드(Camden Head)라는 곳에 들려본다. 잔잔한 해변이 있어 물놀이하기 좋은 곳이다. 평일임에도 차들이 빽빽하다. 간신히 한자리 찾아 주차하고 해변을 걷는다. 더위를 피해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방학이라 그런지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물에서 뛰어논다. 새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파라솔이 널린 해변을 사진기에 담는다.


잠깐 둘러본 후 목적지 다이아몬드 헤드로 향한다. 먼지를 뒤집어쓰며 비포장도로를 십여 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파도가 세다. 해변에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심한 바람과 파도 때문에 물에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전에 보았던 해변 풍경과 사뭇 다르다. 잔잔한 바다가 있는 캠던 헤드가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다이아몬드 헤드의 야영장을 천천히 운전하며 둘러본다. 규모가 작지 않은 캠프장은 텐트와 캐러밴 그리고 방학을 맞아 놀러 온 아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갑자기 서울서 온 친구가 소리치며 가리키는 곳을 보니 캥거루가 있다. 두 마리의 캥거루가 혼잡한 텐트 옆에서 태연하게 쉬고 있다. 자신들의 주거지를 침범한 사람과 함께 살기로 작정한 모습이다.

되돌아간다. 강을 따라 보이는 풍경이 멋지다. 강이 거의 끝나는 곳에는 요트와 크고 작은 배가 정박해 있다. 커피 향이 자동차 안에서도 느껴지는 그림 같은 카페도 보인다. 조금 더 운전하니 작은 공원이 있다. 바다를 막아 만든 자그마한 수영장과 그늘도 있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는 우리는 이곳에 차를 세우고 점심을 나눈다.

가까운 벤치에 수영하고 나온 아버지와 두 명의 아이가 엄마에게로 가는데 뜻밖에 엄마는 한국 사람이다. 자연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바다를 무척 좋아하는 젊은 아빠는 한국에서도 살았다고 한다. 한국 아내 덕분인지 김치, 고추장 등 한국 음식에 대한 자랑도 대단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포트 매콰리(Port Macquarie)에 산다고 한다. 매콰리에 한국 식당이 생겼다는 소식도 듣는다. 요즘에는 외진 곳에서도 한국 사람을 자주 접한다.

준비해온 김밥을 먹고 수영도 하며 한가한 오후를 보낸다. 심심풀이로 가져온 낚싯대를 드리우니 도미가 나온다. 그러나 잡을 수 있는 규정인 25cm를 넘지 못해 두어 마리 잡으며 손맛만 본다. 집에 있었으면 더위에 꼼짝 못할 하루를 시원하게 보냈다.

주위를 정돈하고 집으로 간다. 조금 가는데 도로변에 수박 파는 곳을 보고 아내가 차를 세우라고 한다. 커다란 상자 안에는 큼지막한 수박들이 있다. 자그마한 플라스틱 돈 통도 같이 있다. 자물쇠가 잠긴 통을 비치한 주인 없는 가게는 호주 시골에서 종종 보았다. 그러나 손님이 마음대로 여닫으며, 쉽게 가지고 갈 수 있는 자그마한 돈 통을 물건 위에 놓은 것을 본 적은 없다.

한국서 온 친구가 한국 같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마디 한다. 시드니와 같은 큰 도시에서도 이렇게 돈을 방치(?)하는 일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시골의 순박한 마음을 본다.
시골에 사는 나는 이 정도로 순박한가? 아직도 도시의 때가 흠뻑 묻어있는 나를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드니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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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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