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펜' 대보니 진실하지 못한 박근혜 연설

[분석] 남북관계 위해 지속적 노력? MB정부보다 적은 대북지원에 책정한 예산도 못썼다

등록 2016.02.16 16:53수정 2016.02.1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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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정에 관한 연설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정에 관한 연설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나는 이렇게 노력했는데, 북한이 뒤통수를 쳤다.'

박근혜 대통령의 16일 국정 연설을 요약하면 이와 같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 연설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북한을 변화시켜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고, 상생의 남북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라며 임기 중 자신이 해왔던 대북정책과 관련된 '치적'을 하나하나 거론했다.

이어, "이러한 우리 정부의 노력과 지원에 대해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대답했다"라며 "과거처럼 북한의 도발에 굴복해 퍼주기식 지원을 하는 일도 더 이상 해서는 안될 일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이란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이라도 모두 '진실하다'는 법은 없다. <오마이뉴스>가 박 대통령이 나열한 '치적'에 빨간 펜을 대보기로 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가동되긴 했나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남소연

[발언 1] "UNICEF, WHO 등 국제기구에 382억원과 민간단체 사업에 32억원을 지원해서 북한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보건의료 사업을 펼쳐 왔습니다. (중략) 돌아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 차원의 대북 지원만도 총 22억 불이 넘고, 민간 차원의 지원까지 더하면 총 30억불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통일부 자료(바로가기)에 따르면, 1995~2015년간 대북 지원 총액은 3조 2925억원으로 약 30억불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이 30억불 중 박 대통령의 지분이 얼마나 되냐는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박 대통령 임기 동안 매해 각각 183억원(2013년), 195억원(2014년), 254억원(2015년)을 대북 지원에 사용됐다.


이는 노무현 정부 시절(2006년 2982억원, 2007년 4397억원)과는 비교가 안 될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초기(2008년 1163억원, 2009년 671억원, 2010년 404억원)보다 더 적은 액수다. 물론 박 대통령 임기 동안 차츰 액수가 차츰 늘고 있긴 하지만,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조치 이후(2011년 196억원, 2012년 141억원)보다 더 적거나 조금 많은 수준이라 "지속적인 노력"과는 거리가 멀다.

[발언 2] "남북간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기조를 표방했습니다. 2014년 3월에는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하여 민생, 문화, 환경의 3대 통로를 함께 열어갈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박 대통령 대북 정책을 상징하는 단어다. 이 기조를 중심으로 2013년~2016년 통일부가 발표한 업무보고를 보면 ▲ 개성공단 국제화 ▲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 꾸준히 해결 ▲ 광복 70주년 민생, 문화, 환경 통로 개척(드레스덴 선언) 등이 주요한 내용으로 담겨 있다. 이날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이 중 세 가지를 누락했다.

예산만 세우면 뭐하나, 쓰지 못하는 돈인데...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에 망연자실한 입주업체 직원들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1일 오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직원들이 물품을 싣고 복귀하는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에 망연자실한 입주업체 직원들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1일 오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직원들이 물품을 싣고 복귀하는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유성호

개성공단 국제화는 2013년 3월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이 "(개성공단에) 외국기업이 유치돼 국제화가 되면 함부로 어느 날 출입이 금지된다거나 또는 세금을 갑자기 올린다거나 하는, 국제기준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 나올 수 없다"고 말할 만큼 신경썼던 부분이다. 박 대통령은 같은 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개성공단 국제화는) 개성공단에 예측 불가능한 일이 줄어들면서 국제기준을 따르는 공단이 되고, 북한이 국제사회 일원이 돼 가는 길"이라고 거듭 발표했다.

하지만 2013년 이후 개성공단에 책정된 국제화 관련 예산은 총 3억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집행된 액수도 1억3900만원으로 예산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도 비슷한 경우다. 2013년 5월 미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발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던 DMZ 세계평화공원은, 대선 때 'DMZ 한반도 생태평화벨트'라는 이름으로 나온 박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600억원이 넘는 관련 예산은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사업에 배정된 약 600억원(2014년 302억원, 2015년 302억원)은 2년 동안 10억원도 사용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이 문제가 거론되자 통일부는 "상기 예산은 남북합의 이후 집행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산가족 상봉도 이명박 정부 때와 비교해 크게 진전되지 못했다. 이산가족 정보종합시스템(바로가기)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동안 상봉한 이산가족 수는 2013년 0명, 2014년 813명, 2015년 972명을 기록했다(2000년 2394명, 2001년 1242명, 2002년 1724명, 2003년 2691명, 2004년 1926명, 2005년 3134명, 2006년 3236명, 2007년 3613명, 2008년 0명, 2009년 888명, 2010년 886명, 2011년~2012년 0명).

박 대통령이 남북 간 민생, 문화, 환경의 통로를 외쳤던 드레스덴 선언은 5.24조치 기조를 포기하지 못하면서 '이름 뿐인 선언'이란 비판이 일었던 내용이다.

다급할 때만 찾는 '남북대화'

 지난해 8월 25일 우리측 대표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대표인 김양건 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오른쪽부터)이 판문점에서 '무박4일' 마라톤 협상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2015.8.25 << 통일부 제공 >>
지난해 8월 25일 우리측 대표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대표인 김양건 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오른쪽부터)이 판문점에서 '무박4일' 마라톤 협상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2015.8.25 << 통일부 제공 >>연합뉴스

박 대통령은 이날 ▲ 금강산 산림병충해 방제사업 ▲ 개성만월대 공동조사·발굴사업 진행 ▲ 경원선 복원 공사 착수 등을 "지속적 노력"의 사례로 거론했다. 하지만 이는 앞서 거론한 ▲ 개성공단 국제화 ▲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 꾸준히 해결 ▲ 광복 70주년 민생, 문화, 환경 통로 개척(드레스덴 선언) 등 박근혜 정부가 굵직하게 내세운 정책들에 비해 지엽적인 것들이다.

앞서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사업 예산이 대부분 불용된 것과 관련해 통일부가 "남북합의 이후 집행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듯, 박 대통령이 제시한 정책들은 기본적으로 "남북 대화"를 바탕으로 해야 진행가능한 것들이다. 마침, 박 대통령도 이날 연설을 하며 이 점을 거론했다.

[발언 3] "작년 8월에는 남북간 긴장이 극도에 달한 상황에서도 고위 당국간 회담을 열어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광복 70년을 맞은 지난해, 8월까지 박근혜 정부는 단 한 번도 남북 대화를 이끌지 못했다. 그러다 8월초 비무장지대 지뢰폭발 사건으로 '2+2 회담'을 성사시켜 8.25합의를 이끌어냈다. 이것이 박 대통령이 국정 연설에서 거론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8.25합의의 연장선상으로 열린 12월 11~12일 남북 당국회담에서 남북은 공동보도문은 물론, 다음 회담 일정도 잡지 못했다. 이것이 지난해 박근혜 정부가 한 남북대화의 전부다.

이전엔 어땠을까. 2003년 36회, 2004년 23회, 2005년 34회, 2006년 23회, 2007년 55회(이상 노무현 정부), 2008년 6회, 2009년 6회, 2010년 8회, 2011년 1회, 2012년 0회(이상 이명박 정부), 2013년 24회 2014년 8회(이상 박근혜 정부)이다. 2013년의 경우 북한의 개성공단 중단이란 특수 상황으로 횟수가 조금 올라갔을 뿐, 박근혜 정부의 남북대화 횟수는 이명박 정부 초기 수준이다.

2013년 북한이 개성공단 중단을 선언했을 때와 지난해 비무장지대 지뢰폭발 사건에서 보듯, 박 대통령은 자신이 말한대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 외엔 남북대화를 지속적으로 이끌지 못했다.

테러방지법·북한인권법, 북 도발과 무슨 관계?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마친뒤 새누리당 의원들과 인사하며 퇴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마친뒤 새누리당 의원들과 인사하며 퇴장하고 있다.남소연

[발언 4] "북한이 언제 어떻게 무모한 도발을 감행할지 모르고 테러 등 다양한 형태의 위험에 국민들의 안전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그동안 제가 여러 차례 간절하게 부탁드린 테러방지법과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권유린을 막기 위한 북한인권법을 하루속히 통과시켜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이 "북한의 무모한 도발"과 관련이 있는지도 미지수다. 테러방지법(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은 ▲ 국정원장 소속으로 테러통합대응센터 설치 ▲ 테러 의심자에 대한 테러통합대응센터장의 정보수집·조사권 ▲ 테러를 선전·선동하는 인터넷 글의 삭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때문에 국정원장의 권력 남용, 자의적 해석에 따른 국민 사찰과 같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법안에도 '9.11테러', 'IS(이슬람국가)' 등이 거론되지만, 북한은 한 차례도 거론되지 않는다. 그만큼 박 대통령이 테러방지법 통과를 호소하며 북한의 도발을 거론한 것은 그 명분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북한인권법안의 경우에도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을 위해 ▲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 ▲ 북한인권재단 신설 ▲ 북한인권자문위를 통한 북한인권기본계획 수립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야당에서는 북한인권재단이 "북한인권 관련 민간단체를 지원한다"는 법안 내용을 두고 이 법안이 사실상 보수단체 지원법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물론, 새누리당이 누차 강조했듯 이 법안은 '대북 제재용'일 수도 있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8일 "야당이 진실로 실효성 있는 대북제재를 원한다면 북한인권법 처리에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대북 제재=북한 도발 억제'의 등식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날 박 대통령이 북한 도발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북한인권법을 거론한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근혜 #대통령 #국회 #국정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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