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계란후라이'가 지천에 피었어요

등록 2016.06.28 11:05수정 2016.06.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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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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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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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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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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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갑남


묵정밭에 망초꽃이 지천입니다. 몇 해를 묵혔을까? 흐드러지게 핀 망초꽃이 작물대신 주인행세를 하려합니다.


예전에는 곡식 심어야할 밭이나 논을 묵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등짝만한 땅이라도 놀리는 일은 죄악시했습니다. 땅을 묵히기라도 하면 남세스럽고, 창피할 노릇이었습니다. 게으름을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었으니까요.

부지런한 농부는 일손이 딸릴 때는 달빛을 빌려 땅을 파고, 새벽 별을 보고 나선 농부의 발길은 빈 땅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예전 망초꽃은 산소 언저리에서 많이 봤습니다.

<망초꽃>

김솔

노을이 내리던 울 아버지 무덤가
하얀 소복 입고 서 있는
울 엄마처럼
울 엄마처럼


저물녘
쌀뜨물처럼 뿌옇게 피어나는 꽃

쌀뜨물처럼 하얗게 피어난 망초꽃. 어느 누구 반기는 이가 없습니다. 초여름의 한낮에 망초꽃이 서럽게 피어났습니다.

작은 국화꽃 같은 망초꽃이 사람 가슴만큼 자라 바람에 흔들립니다. 건들건들 바람에 일렁이는 꽃은 쌀뜨물처럼 뿌옇습니다. 고개가 꺾이며 출렁일 때는 흰 거품 이는 파도와도 같습니다. 바람이 드나드는 꽃 속에 날 것들은 뭐가 그리 신이 난건지! 숨바꼭질하기에 바쁩니다.


망초는 원래 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산하 곳곳을 차지하며 이제는 토종식물처럼 행세를 합니다. 많고 많은 귀화식물 종들 중에서 유별나게 망할 '망(亡)' 자를 붙여 망초라고 했을까요?

망초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많습니다. 밭을 망치는 망할 놈의 풀이라 하여 망초라 불렸다고 합니다. 또, 혹자는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망하라고 심어놓고 간 풀이라고 해, 망초의 유래를 찾습니다.

망초는 풀 우거질 '망(莽)'자를 써서 망초(莽草)라 합니다. 묵정밭에 우거진 잡초이니 딱 맞아 떨어지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망초가 나물로 쓰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요즘 먹을 게 하도 많아 망초를 나물로 쓰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른 봄, 어린 망초를 뽑아 시금치처럼 데쳐 나물로 무쳐먹으면 향과 맛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나물로 먹는 망초는 '망할 놈의 풀'이 아니네요. 아무리 흔한 풀이라도 이를 알고 유용하게 활용하면 잡초도 나물이 되는 것입니다.

망초꽃에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으려는데, 꽃이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바람이 망초대의 가드다란 허리를 붙잡고서 자꾸 흔들어댑니다. 나는 묵정밭에서 한참을 서성입니다. 지나가는 분이 내게 말을 겁니다.

"계란꽃 찍으시네."
"계란꽃이요?"
"꽃이 계란후라이로 피어났잖아요. 가운데엔 노른자, 가장자리엔 흰자!"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그래서 망초꽃을 계란꽃이라 불러요! 꽃말이 뭔지나 아시나?"
"글쎄요."
"화해라고 하대요."
"화해요? 참 좋은 꽃말을 가졌네요."

망초꽃의 또 다른 의미를 마음에 새겨봅니다. 화해라는 예쁜 꽃말을 가진 계란꽃이라고. 아무렇게나 흐드러지게 피어난 망초꽃이지만, 오늘따라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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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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