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교본, 활..
정현순
15년 전 쯤인가? 명절에 십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 생겼다. 난 백화점 상품권으로 무엇을 살까? 내 옷을 살까? 생활용품을 살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마침 내 앞에는 악기점에 있는 바이올린을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난 무작정 악기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바이올린 가격을 물었다. 딱 십만 원이라고 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상품권으로 바이올린을 사가지고 나왔다.
바이올린을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식구들한테 자랑을 했다. 식구들은 시큰둥 하며 "잘 했네. 그런데 바이올린은 언제 배우게" 했었다. 사실 바이올린을 사자마자 바이올린 기초 교본 책을 샀다. 집에서 혼자라도 해보려고. 책장을 넘겨 보았지만 혼자 하기는 어려웠다. 하여 그대로 포기하고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는 피아노교습소는 많았지만 바이올린 교습소는 웬만해선 찾기가 힘들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내가 바이올린의 꿈을 꾸게 된 것은 14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어느 날 청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어디에선가 악기 연주소리가 들려왔다. 후에 알고 보니 그것이 관현악 연주반이었다. 키가 작은 나는 까치발을 있는 대로 들고 유리창 너머로 겨우 음악실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곳에서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을 연주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피아노 외에는 처음 보는 악기들이 많았다. 바이올린도 그날 처음 본 것이다. 그중에 우리 반 반장은 바이올린이란 것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있고 부러웠는지. 우리 반 반장의 아버지는 대학교 음악교수라고 했다.
그때 나도 바이올린을 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막연하게 바랐던 것.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아이와 같은 반이니 시시때때로 그 아이만 보면 바이올린 생각이 났다.
1960년대는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정 형편상 바이올린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곤 실업계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바이올린이란 꿈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50대에 바이올린만이라도 옆에 놓고 싶은 생각에 바이올린을 사게 된 것이다. 옷이나 핸드백 등을 사는 대신에.
"바이올린 손자들 주지~~."지난해 설날인가? 가족이 모두 모였을 때 남편이 "이젠 바이올린 애들(손자)주지?" 하자, 난 "음~~ 아직 안 돼"라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모습을 딸아이가 본 듯했다. 그래서 지난해 5월에 등록을 해서 6월초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3명이 수업을 시작했고 이번 봄 학기에는 6명으로 늘었지만 내 나이가 제일 많다. 나머지는 모두 30대, 40대였다. 그런 만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비야 연주하고 껑충껑충 거실을 뛰어 다녔어요"바이올린을 배우고 어느덧 3개월이 되던 지난해 8월 중순에 서툴지만 동요 '나비야'를 켤 수 있게 되었다. '나비야'를 들은 젊은 바이올린 강사는 "잘 하시네요. 첫 곡을 3개월 만에 하게 되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하며 묻는다."솔직히 말해서 집에서도 너무 좋아서 혼자 껑충껑충 거실을 뛰어 다녔어요" 하니 수강생들이 모두 박수로 화답을 해주었다.
다음 4월 셋째 주 숙제는 각 현의 혼합 연습, 빠른 온 활과 느린 온 활을 연습해 가야 한다.다음 레슨을 잘 받기위해 짬짬이 짬짬이 연습을 하고 있다. 계명을 보는 것보다 손가락 위치를 잡는 것이 더 어렵다. 손가락이 짧으니 더욱 그렇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 했으니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다. 늙어가면서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싶어서이다. 그동안은 '내게도 바이올린이 있지'라는 생각만으로도 좋았는데... 이젠 내가 바이올린을 직접 배우고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꿈은 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러한가보다. 딸아이 덕에 시작을 하게 되었지만 끝은 내가 마쳐야 할 것이다. 14살부터 마음 속 깊은 곳에 꼭꼭 간직했던 꿈이 50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나이는 나이, 젊은 사람들과 똑같이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서두루지 않고 천천히 갈 생각이다. 아직 포기 하지 않고 다음 학기를 등록하고 나니 혼자 웃음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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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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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넘어 바이올린 배우기, 웃음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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