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혹은 천 원으로 예술품 만드는 남자

[주재환 개인전] '어둠 속의 변신' 학고재갤러리 본관에서 4월 6일까지

등록 2016.03.22 11:14수정 2016.03.2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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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환(1940~) 작가의 개인전이 '어둠 속의 변신'이라는 제목으로 학고재갤러리 본관에서 오는 4월 6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기획은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한국현대미술(민중미술)로 박사학위를 받은 유혜종 선생이 맡았다. 주재환은 우리에게 낯선 작가이니 우선 그의 생애를 알아보자. 그의 일대기는 역경과 수난의 한국근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1부, 주재환 작가에 대해서] 만 60에 첫 전시를 열다


a  주재환 I '물 vs 물의 사생아들' 빨랫대, 캔, 패트병, 실, 가변설치 2016. 대량소비사회의 양면성 예컨대 탄산수는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말라지는 즉 풍요 속의 빈곤 같은 주제를 현대적 감각의 설치미술로 조형화했다.

주재환 I '물 vs 물의 사생아들' 빨랫대, 캔, 패트병, 실, 가변설치 2016. 대량소비사회의 양면성 예컨대 탄산수는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말라지는 즉 풍요 속의 빈곤 같은 주제를 현대적 감각의 설치미술로 조형화했다. ⓒ 김형순


작가 소개는 2015년 8월 8일 주재환 작가와 김진주 큐레이터가 2시간 30분짜리 팟캐스트 '말하는 미술'에서 대담한 것 중 그의 삶과 관련된 일부를 참고했음을 밝힌다.

주재환은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나 칼 차고 말 타고 다니는 일본 순사도 봤고, 해방 후 초등학교 4학년 6.25때 북한군이 쏜 대포알이 종로4가 그의 집 앞에 떨어져 박힌 걸 기억한다. 그는 인민군 치하에서 석 달을 서울서 살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됐다가, 1.4 후퇴 때 충남 외가로 내려갔다가 9.18 때 다시 서울로 수복했다.

1960년 4.19혁명 때, 광화문 일대를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다음 해 5.16쿠데타가 터진 후 박정희 시대 18년, 경제적 성과는 있었으나 인혁당, 유신선포 등 민주주주가 압살되는 일련의 사건을 몸소 체험했단다. 중고 시절 그는 반 고흐에 반해 미술가를 꿈꾸었고 그의 동창들은 '넌 언제 귀 자를 거냐'며 그에게 농을 던지곤 했단다.

휘문중고 시절 한국미술사에 큰 흔적을 남긴 '권영우(1926~2013)' 화백이 그의 미술선생이었다. 그는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돈이 없어 한 학기만 다니고 학업을 포기한다.

20대 그는 생계를 위해 피아노 외판원, 아이스크림 장사, 방범대원 등 안 해본 직종이 없이 지난한 세월을 보냈단다. 당시 1960년대 서민층 주부들은 두부 한 모 살 돈이 없어 비지를 사기 위해서, 무직의 남자들은 서울대 병원 앞에서 피를 팔기 위해서 줄을 섰단다.


30대로 넘어오면서 그는 휘문고 선배인 민속학자 심우성을 도와 잡지사, 출판사 일을 했고 독서생활, 삼성출판사, 미진사, 미술과 생활을 거친다. 이들이 모이는 곳은 학림다방, 르네상스, 명동 은성이었고, 미술평론가 이일과 시인 김수영도 거기서 만났다.

1977년에는 임영방 박사가 주간을 맡고, 성완경, 윤범모, 황명걸 등이 주도한 월간지 <미술과 생활>이 창간되었고, 그 자신은 미술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로 뽑혀 갤러리를 둘러보고 많은 미술인을 알게 되었으나 경영난으로 두 달 만에 폐간하게 된다.


민중미술1세대, 주재환 작가

그 후 1979년에 한국미술계가 화이트모노크롬 일색으로 흘러가자 이에 반발하는 이들이 '현실과 발언'이라는 미술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서울대 출신도 많았지만 학연·지연 등에 구애받지 않고 참여 의지가 높은 작가는 누구에게나 문을 개방해 신선함을 줬다. 그래서 주재환도 이 단체에 창립멤버로 참가하게 됐다.

미술평론가 성완경, 원동석, 최민, 윤범모 등이 여기에 참가해 날카로운 현실비판을 통해 새로운 담론을 펼쳤다. 회원들은 출판사 '지식산업사' 강당에서 격한 토론을 벌였단다.

a  2010년 7월 29일부터 8월 9일까지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현실과 발언_사회적 현실과 미술적 현실> 30주년 전시장 입구모습과 전시포스터. 왼쪽은 임옥상의 설치작품이다

2010년 7월 29일부터 8월 9일까지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현실과 발언_사회적 현실과 미술적 현실> 30주년 전시장 입구모습과 전시포스터. 왼쪽은 임옥상의 설치작품이다 ⓒ 김형순


박정희 시해로 1980년 '서울의 봄'이 오나 했는데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해 분위기가 다시 험해지자 이 단체를 탈퇴하는 작가도 속출했다. 여기에 끝까지 참가한 작가로는 주재환을 비롯하여 오윤, 강요배, 김정헌, 김호득, 민정기, 노원희, 손장섭, 박재동, 박불똥, 이청운, 안창홍, 이태호, 임옥상, 신경호, 김용태, 백수남 등 그외에도 많다.

현실과 발언 창립전을 10월 17일 문예진흥원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 2층에서 하기로 했고 초청장까지 다 보냈는데 당국이 이 전시를 불온시해 전시장 전원이 내려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관객이 촛불을 켜고 오픈행사를 하는 전후 무후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후에 동산방 창업주 박주환 사장이 자신의 전시장을 내줘 작품만은 걸 수 있었단다.

1985년 '민미협' 결성 공동대표

그리고 5년 후 1985년 11월 22일에는 120여 명 미술가가 모여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라는 것을 결성했다. 이때도 주재환은 창립회원으로 참여한다. 그 다음 해 3월에는 인사동 수도약국 옆에 전용전시장인 '그림마당 민'도 마련됐다. 전두환을 희화시킨 '박불똥'의 콜라주는 전시장에는 걸지 못하고 사무실 안에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폭압정치의 절정기인 1987년, 박종철을 추모하기 위해 연 <반고문전>은 종로경찰서 3개 중대가 출동해 몸싸움을 벌였다. 전경이 입구를 막아 관객 출입이 불가능했지만 전시회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이 전시 내용이 슬라이드로 만들어져 전국에 배포되어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주재환은 당시 신학철과 이 단체의 공동대표였는데 연장자로 국보법에 걸려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하자 경찰도 유화책을 쓰는 바람에 구타만은 면했다.

만 40에 그는 월계동에 13평 아파트를 얻어 가정도 꾸렸고 50부터는 방 2개 중 하나를 작업장으로 활용했다. 60세인 2000년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첫 전시를 열 수 있었다. 전시 제목도 타고난 낙관적 성격에 걸맞게 '이 유쾌한 씨를 보라'로 정했다.

그 후 그는 '후한루와'의 초대로 2003 베니스비엔날레에도 참가한다. 이어 2007년 '사루비아다방'에선 미술의 상업주의를 풍자했고, 2011년 '트렁크갤러리'에선 세상의 어지러움을 비틀었다. 2012년 '관훈미술관'에선 환경문제를 부각시켰고, 2015년 다시 '트렁크갤리리'에선 후천개벽을 주제로 전시했고, 이번에 '학고재'에선 대형전시를 연 셈이다.

[2부, 주재환 작품에 대해서] 천 원으로 만드는 기발한 콜라주

a  주재환 I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1980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벽에 걸지 않고 바닥에 깔았다

주재환 I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1980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벽에 걸지 않고 바닥에 깔았다 ⓒ 김형순


이제부터는 그의 작품세계와 창작동기와 그리고 그만의 특징이 뭔지에 대해 알아보자.

1970년대 그는 먹고 살기에 바빠 작품을 할 수 없었다. 다만 30살 초반인 1970년쯤 갑자기 전시욕구가 발동해 친구들에게 5만 원씩 도움을 청해서 광화문뒷골목 선술집 '쪽샘'에서 4호짜리 40점 콜라주전을 열었다. 그는 받은 돈을 갚느라 친구에게 작품을 하나씩 나눠줬는데 후에 다시 전시하려고 연락해 보니 그걸 보관한 친구는 아무도 없었단다.

그래도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출품한 작품은 몇 개 남아 있다. 이번에도 소개된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가 그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오만한 서양미술에 태클을 건 작품으로 거기서 제왕 격인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풍자한 것이다.

여기서 봄비는 비가 아니라 계단에 쏜 오줌발이다. 그게 계단을 따고 내려갈수록 굵어지는데 여기서 계단이란 권력위계를 비유한 것으로 그 분위기가 심각하지 않고 오히려 우스꽝스럽다. 작가는 이에 대해 "오줌발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생각에서 그린 것으로, 우상화된 서구미술에 종속되는 데 대한 저항이었다"고 말한다.

a  주재환 I '하느님의 똥은 무슨 색깔일까' 사용한 종이 팔레트에 색종이 아크릴 물감 2006. 그의 풍자는 종교에도 예외가 아니다

주재환 I '하느님의 똥은 무슨 색깔일까' 사용한 종이 팔레트에 색종이 아크릴 물감 2006. 그의 풍자는 종교에도 예외가 아니다 ⓒ 김형순


그리고 90년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고 민중미술도 그 투쟁수위가 낮아진다. 그런데 주재환은 막상 80년대부터 민중화를 그린 적은 없다. 그보다는 엉뚱한 발상과 해학이 넘치는 광대형 작가였다. 돈이 없는 그는 좋은 착상이 떠오르면 문방구에 가서 천 원짜리 초등용 색연필을 사가지고 가위로 종이를 오려 초고속으로 콜라주를 만들었다.

그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의 고백에 의하면 대학을 다니지 않아 석고 데생도 제대로 할 능력도 없고 또 그런 게 체질에 맞지도 않았단다. 그래서 그는 허접해 보이는 재료이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거는 '개념미술가'가 된 것이다.

분리수거하는 날 눈여겨봤다가 모은 쇼핑백, 봉투, 캡슐, 필름, 신문, 잡지 같은 쓰레기도 그의 손에 닿으면 고급예술품이 된다. 작가는 폐기물일지라도 관객에게 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여지와 상상력을 촉발시킨다면 그것도 무생물을 생명체로 바꾸는 창조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작품의 완성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를 "1달러 혹은 천 원으로 콜라주아트를 초고속으로 만드는 창시자"라고 부르고 싶다. 또한 그의 경향은 '납, 천, 유리, 바위, 점토' 등 빈곤한 재료로 작품을 하는 20세기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미술운동 '아르테 포베라'의 한국적 변종으로 보고 싶다.

a  주재환 I '자장면 배달원' 판화 52×42.5cm 1998-2003. 후기산업시대에 짜릿한 속도감이 느껴진다

주재환 I '자장면 배달원' 판화 52×42.5cm 1998-2003. 후기산업시대에 짜릿한 속도감이 느껴진다 ⓒ 김형순


90년대 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자장면 배달원'은 후기산업시대 '빨리빨리' 속도문화의 한 단면을 생중계하듯 실감나게 보여준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것은 바로 일상에서 만나는 사건을 체험의 미학을 근간으로 해서 승화시킨 시대의 풍속화라고 해도 좋으리라.

이 작가는 버거운 삶의 무게를 경쾌한 에피소드로 바꾸고, 삶의 쓴맛을 보고도 거기서 달콤함을 찾아내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미덕이 이 작품에도 그득 담겨 있다. 여기서도 어떤 삶의 난국이 온다 해도 자신이 있고 그것이 무색할 정도로 더 나아가 오히려 그걸 조롱하듯 멋지게 그 난관을 헤쳐 나가는 서민의 면모를 대신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60세가 돼서야 아트선재센터에서 '이 유쾌한 씨를 보라'는 제목으로 첫 전시를 연다. 그는 전시소감에서 "10년간 작업의 결실로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몸에서 소대변으로 빼내듯 그렇게 쌓인 표현의 욕구를 시원하게 해소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a  주재환 I '횡단보도에 자리한 화실' 도배지에 아크릴과 꼬마신발 281×213cm 2000. 이번 전시의 기획자인 유혜종 선생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재환 I '횡단보도에 자리한 화실' 도배지에 아크릴과 꼬마신발 281×213cm 2000. 이번 전시의 기획자인 유혜종 선생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형순


2000년 아트센터에서 선보인 '횡단보도에 자리한 화실'은 이번에도 전시되는데, 예술의 본질이란 '기존의 질서를 위반하고 전복시키는 데' 있음을 상기시킨다. 서구문법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 없으면 창작의 거점을 찾기 어렵다는 관점이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을 길들이는 '인식의 틀'을 깨는 것이 바로 작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로 본다.

또 2007년 '사루비아다방'에서는 불신사회의 기표인 감시카메라를 등장시키면서 'CCTV 작동중_잃어버린 밤'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었다. 화폐만 보고 달려가는 미술시장은 작품의 진가나 예술성은 볼 여유도 없이 가격상승에만 관심을 두고 있음을 꼬집었다.

a  주재환 I '설탕? 소금?(2008)' 외 작품. 상단 맨 끝에 '설탕? 소금?'라는 제목의 작품이 보인다. 캔버스유화 위에 소금과 설탕을 뒤섞어 넣고 그것을 비닐봉지에 담아 붙였다. 이 작품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는 주재환 작가

주재환 I '설탕? 소금?(2008)' 외 작품. 상단 맨 끝에 '설탕? 소금?'라는 제목의 작품이 보인다. 캔버스유화 위에 소금과 설탕을 뒤섞어 넣고 그것을 비닐봉지에 담아 붙였다. 이 작품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는 주재환 작가 ⓒ 김형순


그리고 2008년 위 작품 '설탕? 소금?', 여기에서 '단맛인가? 짠맛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같은 백색이라도 맛보기 전에는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는 세상의 한 면모를 다시 부각 시킨다. 가치가 전도된 시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한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보드리야르'가 언급한 '시뮬라크르(진짜 같은 가짜)' 개념도 일깨워준다.

이제 아래 2010년 작품을 보자. 주재환 작가는 냄비에 돌을 넣고 뭔가 끓이고 있는 작품인데 그 위에는 영국의 세계적 스타작가 데미안 허스트가 다이아몬드를 박아 만든 작품사진을 붙여있다. 도대체 이 작품의 의도와 주제가 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걸 알려주는 건 이 작품 왼쪽하단에 적혀있는 "브라질 북부판자촌에 사는 주부들, 저녁이면 냄비에 돌을 넣고 물을 끓이는 것이 다반사다. 어머니는 배가 고파서 보채는 아이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된다고 하면서 굶주림에 지친 자식이 빨리 잠이 잠들기를 바라는 그 어미가 느끼는 수치심을 감히 무엇에 감당할 수 있으랴"에서 알 수 있다.

'탐욕의 시대', 배고픈 아이를 억지로 재워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통해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를 언급하면서 인류공동체의 연대감은 더 사라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a  주재환 I '다이아몬드 8601개 vs 돌밥' 캔버스에 냄비 돌 사진 복사 70.8×53.7×11cm 2010.

주재환 I '다이아몬드 8601개 vs 돌밥' 캔버스에 냄비 돌 사진 복사 70.8×53.7×11cm 2010. ⓒ 김형순


그런 처지를 자신과 데미안 허스트를 비교하면서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가 만드는 작품은 냄비에 '돌'이 다지만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918억 원짜리 다이아몬드 8601개가 들어간다. 이렇게 같은 작가라도 제작비에서 편차가 크다는 건 결국 경제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지금 인류가 엄청난 빈부 차이의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함을 환기시킨다.

'트렁크갤러리'에서 2012년 선보인 '현기증' 연작은 멘탈(정신) 붕괴에 대한 경고다. 지역분쟁, 자연재해(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이 이제는 세계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아무리 인류가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다 해도 미래는 결코 평탄해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이건 단순한 물리적 폐허가 아니라 정신적 와해로 보고 이를 경고한다.

2012년부터 작가는 3년간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스로 입주해 전과 비교가 안 되는 깨끗한 침대가 있고 높은 천장의 방을 쓰면서 자신의 기량을 맘껏 펼쳤고, 친구인 민정기 작가만 아니라 젊은 유학파 작가도 만났고 또 지역주민과 공동프로젝트도 시도했다.

예컨대 그 지역 초등학교에 '닭장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닭도 키워보고 그 닭이 낳은 달걀도 먹어 보거나 혹은 선반에 쓰지 않은 문건을 놓아 서로 교환하기 위한 '선반프로젝트'로 일상과 예술을 연결하는 '지역아트(community art)'도 시도했다. 또한 그는 "인간이 지구를 파먹는 벌레가 되어간다"며 환경미술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a  주재환 I '이매망량[무신도_도깨비정령])' 인쇄물 색종이 스티커 40.5×28cm 2015. 민화 풍에 악한 사람은 처벌하고 선한 사람은 구하는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작품에 담겼다

주재환 I '이매망량[무신도_도깨비정령])' 인쇄물 색종이 스티커 40.5×28cm 2015. 민화 풍에 악한 사람은 처벌하고 선한 사람은 구하는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작품에 담겼다 ⓒ 학고재


그리고 2015년 '트렁크갤러리'에서 선보인 '이매망량(魑魅魍魎)'은 우리문화의 뿌리인 샤머니즘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도깨비를 이 어지러운 세상의 불의를 심판하는 '메시아'로 등장시켜 미술로 이 땅의 민초들에게도 시원한 해방감을 주고 싶다는 말 같다.

이진숙 미술평론가는 이에 대해 "작가가 약자로서 당한 일이 많아선지 도깨비장난 같은 그림을 통해 위정자를 불쾌하게 하고, 사회에서 배제된 약자와 소외된 자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을 옹호하는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강하게 풍긴다"고 평했다.

결론으로 주재환은 도록 속 '작가의 말'에서 고려 말 '길재(1353~1419)'의 시조 '오백년 도읍지'와 '윤동주'의 유년기 오줌 싸는 꼬마를 그린 동시 '가을밤'을 인용하면서, 이 세상에는 어떠한 부귀영화도 영원할 수 없으며 또한 사람의 오줌색이 다 같기에 누구나 공정하다며 보다 인간적이고 평등한 인류공동체의 구현에 대한 갈망을 피력한다.
덧붙이는 글 [학고재갤러리] 주소: 종로구 삼청로 50 전화: 02)720-1524~6 홈페이지: http://www.hakgojae.com/ko/
#주재환 #<현실과 발언> #민중미술1세대 #콜라주 #오브제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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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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