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홍대 앞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상징 조형물
최윤석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에 설치된 '일간베스트저장소(아래 일베)' 상징 조형물이 훼손됐다. 1일 새벽, 한 홍익대 학생과 '랩퍼 성큰'씨가 조형물을 파손한 것.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이 작품은 파괴됨으로써 완성되었다'는 취지의 반응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에 공감한다.
한 작가가 설치하고, 작품 수용자의 '계란 던지기'와 같은 분노 표현들을 받아들이고, 찬성과 반대 의견이 담긴 포스트잇이 조각상을 뒤덮고, 그리고 최종에는 스스로 그것을 파괴하는 것까지 모든 퍼포먼스를 다 해냈다면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주제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이 조각상의 파괴를 두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며 그것이 '일베'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말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이러한 예술 행위도 존중받아야 하고,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평등, 차별과 역차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다양성 존중이라는 단어도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그냥 자기 입맛에 따라 아무데나 갖다 붙이면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긴 하지만 일베를 인정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일베는 바로 그 민주주의, 자유와 다양성을 부정하는 극우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치의 문제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집단을 인정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내가 온라인에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다 보니 '당신은 다양성을 존중한다면서 왜 내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가' 하는 말을 요즘 많이 듣는다. 그들은 뭔가 단단하게 착각하고 있다.
그들의 의견이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의견이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국내에서 외국인(노동자)을 몰아내자, 퀴어퍼레이드라니 인정할 수 없다 동성애자를 몰아내자, 장애인 시설은 세금 낭비다,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세금으로 보급하겠다니 아깝다, 여자들은 안전하게 밤에는 집에만 있든지 남자친구하고만 다녀라, 강남역에서 여자를 죽이 것은 남자가 아니라 조현병 환자다, 정신장애인들을 집밖으로 못나오게 만들자'와 같은 말들처럼.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나치즘을, 파시스트를, IS와 같은 극단적인 폭력 집단을 인정할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가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그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뿐만이 아니다. 그 행위 저변에 깔린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나와 다른 것, 약한 것을 혐오하고, 배제하고, 마구 죽여도 된다고 하는 그 발상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말은 약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말이지 강자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만든 말이 아니다. 소수자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자는 것이지 다수의 횡포를 묵인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양성 존중하지 않고 강자 논리 강변하는 일베,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