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중학교 충경원의 학도의용군 충혼탑
조종안
유난히도 더웠던 1950년 여름.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청년 학생들이 나섰으니 학도병(학도의용군)이었다, 군산에서는 학교별로 학도호국단 간부회의가 소집됐고, '우리도 나아가 싸우자!'는 결의가 고조된다. 그들은 대부분 20세 미만으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전쟁터를 피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입대를 결정했다.
그해 7월 13일, 태극무늬 머리띠를 동여매고 군산 중앙초등학교에 모여든 군산지역 6개교 중학생(6년제)은 1000여 명. 이들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총만 든 채 전선으로 투입됐다. 계급도 군번도 없는 학도병들은 제7사단에 소속돼 낙동강 전선과 포항 전투, 하동 전투 등에서 용맹을 떨치며 산화해갔다.
전라북도 학도병 희생자 530명 중 군산 지역 출신은 7개교 211명으로 40%를 차지한다. 학교별로는 군산중학 97명, 군산동중 1명, 군산상업 45명, 군산사범 29명, 군산영명 25명, 군산북중 3명, 옥구중 11명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군산중학교 정원(충경원)과 은파호수공원에는 충혼탑(忠魂塔)이, 월명공원에는 '충혼불멸'(忠魂不滅)의 비가 세워져 있다.
학생이 보는 '호국보훈의 달' 관련 군산의 현대사