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들도 인정한 '간뎅이 부은 여행', 아찔하네

[중국여행 4] 태항산대협곡 팔천협

등록 2016.06.10 14:05수정 2016.06.1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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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태항산

태항산 ⓒ 유혜준


태항산맥은 중국의 산서성과 하남성의 경계를 이루는 거대한 산맥으로 중국의 그랜드 캐년으로 불린다. 남북길이 약 600km, 동서길이 약 250km의 험준한 산맥이며, 산동성과 산서성의 이름이 태항산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태항산맥의 동쪽이라 산동성, 서쪽이라 산서성이라 불렸다니, 태항산맥이 얼마나 큰 산맥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으리.

태항산맥은 춘추전국시대부터 군사 요충지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유명하다. 후한을 세운 광무제가 왕망과 싸운 곳이 태항산 일대로 그 흔적을 '왕망령'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근대에는 중국 팔로군과 일본군이 이곳에서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태항산맥은 산세가 험하고 산과 산이 계속 이어지면서 골이 깊어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면 누구도 찾지 못한다나.

이 지역을 일본군이 점령하기 시작한 것은 1938년으로 이때, 일본군을 피해 태항산으로 숨어들어간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고, 그래서 1990년까지도 일본군이 중국을 점령한 상태인 줄 알았다고 하니, 얼마나 깊은 산골인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외부 사람들도 험하디 험하면서 골이 깊은 태항산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단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존재가 드러나지 않게 나무 아래에 집을 짓고 조용히 살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태항산을 개발하기 위해 산에 들어갔던 사람들에 의해 산 마을 사람들의 존재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면 또 사람이 살고 있고, 더 깊숙히 들어가면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랬다는 거다.

태항산이 관광지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한국에는 트레킹 코스가 널리 알려져 있다. 태항산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매년 꾸준히 관광객이 증가했다. 대부분이 한국인으로 2015년에는 10만 명이나 되는 한국 관광객들이 태항산을 다녀갔다고 한다.

나는 2010년 4월, 길 친구들과 트레킹을 하러 태항산에 갔다. 태항산이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구련산, 만선산, 왕망령 등의 옛 길을 걸으면서 중국의 그랜드 캐년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a  팔천협

팔천협 ⓒ 유혜준


이번에는 팔천협과 왕망령, 만선산, 천계산을 둘러봤다. 태항산은 여전히 장엄하면서 아름답고, 사람을 홀리는 매력을 품고 있었다. 그중에서 최고는 팔천협이었다.

태항산대협곡은 팔천협, 홍두협, 흑룡담, 청룡협, 자단산 이렇게 5개의 관광지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팔천협이 가장 핵심이 되는 관광지로 태항산대협곡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단다. 태항산의 꽃이라고도 한다.


팔천협은 중국정부가 국가삼림공원,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한 4A급 관광지다. 중국 10대 협곡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호수와 계곡, 기암괴석 등이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거대한 규모의 관광지다.

팔천협(八泉峽)은 태항산맥 아래를 흐르는 세 갈래의 강물이 숫자 8과 관련이 깊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줄기가 8개로 갈라져 흐르다가 하나로 이어지고, 다시 8갈래 갈라져 흐른다는 것이다. 가장 높은 곳은 1700여 미터에 이르고, 낮은 곳조차 해발이 600미터로 이곳에는 여름이 없다고 할 정도로 한 여름에도 서늘한 기온이 감돈다.

태항산은 험준한 산세로 유명해 이곳을 찾는 것을 중국에서는 '간뎅이가 부은 관광'이라고 한다나. 산 위에서 깎아지른 절벽을 보면서 걷기 때문이란다. 그 말, 맞다. 2010년 4월, 구련산에서 만선산으로 가는 길을 걸었을 때, 충분히 실감했다.

예전에 양치기들이 다녔다는 길은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걸으면 꽉 찰 정도로 좁았는데 길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한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그대로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던 구간이 여럿 있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 길을 내고 사람들이 다닐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까지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a  팔천협

팔천협 ⓒ 유혜준


팔천협은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다. 2014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올해 3월 1일부터 일반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역자로 꺾이는 케이블카가 있는데 길이가 2937m나 된다. 산꼭대기에서 직각으로 꺾어지는 케이블카라니, 대단하다. 타고 있노라면 엄청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이리 보아도 산이요, 저리 보아도 산인데다 높이가 장난이 아니니 그럴 수밖에. 우리 일행이 팔천협을 찾은 날에는 비가 내려, 팔천협 일대가 운무로 가득 차 있어서 더 그랬다. 

중국에는 한국에 알려진 관광지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중국 관광업계에서는 팔천협이 장가계를 훨씬 뛰어넘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관광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나. 그만큼 다양한 볼거리와 탈거리 등의 즐길거리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태항산, 하면 산 이외에도 홍기거(红旗渠) 수로가 유명하단다. 인간은 자연을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홍기거 수로는 인간이 자연에 도전해 엄청난 규모의 수로를 만들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a  팔천협

팔천협 ⓒ 유혜준


태항산은 물이 없는 지역으로 이곳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했단다. 그래서 시작된 것인 수로 건설이었다. 임주시부터 태항산대협곡이 있는 마을까지 인공수로를 건설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은 1960년 2월. 임주시 주민 7만여 명이 동원된 대규모 인공수로 건설 공사였다. 공사는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1969년 7월에 완공됐으니 말이다.

홍기거 수로의 길이는 1500km에 이른다. 공사를 하면서 1250여 개의 산봉우리를 깎아냈고, 151개의 다리가 세워졌으며, 211개의 터널을 뚫었다. 크고 작은 저수지 338개가 만들어졌으며, 수력발전소 52개가 건설되었다고 하니,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공사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 공사는 임주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당시 수로 건설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중국 전역에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단다. 수로건설 경험이 그들을 그렇게 성장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홍기거 정신이라고 하면 알아주는 혁명정신이라고 한다나. 1960년대라면 변변한 기계의 도움 없이 일일이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을 텐데, 인구가 많은 중국이라 가능했으리라. 

a  태항산

태항산 ⓒ 유혜준


1250여 개의 산봉우리를 깎아서 홍기거 수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중국의 유명한 고사성어 역시 태항산에서 나왔단다. '어리석은 노인'인 우공이 옮기려고 했던 산이 태항산이라는 거다.

홍기거 외에도 중국에는 경항대운하가 있다. 고구려를 3번이나 침략했지만 실패한 수양제가 건설한 경항대운하는 북경에서 항주까지 이어지는 수로로 길이가 1794km나 된다. 605년에 착공, 6년에 걸쳐 공사를 했다고 전해진다. 수로의 일부 구간은 이전에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그 시대에 그렇게 엄청난 공사를 했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대국(大國)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여행 4일차에 묵을 예정인 요성이라는 도시는 경항대운하의 중간 지점이라 이곳에서 배를 타면 북경까지 20일, 항주까지 20일이 걸린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경항대운하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설명이었다.

팔천협에서는 다양한 탈거리를 경험할 수 있다. 그만큼 팔천협의 규모가 크다는 얘기가 되겠다. 가장 먼저 전동차를 타고 15분 남짓 이동한다. 다음에는 유람선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역시 15분 남짓 간다. 다음 탈거리는 길이가 2937m나 된다는 케이블카. 그리고 마지막에는 높이가 208m나 되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러면 팔천협 일대를 다 돌아보는 것이다. 이렇게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시간 정도. 물론 팔천협 일대에도 등산로가 있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a  팔천협 유람선 선착장

팔천협 유람선 선착장 ⓒ 유혜준


전동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유람선 선착장. 이곳에서는 '부두'로 부른다. 절벽과 절벽 사이에 거대한 호수가 있고, 그곳에 유람선 선착성이 조성돼 있다. 호수 이름은 고협평호(高峽平湖). 협곡과 협곡 사이에 있는 잔잔한 호수라는 의미인가 보다. 육안으로 보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엄청나게 깊다. 60m나 된다나. 그곳에서 출발한 유람선은 절벽과 절벽 사이로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보이는 풍경마다 절경이다.

선착장에서 내려 2km 남짓 협곡을 따라 올라가면 케이블카 승강장이 나온다.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 팔천협의 협곡은 길이가 13km에 이른다. 협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옥빛이다. 

a  팔천협

팔천협 ⓒ 유혜준


유람선 선착장에서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포장이 돼 있었다. 얼핏 보면 나무처럼 보이는 난간까지 죄다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엄청난 인력이 투입된 대규모 관광지 개발공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을 자연스럽게 자연답게 남겨두지 않은 것은 아쉽다.

길에 사람이 손을 댄 흔적이 있거나 말거나 눈앞에는 절경이 펼쳐진다. 촉촉이 내리는 비 덕분에 온 세상이 젖어 더 생기 있어 보인다. 이따금 고개를 들면 까마득한 절벽이다.

팔천협 케이블카는 4월에 시험 운행을 거쳐 5월부터 본격적으로 운행되기 시작했단다. 케이블카는 직선으로 가다가 기역자로 꺾여서 운행이 된다. 꺾이는 지점에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는 시설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경유지로만 운영하는 것 같다.

a  팔천협 케이블카

팔천협 케이블카 ⓒ 유혜준


비가 내리면서 팔천협 일대가 안개로 덮였다. 일부 봉우리는 안개 사이로 솟아나와 자태를 보여주지만, 바람이 불면 안개가 흩어지면서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안개 때문에 장엄하게 펼쳐지는 태항산맥을 제대로 못 봤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바람을 타고 흐르는 안개 덕분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는 태항산의 숨은 절경을 보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케이블카는 운해를 뚫고 천천히 움직였다. 산을 지나 산과 산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케이블카에 타니 마치 신선이라도 된 것 같다. 케이블카 아래로 유람선을 타고 지나갔던 물길이 보인다. 까마득하게 멀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높은 곳에 올라와 있는 것일까?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내려 208m 높이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길은 대부분 계단이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도 계단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진다. 일부 계단은 몹시 가파르고 폭이 좁다. 1700여 미터 높이에 올라왔으니,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 한다. 계단이 비에 젖어 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무릎이 부실한 사람은 무릎보호대가 필요하니 참고하시라.

a  하늘의 도시, 천공지성(天空之城). 이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높이는 208미터.

하늘의 도시, 천공지성(天空之城). 이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높이는 208미터. ⓒ 유혜준


a  208미터 높이의 엘리베이터

208미터 높이의 엘리베이터 ⓒ 유혜준


안개를 헤치고 내려오니, 유리로 지은 건물이 보인다. 하늘의 도시, 천공지성(天空之城)이다. 이 건물에는 3대의 엘리베이터가 있어, 그걸 타고 산 아래로 내려가게 돼 있다.

천공지성의 일부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어 아래가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유리 위에 서니 유리가 사라져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할 것 같아 두려워진다. 허방을 딛고 있어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그대로 발밑이 꺼질 것만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엄청난 스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케이블카에 비하면 그런 느낌이 약했다. 엘리베이터는 놀이동산에서 타는 놀이기구가 아니니, 속도가 그에 따를 수 없는 게 당연하지만, 왠지 아쉽다. 그래도 투명한 창을 통해 태항산대협곡의 웅장한 자태를 볼 수 있어서 좋구나.

a  팔천협 관광안내도

팔천협 관광안내도 ⓒ 유혜준


덧붙이는 글 태항산대협곡 한국사무소, 왕망령한국 사무소에서 마련한 팸투어에 참가했습니다.
#태항산대협곡 #태항산 #팔천협 #홍기거 #중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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