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삭 무너진 백화점, 502명이 죽었다

[서평] 서울문화재단 기획 <1995년 서울, 삼풍>

등록 2016.06.09 09:02수정 2016.06.0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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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서울시 서초구 1685-3에 위치한 건물이 무너졌다. 지하 4층, 지상 5층의 건물이 순식간에 땅으로 꺼지며 사라진 것이다. 건물의 이름은 삼풍백화점이었다. 신축한 지 겨우 5년 정도 된 상황이었다.

삼풍백화점은 애당초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바닥 돌출과 천장 침하가 되었으나 대피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붕괴에 대피하지 못하고 건물과 함께 매몰되었다. 사망자는 502명, 부상자는 937명이었다. 삼풍백화점 회장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아 업무상과실치사상죄 및 특정범죄 가중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7년 6월을 선고받았다.


a  <1995년 서울, 삼풍>

<1995년 서울, 삼풍> ⓒ 동아시아

삼풍백화점의 붕괴가 가진 의미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성과주의와 속도전을 위시로 한 대한민국식 개발의 정점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성수대교 수사를 마무리하던 검사가 곧바로 삼풍백화점 조사에 투입되기도 했다. 성수대교가 붕괴한 지 겨우 반년만이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하고 4번의 대선과 5번의 총선이 있었다. 삼풍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대형참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제대로 기억하고, 성찰하기 위한 책이 나왔다. <1995년 서울, 삼풍>은 5명의 기억수집가가 만들어낸 구술 기록집이다. 5명의 기억수집가들이 유가족과 생존자, 봉사자와 구조대, 검사와 의사 등 당시 관련자를 만나 기록하여 사회적 기억으로 엮어냈다.

<1995년 서울, 삼풍>은 변화하는 서울의 삶을 우리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공감하는 역사로 만들기 위해 서울문화재단에서 기획한 메모리 인 서울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하다.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구술로 재구성된 기록은 마치 아수라장이 된 현장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당황했다. 건물이 지나치게 부실하게 지어진 탓에 삼풍백화점은 말 그대로 폭삭 무너졌다. 많은 희생자들이 건물 지하에서 목숨을 잃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몸에 큰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급박하게 군과 경찰을 비롯한 관련 인원이 모두 소집되었다. 강원도에 있던 광부 구조대를 헬기로 수송하여 현장에 투입하기도 했다.


모두들 어떻게든 대처하려고 노력했지만 구조는 쉽지 않았다. 워낙 엉망으로 지은 건물이라 건드리기도 위험한 상황이었던 데다가, 대형참사 앞에서 혼란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지휘와 정보 문제로 현장 분위기는 어수선했고, 정보교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구급차끼리도 갈등이 생겼다. 강남 성모병원으로 많은 환자가 몰리면서 교통이 막혔다. 응급 의학 전문의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앉아서 매장을 둘러보니 어두컴컴해 아예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우리는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청소하고 다시 일할 생각이었어요. 동료 동생하고 "이거 어떻게 다 치워?", "언니 이거 뭐야? 어떻게 일을 하지" 하는데 갑자기 저희가 뚫고 나온 자리로 피흘리는 어떤 손님이 뒤따라 나왔어요. 저희가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까 "아가씨들, 나 이거 어떻게 하냐?" 물어보시더라고요. 저희도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 -145P

아무도 질서있게 상황을 정리하지 못했다. 이때를 틈타 혼란 상황을 노리고 시신의 손가락을 자르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손에 낀 반지를 빼앗을 작정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알몸으로 들어와서 삼풍백화점의 고급 의류를 입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비극을 통해 한몫 챙기려는 이들이 득시글거렸다.


'장비를 가지고 왔다는 사람들도 배낭 열어보면 구조장비가 있는 게 아니고, 고가 옷,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어요. 또 훼손된 시신, 잘린 손가락도 들어 있었어요. 사망자가 끼고 있는 반지를 빼가려는 거죠.' -38P

'제가 볼 때 자원봉사들 중 3분의 1가량은 절도 목적으로 합류한 사람들이었어요. 삼풍이 워낙 고급 백화점이니까요.' -46P

반면 넋이 나간 사람들을 위로하고, 탈진한 소방대원을 씻긴 시민들도 있었다. 드링크제 1만병을 들고 나온 서울시 약사들도 있었다.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달려들어서 희생자를 위로하고 위험을 감수한 사람들이 있었다. 물을 공급하고 구조 작업에 필요한 사무실을 제공한 주유소 사람들이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아귀와 성자가 한 곳에 모인 풍경이 그려졌다.

이 구술 기록에 응한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삼풍백화점과 같은 건물이 다시는 지어지지 않기를, 대한민국에서 대형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다 지나간 일이고 나도 이제 치유가 됐어' 이런 생각과 '그런 사고가 잊혀지면 좀 그렇지' 하는 생각. 다 잊혀지면 서운할 거 같아요. 이런 대형 사고는 국가 차원에서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그때 성수대교 사건도 있었잖아요? 씨랜드 참사도 있었고요. 삼풍 사고도 참 큰 사고였어요. 진짜 그때 삼풍백화점이 얼마나 고급백화점이었어요? 그런 백화점이 무너지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잊혀지면 안 될 것 같은데 기록에 남긴다니까 고마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159P

이 책은 대형참사를 사회적 기억으로 정리하고, 문제점을 직시하여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정말 좋은 책이다. 참사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하지만 어쩐지 책을 읽고 나서 씁쓸하고 우울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책 말미에 있는 설문조사 때문이었다.

2016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삼풍백화점 구조 현장에 참여했던 현직 소방관 4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삼풍 붕괴 이후 2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소방관 40명 중 22명은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대형 사고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 18명 역시 대형 붕괴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없거나, 적다고 답한 소방관은 없었다.

21년이 지난 지금, 삼풍의 기억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1995년 서울, 삼풍 - 사회적 기억을 위한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

서울문화재단 기획,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지음,
동아시아, 2016


#삼풍 #삼풍백화점 #붕괴 #건물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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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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