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총사 편식나라 탈출소동> 책표지
풀빛
큰아들은 때때마다 고기반찬을 내놓아야 젓가락을 집고, 작은아들은 먹고 싶은 것이 없으면 식탁에 앉기도 전에 토하는 시늉을 한다.
편식하면 안 좋다고 슬쩍 콩나물이라도 밥 위에 올려두면 숟가락을 딱 내려놓으니, 치사해서 두 번 다시 권하지 않게 된다. 안 보면 모를까, 대 놓고 편식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랄랄라 학교생활 시리즈 <삼총사 편식나라 탈출소동> 주인공 삼총사도 우리 아이들과 비슷하다. 아마 현실은 삼총사 소원 속 세상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반찬을 차려놔도 먹고 싶은 것만 먹는다.
긴긴 방학 동안 삼시세끼를 챙겨왔던 나는 <삼총사 편식나라 탈출소동>을 읽고 다시금 반성한다. 고기류, 햄류, 라면 등으로 한두 끼 해결하는 것은 참 쉽다. 무엇보다 해 놓으면 잘 먹으니 먹으라고 사정을 안 해도 된다(요즘 아이들은 자기들이 갑인 줄 안다, 쩝!).
또 이런 종류 음식들은 조리법도 간편하고 노력대비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아 '좋은 엄마'로 인정받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니 유혹에 안 넘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인다고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바짝 든다.
<삼총사 편식나라 탈출소동>은 편식하지 않는 건강한 식습관을 알려주기 위한 책이다. 고기를 많이 먹으면 병이 난다, 콜라를 많이 먹으면 이와 뼈가 부식된다, 밥보다 과자를 먹으면 성격이 나빠진다. 우리 아이들도 늘 듣던 이야기다.
우연히 얻은 빨간 공책에 소원을 적는 아이들채소 없는 세상에 살고 싶은 경태, 물보다 탄산음료만 먹고 싶은 주희, 삼시세끼 과자만 먹고 싶어 하는 록이. 주인공 삼총사는 우연히 얻은 빨간 공책에 간절한 소원을 적는다. 빨간 공책에는 "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이 공책에 적으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없는' 나라로 여러분을 데려다 줄 것입니다. 빈 종이에 세상에 없었으면 하는 것을 써 보세요."(14쪽)라고 적혀 있다.
공책에 '채소'를 적은 경태는 3년째 '채소의 저주'에 걸린 세상에 있다. 채소 없는 제육볶음, 닭볶음탕을 보고 좋아하던 경태는 교실에서 싸우는 친구들을 보고 당황한다. 고기만 먹었던 경태도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지만 새똥만한 똥만 싸고 얼굴이 누렇게 뜬 상태가 된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동물원 같은 모습이었어요. 성난 사자처럼 소리를 질렀으니까 말이에요. 그때 다행히 선생님이 들어왔어요. 선생님은 약병에서 흰 알약을 꺼내서 소리 지르고 있는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어요." - 31쪽탄산음료대신 물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은 주희는 공책에 '물'이라고 적었다. 주희는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에 왔다. 아프리카 친구인 말콤의 옆집 아이가 오염된 물을 마시고 죽는 상황을 겪으면서 잠시 반성한다. '하루에 6천여 명의 아이들이 더러운 물 때문에 죽어간다'는 현실을 알게 되기도 하지만 주희는 여전히 콜라만 있는 세상을 꿈꾼다.
주희도 소원대로 탄산음료만 먹고 사는 세상에 온다. 슈퍼마켓 냉장고 안에 가득 찬 탄산음료를 보고 좋아 하지만 사고로 넘어져 다리뼈가 부러졌다. 급히 병원에 가지만 아픈 사람이 엄청 많다. 콜라만 먹고 사는 세상 사람들은 다리 보호대를 꼭 차고 다녀야만 하며 병을 이기기 위해서는 약국에서 물을 사 먹어야 한다. 작은 물병에 든 물은 비싼 신발값보다 비싸다.
"물이 없어진 지 오래 됐지. 사람들이 탄산음료만 먹으니 뼈도 약해지고 병도 자주 걸리고 이도 다 썩었지. 목이 말라 탄산음료를 마셔도 어느새 또 목이 마르게 되고 말이야. 그래서 탄산음료를 물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얼마나 연구했는지 몰라." - 56쪽마지막에 만난 아이는 록이다. 록이는 '없는' 나라보다는 과자와 불량식품만 '있는' 나라를 원한다. 록이도 과자와 불량식품 가득한 나라에 있다. 하지만 친구들 얼굴은 빨간 뭔가가 잔뜩 나 있고, 록이 부모는 당뇨병에 걸려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사람들은 싸우고 록이도 배가 아프고 이가 아프다.
아이들 식습관 빵점, 방관한 나도 빵점짜리 엄마소원을 이룬 아이들이 그 안에서 겪게 되는 상황은 참으로 암담하다. 하지만 동화 속 세상이라고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 현실을 살펴보니 우리 아이도 이미 그런 세상에 산다. 고기가 없으면 밥상을 쳐다보지 않고, 라면과 햄버거로 식사를 대신하는 일도 자연스럽다. 방학기간 동안 본 아이들 식습관은 '빵점', 그 식습관을 방관한 나도 '빵점'짜리 엄마다.
함께 책을 본 아이가 "고기보다는 야채를 많이 먹어야겠다"는 걸 들으니 조금 희망이 보인다. 이 책에도 나오는, 영국의 심리학자 패트릭 홀포트 박사가 소개한 흥미로운 실험은 아이들에게 좋은 먹을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꼴찌 학교 아이들에게 인스턴트 음식 대신 과일과 채소 위주의 제철 음식을 먹도록 급식을 바꿨더니, 7개월 후 성적이 오르고 친구들과 싸우는 횟수도 줄었다는 것이다.
<삼총사 편식나라 탈출소동>은 초등학교 저학년용 동화책이라 읽기도 쉽고 이해도 잘 된다. 주인공 삼총사의 모습은 그림에서도 재밌게 표현돼 웃음도 터진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편식하지 않고 더 건강하게 자라길 희망해 본다. 주인공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아이에게도 해당하는 희망사항이다.
삼총사 편식 나라 탈출 소동 - 건강한 식습관
이서윤 지음, 송효정 그림,
풀빛,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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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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