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고리(杜甫故里)’라고 쓴 현판이 달린 두보 고향 기념관 입구를 통해 거대한 두보 석상이 보인다.
이상옥
중국 정주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 가면 공의시 '두보고리(杜甫故里)'가 있다. 두보의 고향에 있는 두보의 고향기념관은 우선 방대했다. 두보가 평생 유랑하며 그리워하던 두보고리!
春來萬里客/ 亂定幾年歸/ 腸斷江城鴈/ 高高正北飛"봄에 와 있는 만 리 밖의 나그네는 난이 그치거든 어느 해에 돌아갈까? 강성의 기러기 똑바로 높이 북쪽으로 날아가니 애를 끊는구나." - 두보의 <歸鴈>(귀안) 두보가 안록산의 난으로 유랑 생활을 하던 53세 봄 피난지에서 지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고향 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끓는 마음이 선연하다.
당나라 현종이 측천무후 이후의 혼란스러운 나라를 평정하고 선정을 베풀어, 당 왕조는 중흥을 이뤄 태평성대를 구가하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당 태종의 '정관의 치'와 비견하여 '개원의 치'(개원은 현종이 712년 즉위한 이듬해에 제정한 연호)라 이른다. 현종이 개원의 치를 이룰 때 당나라 수도 장안(지금의 서안)은 인구가 900만 호였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