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
헤이북스
1998년 IMF 외환위기와 잇따른 신자유주의 정부를 지나며 한국 사회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평가가 내려진 이후, 이 땅의 청년들은 줄기차게 '미래의 해결사'로 호출됐다. 2007년 우석훈·박권일은 <88만원 세대>에서 청년들에게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조언했다. 2009년 김용민은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칼럼에서 "이미 너희는 뭘 해도 늦었다"며 '20대 개새끼론'의 불씨를 지폈다(이 역시 청년들에게 '뭘 좀 해보라'는 말의 과격 버전에 다름 아니다).
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2010년 김난도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힐링'을 선물하고 '노오오오력'을 응원했다. 다시 2015년 강준만은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에서 '종이짱돌(투표)'을 변화를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 사이 언론들도 '삼포세대', 'N포세대', '달관세대' 등 경쟁적으로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한 마디씩 훈수를 뒀다. 그러나 이런 흐름 속에서도 청년을 주축으로하는 거대한 움직임이나 변화가 보이지 않자 청년담론은 어느덧 별 재미없는 '낡은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장하성 교수는 식상함을 무릅쓰고 '청년'을 '또다시' 호명하고 나섰다. 그는 오늘날 청년들이 희망이 없는 사회 속에 살면서도 "'긍정적 노예의 행복', 포기가 만들어낸 '아픈 행복'이나 '위장된 행복'"에 안주하고 있다며, "깨어나야 한다", "일어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실로 오랜만에 청년들을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메시지다. 실제로 장 교수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책을 "선동으로 봐도 좋다"고 밝혔다.
장 교수의 용기 있는 '재탕'에 덩달아 자신감이 생긴 걸까? 새해 벽두부터 몇몇 언론도 다시 청년에 관한 특별기획 기사를 들고 나왔다.
<경향신문>은 '창간 70주년 기획'으로 '부들부들 청년'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첫 회부터 "우리는 붕괴를 원한다"는 충격적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하며 심층적으로 한국 사회 청년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한겨레> 역시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라는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한국일보>는 '한·중·일 청년 리포트'라는 인터랙티브 디지털 콘텐츠 통해 '취업·창업', '주거', '결혼', '관계' 등 네 분야에 대해 3개국 청년 38명의 인터뷰를 선보였다.
웬일인가, 갑자기 쏟아지는 청년에 대한 과도한 주목은. 장 교수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부터 다시금 시작된 특별한 관심에 과연 청년들은 감사해야 하는 걸까?
청년이 미래의 답? 진짜루~?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저자가 경영·경제학자로서 치밀하게 한국 사회 불평등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 1~2부에 비해, 갑자기 사회학자 또는 멘토로 변신해 '청년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하는 3부는 상대적으로 짜임새가 치밀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그가 청년을 대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은 꽤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가령 그는 "대기업과 금융기업이 임시직인 '인턴'으로 신입 직원을 뽑은 후 이 중에서 다시 선별하여 채용하는 잔인한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며 청년들이 "한국식 인턴 제도의 폐지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지속되는 업무에는 비정규직을 폐지하고 정규직을 채용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해야 한다", "보육을 100% 국가가 책임지도록 30대가 앞장서 요구해야 한다", "초등학생 부모들이 함께 선행 학습 안 시키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결되는 다원화된 조직과 결사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20대는 인턴제도 폐지 모임을 만들고, 30대는 선행 학습 없는 세상 만들기 부모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청년유니온', '알바노조(알바연대)' 등을 "청년세대가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스스로 이루어낸 조직적 사례"라며 격려하기도 한다.
청년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걱정, 그리고 높은 식견에서 나온 이러한 조언들은 분명 귀 기울일 만하다. 청년들이 저대로만 해준다면 한국 사회가 정말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미래는 젊은이들의 것"이라는 한 마디는 왠지 청년들의 가슴을 시리게도 하고 들끓게도 할 듯하다. 이 책의 큰 미덕이다.
청년들이 바꿔라, 우리는 막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